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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보통 Nov 29. 2019

여기부터 한 발짝 더-

우리 서로에게 독립하도록 해요.

Photo by Annie Spratt on Unsplash



솔직히 말하면 한국에서  혼자 산 기간이 그렇게 길지 않다.

여행 다닌 1년과 한국에서 고시원에서 혼자 살았던 3개월을 제외하면 
나는 부모님 집에서 스무 살 전에는 같이 살았고

스무 살 넘어서는 얹혀살았다.

 

누구도 나에게 어떻게 독립을 하라는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혼자 사는 것이 막연히 무서웠다.

내가 어떻게 독립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독립할까 -라고 이야기하면 다들 혼자 살면 돈 많이 드니까

그냥 돈 모은다 생각하고 부모님이랑 같이 살라고 해서

그 말에 못 이기는 척,

내가 부모님과 살아주는 척하면서 붙어살았다.


그런데 그 독립을 호주 오기 3개월 전에

도대체 이 집에서 더 살다가는 내가 답답해서 죽겠다 싶어서

여성전용 고시원으로 나와 살게 되었다.

 

운 좋게도 그 고시원 방은 한 달에 36만 원짜리 큰 창문이 있는 방이었다. 

작은 책상과 CNN이 나오는 구식 텔레비전,

그리고 작은 침대가 있는 정말 작은 방이었다.


독립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몰랐지만, 분명 때가 오면 언젠가는 하겠지 라는 생각에

오랫동안 독립을 원했기에 나름 치밀하게 준비했다.  


빨래, 요리, 청소 등 집안일은 내가 알아서 할 만큼 배워뒀다.

돈은 어차피 벌고 있었고 마음만 먹으면 되는 것이었다.


실행을 드디어 옮기게 되는 그날,

고시원을 알아봤고 하니씩 필요 없는 짐을 버렸다.

마지막에는 나머지 짐을 다 옮길 때는 부모님 조차 내가 사는 곳을 모르게

부모님 안 계실 때 혼자서 옮겼다.  


그리고 나중에 문자 보냈다.

이사했는데 고시원이고 잘 있다고 나중에 보자고 했다.


부모님은 속상하셨겠지만 이렇게 관계가 서로 어그러져있는 상황에서

같이 사는 것은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했다고 했다.

 

서른 넘어서 한 독립.


결혼을 해서 하는 독립이 아니라 여행을 가서 하는 독립이 아닌

그냥 가출스러운 독립이었다.


잠깐 방문을 할지언정 다시는 돌아가지 않는 것이 가출과 다른 점이겠지만.  

 

정말 혼자 살다 보니 내가 왜 그렇게 혼자 사는 것을

무서워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사니까 여러 가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의외로 시장 반찬가게가 잘 되어있다는 것을 알았다.

가보면 맛있고 다양한 반찬을 괜찮은 가격에 살 수 있었다.


혼자 사니까 생각보다 내가 사는데 필요한 것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내가 지낸 고시원은 밥을 제공해 주는 곳이어서 밥 걱정은 안 해도 되었다.

거기다가 청소기 및 세탁기 등 있을 것은 다 있어서

청소, 빨래도 알아서 다 해결할 수 있었다.


여름에 들어간 것이어서 일 끝나고 고시원에 들어오면

창문 열고 도시의 바람을 느끼며 맥주 한잔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한 달 정산을 해보니 사는데 그렇게 많은 돈이 들어가지 않았다. 

 

진작에 나올걸.

그렇게 정신적으로 힘들어하지 않아도 되었는데

뭐 하러 혼자 사는 것을 무서워했을까.

 

겨우 3개월 한국에서 혼자 있는 것이었지만 난 나 자신이 참 뿌듯했다.  

이제 드디어 정신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독립을 했다는 것이 참으로 좋았다.


나중에 호주 오기 전에 부모님을 만났다.

그리고 우리의 관계도 편해졌다.

부모님도 내가 나온 덕분에 나에게서 독립을 하신 것 같았다.


부모님 밑에 내가 부속되는 관계가 아니라

이제야 서로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1대 1의 관계가 된 것 같았다.


더 이상 상대가 무엇인가를 더 해주기를 바라는 기대도

그 기대가 무너지면 생기는 원망도 없어졌다.

그러니까 상대를 마주 볼 수 있게 되었고,

서로를 조금씩이나마 이해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제는 부모님께 의지하지 않아도 되고

부모님도 더 이상 나를 쥐려고 하지 않는다. 


이제는 온전히 나 자신으로 사는 방법을

내가 찾았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나로 시작한 후, 서로 의지했다가

점점 서로 독립해서 동등해지는 관계.

가장 이상적인 부모 자식 관계라고 생각한다.

 

사랑한다면 더 큰 곳으로 떠날 수 있도록

닻을 풀어줘야 하지 않을까.


배가 항구에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하지만,

그러려고 배를 만든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배들도 부지런히 빨리 (웬만하면 서른 전에)

떠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서로의 인생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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