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왜 몰랐을까
얼마 전 플레이그룹에서 만난 소셜워커의 생일을 축하해 줬다.
아직도 22살인데 뭐가 걱정이냐며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자주 보는 엄마들이
그 친구의 생일을 축하해 줬다.
그 친구의 생일은 사실 22살은 아니고 32살이지만 우리끼리 그렇게 농담하며
즐겁게 축하했다.
삼십 대는 아직도 베이비라고 했더니 그 친구가 우유 마셔야 하는 거냐며 김 빠지는 웃음을 지었다.
둘째가 태어나고 한창 바쁠 때 우연히 아일랜드에서 찍은 내 사진을 봤다.
돌담에서 청바지를 입고 카디건을 입고 햇볕이 강했는지 눈을 살짝 찡그리며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다른 발렌티어들과 다 같이 모여서 여행을 가서 찍었던 사진인 듯한데
그때 당시의 내가 물밀듯이 생각났다.
20대 후반, 가장 이쁠 때인데 난 그때의 내가 뚱뚱하고 못생겼다고 생각을 했었다.
허벅지는 바지가 터질 듯이 뚱뚱하고 얼굴은 너무 크고 별로라고 말이다.
실제로 그 사진을 친구가 인화해서 줬을 때 정말 못생기게 나왔다며 나 자신을 폄하했다.
외모콤플렉스가 유난히 심했던 난 가장 이쁠 나이의 나를 가장 못 생기게 봤다.
이렇게 다시 보니 참 이쁘다.
젊음이란 것이 이렇게 이쁘고 좋은 것을 난 그때 왜 몰랐을까 싶으면서
그때 다른 사람한테 잘해주지 말고 나 자신에게 좀 잘해줄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10년 전에 내가 저렇게 이뻤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육아 스트레스가 가장 극에 달하는 오후 3시-4시 사이의 내 얼굴을
거울로 보면 한숨이 절로 난다.
아침에 보송보송했던 머리는 모자를 써서 그런가 상태가 안 좋고
눈 밑에 슬며시 자리 잡은 다크서클 때문에 작은 눈이 더 작아 보이고
강렬한 호주 자외선 덕분에 생긴 기미가 더 도드라져 보인다.
육아로 인한 피로로 얼굴이 퀭해서 말 그대로 썩은 얼굴이 되어버린다.
그런 얼굴을 보면 깜짝 놀라다가도 10년 후에 내가 지금 내 얼굴을 보면
그래도 이쁘다고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삼십 대의 내가 이쁘다고 생각했던 이십 대의 나처럼
오십 대의 나는 아마도 사십 대의 육아에 전 모습도 이쁘다고 생각할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10년 후에 비하면 아직도 난 참 젊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몇 년 후에 셋째가 학교를 가게 되면 마흔 중반이 된다.
아이들이 잘 큰 것이나 남편이 일을 잘하는 것은 내 성취가 아니라서
이렇게 육아만 하다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시간만 갈까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럴 때마다 몸 아픈데 없이 건강하고 아직도 젊으니까 천천히 가도 된다고
10년 후의 내가 말한다.
천천히 가도 괜찮다고, 가다 보면 네가 원하는 곳에 닿을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꾸준히 가라고 토닥이는 목소리가 들린다.
누군가에 눈에는 사십 대도 어쩌면 베이비일지도 모른다.
마흔이 넘어도 세상은 여전히 알쏭달쏭하고 난 이렇게 천천히 인생을 걷고 있다.
너무나 상투적이지만 진실인 그 말.
오늘 하루가 내 인생의 가장 젊은 그날이라는 그 말처럼,
여전히 난 내가 젊다고 믿고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을 꾸준히 할 뿐이다.
Photo by Chang Duong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