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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완희 Aug 03. 2024

27화 깜냥깜냥이

 '서해(西海)'에서 멋진 일출을 보고 싶다면 "군산 대장봉"

[prologue]


 '매미들아... 제발... 5분만 더.. 자면 안 돼?'


 창문 방충망에 붙어있는 매미들의 '맴맴맴매에 엠..' 소리가 더운 공기와 함께 내 방안을 가득 채웠다. 요즘 거의매일 비슷한 시간에 울리는 매미들의 알람으로 오늘도 맞춰둔 알람보다 더 빠른, 아직까지 새벽 6시도 안 된 시간에 눈을 떴다. 7월의 한여름 나를 깨우는 '매미'알람과 폭염경보 발효 중이라는 것을 알리는 안전문자의 '삐이-' '딩동' 알림 소리가 늘 들었던 익숙한 소리라 느껴질 만큼, 나의 일상에 가까이 다가와있다. 그런데 더워도 너무 더운, 뜨거워도 너무 뜨거운 오후에 익숙하지 않았던 소리가 더위로 나른해지고 축 쳐진 나를 깨웠다. 알람도 아닌, 알림도 아니었던 아이의 말.


"엄마. 저 삼○중 시험 한번 쳐보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요."




<이틀 전>


 저녁을 먹으며 초등학교 6학년인 첫째 아이와 중학교 진학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에게 꼭 집 앞의 중학교만이 아닌 몇 군데의 중학교(일반 중학교, 예술중점 대안학교, 사립 중학교)를 소개해주었고, 첫째 아이가 원하는 진학 의견을 기다리던 참이었는데 아이의 은 더위로 나른했던 내 몸에, 찬물샤워를 하 듯, 정신이 바짝 드는 알짬 같은 말이었다.


 아이가 시험을 쳐 보겠다고 하는 사립 중학교는 경산 남산면에 위치한 삼○중학교였다. 워낙 유명한 곳이니 솔직하게 얘기하겠다. 경산의 중학교는 바로 '영남삼육중학교'다. 우리 집에서 차로 15분 정도 되는 거리에 삼육중학교가 위치해 있는데, 이 중학교는 경산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꽤 유명하다고 한다. 간단히 얘기하자면, '공부'를 잘해야 갈 수 있는 중학교다. 유명한 중학교인 만큼 입학시험도 보통 수준이 아니라고 했는데, 초등 6학년 1학기 범위인 이 입학시험을 통과하려면, 수학은 '최소' 중학교 1학년 심화과정까지 선행이 되어있어야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얘기도, 영어는 중학교 2학년 수준까지 선행해야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얘기가... 지역맘카페에서, 상위 ○% 카페에서도 소문이 자자했다. 


 아이를 키우며 초등과정에는 '독서와 운동'이 가장 기본이라 믿고 있고 학습에 대해 선행을 하더라도 한 두단원 예습한 정도였다. 그랬던 첫째 아이가 시험을 쳐보겠다고 한 건, 공부를 해보겠다는 것이라 생각했고, 걷기 여행에 관한 글을 쓰며 언급하지 않았었지만, 첫째 아이는 초등학교 3.4학년 때 학교 가기를 거부할 만큼 유난스러운 '사춘기'를 보냈던 상황이어서, 더욱이 그렇게 생각해 준 아이가 너무 기특했다.


 그때부터 아이는 ebs강의를 더욱 집중해서 들었고, 모르는 부분에 대해 수학은 아빠에게, 영어는 엄마에게 배우며 조금씩 배워야 할 것을 익혔다. 두 달반이 지난 후, 드디어 입학시험을 치는 날이 다가왔고 아이를 중학교 시험장에 데려다주고 운전을 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중학교 입학시험이 뭐라고... 이제 고작 초등학교 6학년밖에 안 되었는데, 고3 수험생이 수능시험장으로 들어가는 듯, 애처로운 마음이 들며 아이의 뒷모습이 한참 동안 아른거렸다.


 며칠 후, 시험결과가 발표됐고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삼육중시험에 대비하기 위해 기본 1~2년 전부터 준비를 하는 아이들도 있는데, 두 달반 준비는 어림도 없었던 것이다.


"엄마. 삼육중학교 시험에 떨어졌지만, 저 다른(일반) 중학교 가더라도 지금처럼 열심히 공부할게요."

"다 컸네. 다 컸어. 나연이 공부하느라 고생했는데, 머리도 식힐 겸 엄마랑 같이 바다 보러 갈래? 너한테 꼭 보여주고 싶은 곳이 있어."

"네..? 엄마... 진짜 괜..찮아요.." 

"너 거기 가보면, 너무 아름다워서 진짜 깜짝 놀랄걸?"



 2023년 6월의 걷기 여행으로 올해 걷기 여행을 끝낼 순 없었다. 7월 말부터 10월 중순까지 두 달 반동안 시험준비로 고생했던 아이를 위해 쉬엄쉬엄 휴식도 하고, 아이와 겸사겸사 걷기 여행도 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그렇게 2023년 12월 엄마와의 두 번째 걷기 여행이자, 마지막 걷기 여행은 바로 이곳이다.


 가자. 군산 '대장봉'으로.





'휘이~휘이잉~' 시끄럽고 요란한 바람소리로 새벽 3시밖에 안 됐는데 눈이 떠졌다. 그나마 달려있던 나뭇잎들을 모두 날려버리려는 듯 나뭇가지가 마구 흔들리는 소리, 고리를 걸어둔 틈 사이로 바람이 들어오려는 듯 덜커덩 덜커덩 창문이 흔들거리는 소리, 캠핑을 하는 것이 아닌데 꼭 텐트 안에서 자는 듯한 묘한 기분이 드는 이곳은 변산반도 생태탐방원 자연의 집이다.

군산 대장도와 가까운, 내가 원하던 국립 신시도 자연휴양림을 예약하고 싶었지만 늘 그랬듯 엄마의  예약 실패(똥손 인정ㅠ) 그나마 가까운 숙소로 예약을 하다 보니 부안에 위치한 변산반도 생태탐방원 '자연의 집'에 머물게 되었다. 


 아이에게 '특별한 바다' 그리고 '특별한 일출'을, 더 디테일하게 얘기하자면 '산에서 떠오르는 바다일출'을 보여주고 싶어서 이곳 부안까지 달려왔기에 날씨에 따라 여행일정의 운명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구름이 많다거나 비나 눈이 내린다면 일출을 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내일은 구름 없는 맑은 날씨가 예상된다고 기상청이 예보했지만, '바람'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조금 더 늦은 새벽이 되면 지금보다 바람이 잦아들길 바랐지만, 불어도 불어도 너무 심하게 불고 있는 바람걱정에 도저히 다시 잠을 청할 수 없었고, 인터넷에서 군산날씨의 풍속을 검색하고, 심지어 부안에서 군산 대장도로 가는 길목에 설치된 거리의 cctv도 찾아보았다. cctv속 나무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표지판은 얼마나 흔들리는지, 찾아보는 내내 밖에서 부는 바람소리는 더욱 커졌고 시간이 지날수록 내 마음의 불안감도 커져갔다. 


 어느덧 시간은 새벽 5시 30분이 되었고 마음의 결정을 내려야 할 시간이 왔다. '갈 것인가. 말 것인가.'

나는 아이들을 깨웠다. 내일과 모레는 구름으로 예쁜 일출을 보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바람이 불더라도 일단 출발하자는 생각이 컸다.

군산 대장도까지 자차로 거의 50분 정도(나의 운전속도로는 거의 한 시간) 걸리는 거리를 달리며, 도로 위 움직이는 차는 우리 차를 포함해 열 대도 되지 않을 정도로 조용했지만 두 세 곳에서 추운 날씨 속, 불을 밝혀 도로작업을 하시는 걸보며 많은 사람들이 잠든 이 시간에 일을 하시는 것만으로도 그분들이 대단하고 감사한마음이 들었.


 드디어 도착한 대장도, 일출이 워낙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라 나와 아이들 외에 일출을 보러 온 사람들이 한 두 분 정도는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주차장엔 기존에 주차되어 있는 차들 외엔 우리 차'밖에' 없었다. 해가 뜨기 전이라 많이 어둡고 특히 바람이 많이 불었지만, 우리는 랜턴을 켜고 천천히 대장봉 정상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어두웠던 안,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새벽의 차가운 공기가 차오르며 바닷바람과 숲의 바람이 서로 싸우기라도 하듯 높고 강하게 기를 세웠다. 이런 표현이 과한듯싶지만, 정말 미친 듯이 불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바람소리는 유난히 내 귀를 자극했고 추웠던 날씨였지만 내 목과 등줄기에 식은땀이 날만큼 긴장되었다가, 내 시선으로 보이는 어두움에 살짝 오싹한 기분이 들며,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우리를 에워쌌다. 아이들도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무섭다며 빨리 어두운 숲을 벗어나고 싶다고, 내려가고 싶다고 했다.


"나연아. 나예야. 많이 무섭지? 사실 엄마도 많이 무서워. 자. 둘 다 엄마 손잡아봐. 우리는 혼자가 아니고 셋이잖아. 그치? 엄마가 너희를 잘 아는데, 너희는 수 있는 힘이 있어. 그 힘이 얼마나 센 데. 그래서 오늘도 여기까지 잘 온 거잖아. 이제 정말 조금만 더 올라가면 정상이야. 거의 다 왔어. 우리 무섭다고 포기하지 말자. 응?"  


 어둠이 무서워서, 미친 듯이 부는 바람이 무서워서, 이 길의 걷는 것을 포기할 순 없었다. 정상에 오르는 거리가 정말 얼마 남지 않았었고, 길이 그리 험한 것은 아니었기에 아이들이 그 순간에 느낀 무서움을 조금만 더 힘을 내, 이겨내길 바랐다. 나 또한 그 무서움이란 감정을 떨쳐버리기 위해 아이들과 서로 의지해가며 정상을 올랐다.

 숲길을 벗어나 우리 뒤로 바다가 보이는 지점까지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클라이밍을 하듯 큰 바위에 두 손을 짚어가며, 네 발로 오르길 여러 번, 드디어 대장봉(142m)이라고 쓰인 작은 나무판이 달린 정상의 나무를 발견했다.

정상에는 아이들과 나 밖에,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둠 속을 벗어났고, 조금씩 밝아지는 하늘에 안도하며 나는 아이들과 두 눈을 맞추고 차가운 두 볼에 털장갑 속 나의 따뜻했던 손을 대어주며 고생했다고, 멋있었다고 얘기했다.

 그러자 무서워했고, 긴장했던 아이들의 마음이 스르르 풀리듯 표정도 한결 밝아졌다. 주차장에서 대장봉으로 오르는 계단초입, 그리고 정상까지 어두운 새벽길 30분 동안 우리 곁에 머물렀던 '겁'이라는 존재가 알다가도 모를 만큼, 어느 순간 또 쉽게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 곁에 다가와있었던 또 다른 감정은 바로 '아이들의 아빠이자, 남편'도 이곳에 함께 왔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느꼈던 아쉬움이었다.


 5년 전 주식과 코인으로 인생의 쓴맛을 본 남편이 요즘엔 또 다른 힘든 일들과 마주하며 인생의 아린맛을 제대로 맛보고 있는 중이라, 내 옆에서 서해의 풍경을 바라본다면 지금쯤 눈물 한 바가지정도는 거뜬히 흘렸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고, 강하게 부는 바람 속 떠오를 해를 기다리며, 어렵고 힘든 상황 속 남편의 일이 잘 해결되어 떠오를 해처럼 빛 나는 사람이 되기를 응원했다.


 아이들과 '아빠 화이팅'이라고 외치며.

▲ 군산 대장봉에서 아이들이 아빠에게 보낸 4초 응원영상.



 온 사방으로 바람이 불고 바람소리로 두 귀가 먹먹 해지는 듯 느껴졌을 때, 바다의 수평선과 하늘 그 어디쯤,  노랗게 빛나는 조그맣고 동그란 해가 우리 눈앞에 크게 존재감을 보이기 시작했다. 해는 조금씩 커지더니 이내 하늘 위로 빛을 밝혔다. 우리가 대장봉을 올라올 때 켰던 랜턴의 빛을 밝히는 모양과도 같았던 태양 빛.

내 마음의 울림을, 내 심장의 두근거림을 더 빠르게 자극시킬 만큼 비현실적인 대장봉에서의 일출 풍경이었다.

왼쪽의 선유도와 오른쪽의 장자도 그리고 두 섬을 잇는 다리, 그 뒤로 보이던 작은 섬들이 고군산군도를 비추는 해만큼이나 아름다웠다.



 네 시간 정도만 잠을 잤고, 아이들과 대장봉을 다녀와서 피로감이 있을 수 있지만, 보고 싶었던 군산 대장봉에서의 일출을 보아서 그런지 전혀 피곤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차 안으로 들어오는 아침 해를 맞으며, 넓은 바다와 뒷좌석 아이들의 웃는 모습을 보며, 두 시간째 운전석 핸들을 잡고 있는, 숙소로 돌아가는 그 순간이 너무 행복했다. 오후에 몇 잔의 커피와 몇 병의 에너지 드링크를 마실지는 몰라도.





[epilogue]


'시험이 두 달 반 밖에 남지 않은 시점인데 어떡하지...'


 나는 그때부터 유독 길거리에서 '삼육중 대비 학원' '삼육중 합격'등의 입간판과 표지판 등이 눈에 더 잘 띄었다. 주변사람들이 삼육중 입학시험에 대비하려면 학원엔 무조건 다녀야 한다고 얘기를 했고, 입학시험을 함께 치는 첫째 아이의 친구들도 학원에 다니고 있던 터라 고민하다 아이에게 말을 건넸다.


" 나연아. 다른 동네에 삼육중 대비 학원이 많이 보이던데 혹시 다녀보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 엄마한테 얘기해 줘."

"엄마. 저 삼육중 떨어지더라도 저 스스로 공부해 볼게요."


 세상에.. 이런 딸이 어디 있나 싶었다. '스스로' 해 보겠다고 했던 아이의 마음이 '넌 커서 뭐가 돼도 될 거야. 될 감이야'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아이의 생각을 존중하며 조금씩 조금씩 익혀나가길 기다려주었다.






 아이를 키우며 나는 아이에게 "공부해라"라고 얘기한 적도, 공부를 강요한 적도 없다. 내가 아이들에게 강요한 건 아니고 가끔 '강제'는 있었지만, 걷는 여행만큼은 크게 '강조'했다. 아이들이 지식으로 무언가를 습득하는 것이 우선이 아닌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포기하지 않는 힘을 기르고 엄마뿐만 아니라 가족과 좋은 유대관계를 갖는 것이 늘 먼저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를 보니, 비록 시험에 떨어졌지만 스스로 해보겠다는 의지가,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의 인생을 결정해 보려는 마음을 조금씩 키우고 있는 것 같아 엄마로서 '깜냥이 제법 멋지고 크게 자라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거꾸로 첫째 아이를 통해 내가 많이 배웠다.

또한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아이는 자기가 지니고 있는 힘을 믿고 스스로 공부를 것처럼, 우리의 '대장봉 일출산행도 같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깜깜한 긴 터널처럼 대장봉 정상으로 향하던 길이 어둠으로 많이 무서웠지만, 무섭다고 해서 걷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아이들 '깜냥깜냥이'  그 힘을 믿었었기에,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길의 끝, 대장봉 정상에서 그토록 아름다운 서해바다 일출의 아름다움을 느낄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나연이 나예는 뭐가 돼도 될 깜(감)이야! 그리고 너희들은 깜냥이 앞으로 더 더 많이 자랄 거야!"


 

* 깜냥: 지니고 있는 힘의 정도

일을 해낼만한 능력, '깜'의 원말은 '감'으로 '사윗감', '반장감'처럼 어떤 자격에 알맞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부사형은 '깜냥깜냥이'다. '저마다의 깜냥대로'라는 뜻이다.







 어둠 속 무서움을 이겨내며 대장봉을 오르느라 많이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엄마와 함께 동행해 주는 나연이 나예 너무 고마워.


 




아이들과의 스물여섯 번째 여행 중, 어느 한순간.



 우리의 걷기 여행은 계속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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