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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하의 별 Apr 01. 2021

벚꽃 구경

지난해를 잘 살고 다시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기관지 알레르기가 있는 나는 의사 선생님의 권유로 자택 감금 수준의 생활을 거의 1년이 넘게 하고 있다. 코로나는 나처럼 기저질환자에게 더 위험하다고 병원에 약을 받으러 갈 때마다 의사 선생님은 절대로 외출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다행히 내 집의 거실은 두 벽이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서 자연의 풍경이 거실 안으로 들어온다. 그래서 봄의 풍경을 보고 느낄 수는 있지만 그것은 멀리서 보는 것이고 나는 그 꽃들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멀리서 보는 것과 그 꽃터널 안에 있는 것은 느껴지는 것이 달라서 정말 꽃구경이 하고 싶었다.


이번 주말에 신랑이 아이와 함께 잠깐 아파트 앞에 벚꽃 구경을 하러 가자고 했지만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에 나는 시무룩해 있었다. '비가 오면 벚꽃이 다 떨어지고 없을 터인데'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이 조금은 우울했다. 해마다 벚꽃 구경을 갔었는데 올해는 주말에 비가 온다니 마음이 슬퍼졌다.


어젯밤 늦게 퇴근한 신랑이 내일 점심시간에 회사에서 외출을 하고 올 터이니 나에게 외출 준비를 미리 하라고 말했다. 영문을 모르는 나는 "회사에서 어떻게 나오려고 그래요? 바쁘잖아!"라고 말을 하니 신랑은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미리 말을 해 놓았어요, 두 시간 정도는 데이트할 수 있어요."라고 말을 해서 나는 기뻤다.


오늘 나는 아이도 학교에 가고 신랑이 점심시간에 나온다고 해서 외출 준비를 하였다. 신랑이 차 안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려던 계획을 세웠으나 내가 간단하게 점심을 미리 차려놓아서 신랑과 함께 집에서 점심을 먹고 벚꽃을 보러 갔다. 그렇게 하는 편이 시간을 더 아낄 수 있기에 점심 차리는 것이 수고롭지 않았는데 신랑은 "코로나만 아니면 근사한 곳에서 외식을 할 텐데..."라고 말을 하면서 아쉬워했다.


밖에서 느껴지는 봄바람은 집에서 눈으로 보는 것과 정말 달랐다.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마스크를 벗고 사진을 찍었다. 점심시간이어서 그런지 길에는 사람들이 없었다. 나와 신랑이 길을 전세 낸 것처럼 단둘이 벚꽃 구경을 하였다.


 



바람결에 나뭇가지가 흔들거리면서 벚꽃 눈이 내렸다. 벚꽃잎이 바람결에 하늘하늘 흔들리면서 햇살이 그 꽃잎 사이사이를 금실로 연결해 주는 것처럼 보여서 나는 영화의 한 장면 같다고 탄성을 질렀고 아이처럼 기뻐하는 나를 보면서 신랑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신랑의 손을 잡고 걸어가면서 나는 기분이 너무 좋아 한옥타브 높아진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자기야, 벚꽃이 너무 예쁜데 볼 수 있는 시간이 정말 짧은 것 같아"

신랑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 1~2주 정도 피려나... 꽃이 피는 기간이 짧고 그 이후에는 초록 잎만 보이지요."


나는 신랑의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햇살이 벚꽃에 비추어서 내 눈을 더 부시게 하였다.
주말에 비가 오면 떨어질 운명을 모르는 아름다운 벚꽃은 눈이 부시게 아름다워 보였고 그 아름다움이 사람의 청춘처럼 느껴졌다. 사람의 수명이 100살까지라고 하면 유아기와 어린이 시기를 지나 스무 살부터 서른 살까지 나는 청춘이라고 생각이 된다. 그 10년의 시간이 눈이 부시게 아름답고 찬란하다. 나를 위해 시간을 온전히 사용할 수 있는 아름다운 청춘시절이 꼭 벚꽃처럼 느껴졌다.


"자기야 벚꽃이 너무 예쁘고 피는 시기가 짧아서 청춘 같아, 청춘은 매우 아름다운데 정말 찰나인 것 같아요."

"그러게요, 하지만 나는 청춘만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삼십 대도 아름다웠고 지금 사십 대인 우리도 아름다운 시절을 보내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나는 자기와 함께 해마다 보는 이 벚꽃 구경이 너무 소중해요, 올 한 해도 행복하고 건강하게 잘 보내고 내년에도 다시 우리 자기 손을 잡고 이렇게 벚꽃 구경을 함께 하고 싶어요, 그렇게 계속 나이 들어가면서 언제나 자기와 벚꽃 구경을 하고 싶어요."


"나이를 들어야겠죠? 나이를 들어야 건강하게 계속 잘 살고 있는 거라고 자기가 그랬었죠? 나이를 들어도 내가 예쁠까요?"

"내 눈에는 세상에서 우리 자기가 제일 예뻐요!"

"그럼 자기야, 내가 예뻐 벚꽃이 예뻐?"

"우리 자기가 당연히 더 예쁘지요!"

나는 그의 대답에 "우리 자기는 여자들이 어떤 대답을 좋아하는지 정답을 알아."라고 말하면서 활짝 소리 내어 웃었다. 웃는 나를 보면서 그도 함께 웃었다.


우리들의 봄날 맞이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그의 말대로 해마다 이렇게 손을 잡고 벚꽃 구경을 하면서 나이 들어가는 것이 정말 소중한 일이라는 것을 나는 안다. 나는 40대 초반에 건강을 크게 한번 잃어본 적이 있다. 그때 간절하게 내가 믿는 신에게 기도했었다. 나는 아이의 미래의 시간에 함께해 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컸다. 그때 초등학교 저학년인 아이에게 내가 필요하다고 제발 아이 옆에서 엄마 노릇을 할 수 있도록 나에게 시간을 조금만이라도 더 달라고 신에게 기도했다. 나의 간절함이 신의 마음을 다시 되돌려 놓았고 3년의 지난한 치료 끝에 다른 사람이 보기엔 건강하지 않지만 나는 내가 생각하는 건강함을 다시 찾았다.


신랑은 나에게 지금 내가 이 정도 건강을 유지하는 것만이라도 정말 감사하다고 말을 한다. 나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나에게 주어지는 하루를 신에게 선물처럼 감사히 받는다. 선물처럼 나에게 주어지는 하루를 나를 위해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소중한 사람들과 행복하게 보내고 싶다.


내가 아프고 힘든 시간을 보낼 때 그는 나와 항상 함께 했고 그때도 이렇게 손을 잡고 해마다 벚꽃 구경을 하였다. 우리에게 벚꽃 구경은 지난해를 잘 살고 다시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의미 있고 소중한 날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별거 아닌 것 같은 그런 날이지만 나와 그에게는 더없이 소중한 날이다. 다시 내년에 벚꽃 구경을 꼭 같이 하자고 우리는 서로에게 다짐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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