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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라하의 별 May 24. 2021

커피 한잔 마시는 여유

© Free-Photosphotography, 출처 pixabay


이른 아침에 신랑은 원두커피를 갈아서 에스프레소로 커피를 내려놓는다. 연두색 텀블러에 에스프레소로 내려진 커피를 신랑은 가득 담아 놓는다. 나는 종일 뜨거운 물을 붓거나 또는 우유를 데워서 내 기호에 맞게 커피를 타서 마신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나만을 위한 여유를 가진다. 커피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신랑이 커피에 쏟는 정성은 지극하다. 아마도 나를 위하는 마음을 이른 아침에 커피를 준비해 주고 가는 것으로 표현하는듯하다.


신랑은 아이의 아침을 챙겨 준다. 아이와 신랑은 내가 잠에서 깨지 않도록 조용히 움직이면서 각자의 사회로 떠난다. 새벽에 잠이 든 나는 늦은 아침을 시작한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거실에 원두커피 향만 가득 채워져 있다.


아이를 키우면서 웹디자인 재택근무를 하던 시절에는 커피 한 잔을 마음 놓고 마시는 여유를 가지지 못했다. 내가 아침마다 커피를 마시면서 가지는 이 시간은 나에게 아주 호사스러운 여유이다.


전쟁처럼 아파트 대출금을 갚아 나가던 시절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같았다. 결혼할 때 시댁의 보조를 받을 수 없어서 나와 신랑은 온전히 우리 둘의 힘으로 시작했다. 내가 늘 농담 삼아 말하던 은행 농노 시절이다. 은행에 대출을 받아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다. 나와 신랑의 연봉을 합치면 적지 않은 돈이었지만 우리는 월급의 대부분을 은행에 바쳤다. 그건 원룸에서 시작했던 우리의 신혼생활에서부터 지금의 아파트를 분양받아서 대출금을 갚아나가던 모든 시간이었다.


그 대출금을 갚아나가는 시간은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는 느낌이었다. 몇 억씩이나 되는 돈을 언제 갚을지 헤아릴 수도 없는 어쩌면 밤하늘에 별들보다도 그 빚이 더 많게만 느껴지던 시절은 이제 지나갔다. 이젠 은행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운 신분"이 되었다.


큰 부자가 되려면 은행에서 대출받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 되고 그것을 지렛대 삼아서 투자를 해야 한다고 재테크 책을 읽을 때마다 나온다. 하지만 나는 정말 지긋지긋하게 빚을 갚아보아서 다시는 빚을 지는 것이 싫다. 왜 아파트는 이렇게도 비싼 것일까.


아이가 4살 때까지도 어린이집에 보낼 돈을 아껴가면서 대출금을 갚았다. 그땐 나라에서 나오는 지원금도 없었다. 아이가 5살 때부터 국가에서 나오는 보조금을 조금 지원받고 어린이집에 다닐 수 있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는 회사일을 정신없이 한다. 그리고 아이가 오후 2시에 집에 돌아오면 다시 아이를 돌보면서 회사일을 했다. 저녁 6시에는 업무를 마감했고 늦은 시간에 아이를 놀이터로 데리고 나가서 놀았다. 일하는 엄마라서 항상 미안했던 시절이다. 그때는 커피를 원 샷 했던 기억이 많다.



이런 나에게 오늘 아침처럼 아무도 없는 조용한 거실에서 창밖의 초록이 들을 보면서 커피를 한잔을 마시는 이 순간은 사치스러운 시간이다. 나는 이 순간이 더없이 소중하고 행복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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