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가 열세 번째 가을을 맞이했을 때의 일이다. 한참 성장기였던 아이는 먹는 양도 급격하게 늘어났고
초등 6학년이지만 취침시간이 밤 9시 30분에서 10시 사이였기에 수면 시간이 부족한 상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낮에 하품하는 일이 빈번하였다.
나는 걱정이 돼서 주변 엄마들에게 물어보니 아이들이 한참 클 때는 잠도 많아진다고 무조건 많이 재우라고 말해서 그럼 밤 8시 30분에 재워야 하나 고민했다. 아이는 초등 6학년 때 낮에 자주 졸려해서 결국 홍삼도 사다 먹이고 더 일찍 재워 보기도 했지만 아이는 여전히 피곤해해서 나는 진심으로 아이의 건강이 염려됐다.
그런데 한참 성장기라고 하기에는 아이의 키는 별로 크지 않아서 '이상하다'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면서 나는 아이가 피곤해하며 늘 하품하던 그 일을 잠시 잊고 지냈다.
초등 1학년 겨울방학 때부터 한글 공부에 집중하고
책 읽어주기를 열심히 해주던 나는 아이가 초등 5학년 때 혼자서 책 읽는 재미를 느껴해서 나 또한 마음속으로 안도감을 느꼈다.
모든 과목의 교과서가 한글로 되어있기에 "독해력"이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을 간과했던 나는 아이가 어릴 때 영어를 좀 더 쉽게 느끼게 해 주기 위해 한글보다는 영어를 집에서 사용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아이는 한글보다 영어 사용을 더 익숙하고 편하게 받아들였다.
결국 나는 아이 초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아이의 한글 실력이 너무 좋지 않아서 "학습부진"이 올 수도 있다는 충격적인 말을 듣고 난 후
일상생활에서 영어로 사용하는 것을 그만두고 무조건 한글로 된 책과 글쓰기에 몰두했었다.
아이가 오히려 영어로 된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고 그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는 걱정이 되어 내가 책을 읽어줄 때는 되도록이면 한글로 된 책들로 읽어 주었다.
그런데 초등 5학년이 되고 나서는 아이가 스스로 한글로 된 책들을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와 집에서도 읽고 학교에서도 읽고 너무 재미있어해서 그제야 나는 안도감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무렵부터는 내가 일일이 아이의 학교 교과서를 읽어주고 이해시키는 일을 하지 않아도 아이 혼자 스스로 읽고 이해하는 단계까지 올라가서 "공부는 그냥 건너뛰는 과정이 없다"라는 걸 절실하게 알게 됐다.
초등 6학년 때부터는 아이는 매일 학교에서 책 5권을 빌려와 집에서 쉬는 시간에 읽고 또 학교에서 마저 읽은 후 반납하고 또 새로 5권을 빌려오는 것을 매일 반복했다.
나는 하루에 어떻게 5권을 읽을 수 있나 궁금해서 아이에게 물어보면 빨리 읽으면 된다고 하고 또는 학교 중간놀이 시간에 읽는다고 해서 학교 수업 시간에는 선생님 몰래 책을 읽으면 안 된다는 당부만 한 채 무심히 넘겼지만 '이상하다'라는 생각은 내 머리에 남아있었다. 그러면서 시간이 흘러 단풍잎이 떨어지는 지금 계절이 도래했다. 아이가 낮에 하품하면서 피곤해하는 것은 여전했고 키는 생각보다 크지도 않은 그런 상황이었다.
어느 날 새벽에 잠이 깬 나는 아이 방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고 살짝 들여다보니 아이가 책을 읽고 있었다.
새벽 4시 반 정도 되는 시간이었고 결국 아이는 10개월에 걸친 이중생활에 대해 나에게 진술하게 됐다. 책을 하루에 5권씩 빌려오니 다 읽을 수 없었던 아이는 알람을 새벽 4시에 맞춰놓고 6시까지 두 시간 정도 책을 읽은 후 다시 잠을 잤다고 한다. 새벽에 무슨 일이 있는지 몰랐던 나는 아이를 7시에 깨웠고, 그럴 때마다 아이는 많이 피곤해했던 것이다. 그러면 엄마에게 말을 해서 잠자는 시간을 한 시간 정도 뒤로 미루고 책을 읽지 왜 새벽에 일어나서 읽었냐고 물으니까
아이는 " 엄마 아빠 다 잘 때 혼자 깨어서 책 읽는 그 고요한 시간이 너무 좋았어요"라고 말을 했다. 어느덧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는 엄마, 아빠의 시선을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찾았고
그 시간이 모두가 잠든 새벽 4시였던 것이다.
그 고요한 새벽 시간을 혼자 즐기는 것이 좋았다니 아이는 나도 모르게 한 뼘은 더 컸나 보다. 아이가 부모로부터 심정적인 독립을 시도하는 시기가 "사춘기"라고 한다. 하지만 결국 부모도 아이로부터 심정적인 분리를 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다. 부모와 아이가 서로 독립을 해야 각자의 삶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책으로만 읽었지 막상 현실이 되니까 부모로서 왠지 서운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아이 키 크는 데 도움을 주고자 아이를 밤 9시 30분에 재우던 나는 당황하기도 했고 속상했다. 주변 엄마들에게 이 속상함을 알리고 위로를 받고자 이 사건을 소상히 말을 했던 나는 위로도 못 받고 핀잔을 들었다.
" 언니, 우리 애들은 그 맘 때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게임을 했어요! 난 내 아이들이 새벽에 일어나서 책을 읽는다면 정말 황송하겠어요!"라고 말이다
사춘기는 아이와 부모가 앞으로 어른이 될 아이를 미리 만나는 연습을 하는 그런 단계인 것 같다. 서로의 삶을 지지하고 응원하지만 각자 살아내야만 하는 인생은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 그런 시기가 사춘기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