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8일 월요일에 아이는 고등학교 기숙사에 입소를 했다. 코로나 이전의 시대에는 기숙사에 부모도 들어갈 수 있었고 아이의 짐을 정리해 줄 수도 있었다고 한다. 아이의 짐을 정리한 후에는 학교 안에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으면서 아이와 여유 있게 헤어질 수 있는 시간도 있었다고 하는데 코로나 시대인 지금은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부모는 차 안에서 대기하고 아이가 짐을 기숙사로 옮겨야만 했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서 짐을 옮기는 것이었지만 생각보다 책과 교복 그리고 생필품의 짐이 많아서 아이가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느라 고생을 했다. 그런 아이를 보면서 도와줄 수 없는 마음이 안타까웠는데 아이는 씩씩하게 본인의 짐을 기숙사로 빠트리지 않고 옮겼다.
아이가 원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이었지만 아이와 떨어져 지내야 하는 것은 내 마음을 허전하게 하였다. 학교 규정에 의하면 학교에 적응하는 기간을 가져야만 해서 아이는 두 달 동안 주말에 집에 오지 않고 기숙사에 머물러야 한다.
아이가 태어난 후에 나와 아이는 단 한 번도 떨어져 지낸 적이 없는데 주말에도 얼굴을 보지 못하게 되어서 슬픈 마음이 들었다. 아이는 자신에게 새로운 시간이 기다리고 있어서 슬픈 마음보다는 기대하는 마음이 더 큰 것 같았다.
나는 이렇게 나의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내 청춘시절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아이의 마음을 공감하고 있다. 나는 청춘시절에 독일로 유학을 떠났었다. 그때 나는 정말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 없어서 연신 싱글벙글했는데 나의 부모님은 그런 나를 보면서 기특하면서도 어쩌면 서운한 마음을 가지셨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아이를 학교에 두고 나는 신랑과 함께 집으로 돌아와서 아이의 빈자리를 온몸으로 느꼈다. 정말 아가였던 아이가 어느새 자라서 고등학생이 되고 아빠와 엄마 곁을 떠나서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걸어가는 그런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나와 신랑의 마음에 아이는 여전히 아가인 것만 같았다.
3월 2일 수요일 아이의 입학식이 있었다. 오미크론으로 인해 부모는 참석을 할 수 없는 입학식이지만 인터넷으로 아이의 입학식을 볼 수 있었다. 내 아이의 이름과 꿈을 기록한 글을 사회를 보는 분이 읽을 때 며칠 동안 보지 못했던 아이의 모습이 화면에 등장을 하였다. 환하게 웃으면서 걸어 나와 인사하고 들어가는 아이의 모습에 나도 함께 미소를 짓게 되었다. 나는 아이가 바라고 꿈꾸는 자신의 모습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마음으로 기도하였다.
기숙사에 들어온 아이와 짧은 통화를 하였다. 아이는 바쁜 스케줄대로 움직이는 하루의 일과를 나에게 간단히 설명하고 사이사이에 재미있었던 일도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는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이의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