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시간에 잠이 깨어서 산책을 다녀왔다. 오후 시간에 산책을 가면 아파트 이웃들을 만나서 잠깐 수다도 떨고 일상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새벽 산책은 홀로 걸어갈 때가 많아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어서 더 매력적인 것 같다. 조금은 차가운 공기가 나의 뺨을 기분 좋게 스쳐가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나의 마음을 즐겁게 해 준다.
예쁘게 피어난 달걀 프라이 꽃
걸으면서 발견한 "달걀 꽃"이 왠지 반가웠다. 어릴 때 시골집에서 처음 만난 이 꽃을 그곳 친구들과 함께 달걀 프라이 꽃 또는 달걀 꽃이라고 마음대로 이름을 붙여서 부르던 꽃인데 우거진 풀숲 사이에서 자신만의 노력을 기울여 도도하게 피어난 달걀 프라이 꽃이 기특하면서도 너무 반가웠다.
초등학교 여름방학 때 나와 동생은 엄마 친구의 친정집에 놀러 갔었다. 엄마와 어릴 때부터 친했던 그 친구는 나와 동생에게 "이모"라는 호칭으로 불리었고 지금까지도 가족처럼 서로 왕래를 하면서 지낸다. 이모의 아들과 딸은 나에게 오빠와 친구가 되었고 내 동생에게는 오빠와 언니가 되었다.
서울에서는 학원을 다니면서 공부해야 하는 여름방학이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다.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은 늘 바쁘셨고 나와 동생은 계획된 스케줄대로 움직여야 했었다. 시골집에 놀러 갔을 때 할머니가 만들어주시는 간식을 먹으면서 유유자적 시간을 보내었고 그곳에서의 시간이 나에게는 유년 시절의 행복한 기억으로 남은 것 같다. 특히 책 읽기를 좋아하는 나는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는 자유시간이 행복했다. 학원 숙제를 하고 문제집을 풀어놓아야 책을 읽을 수 있었는데 시골집에서는 아무도 나의 일정을 간섭하지 않았다.
시골에서의 여름은 많이도 싱그러웠다. 산과 들은 온통 초록의 향연으로 물들어 있었고 졸졸 흐르는 개울가는 아이들에게 좋은 놀이터가 되어주었다. 개울가에 놀러 간다는 말에 나와 동생은 원피스 수영복과 수영 모자를 쓰고 나갔는데 그런 모습으로 개울가에 나온 아이는 동생과 나뿐이었다. 아이들은 일상복을 입고 개울가에서 옷이 물에 흠뻑 젖어도 걱정도 하지 않고 마음껏 놀았다. 그 자유로움이 나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초록색 잎을 가지고 하늘로 뻗어나간 웅장한 나무
산책을 하면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초록 나뭇잎들 사이로 햇볕이 들어오고 있었다. 시골집 평상에 누워 할머니가 주신 간식을 동네 아이들과 함께 나눠먹으면서 할머니 이야기를 듣다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나뭇잎들 사이로 햇살이 비치었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한낮의 더위에 아이들이 지칠까 봐서 평상에 아이들을 모아놓고 간식을 주면서 이야기를 하시던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과 평상에 옹기종기 모여않아 한가로운 시간을 즐기던 아이들과의 행복했던 시간이 그리워진다.
얼마 전까지도 산책할 때 연한 연두색을 보이던 나뭇잎들은 진한 초록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자연 속에서 나무가 뜨거운 햇살과 바람 그리고 비에 당당히 맞서 열심히 노력을 기울여 연두색 잎인 유년 시절을 지나 초록색 잎인 청춘시절로 도래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파란 하늘에 좀 더 가까워지고 싶은 꿈을 이루기 위해 초록색 잎을 가지고 하늘로 나뭇가지를 쭉쭉 뻗어나간 나무의 모습은 웅장하고도 멋지다.
자연과 사람에게 유년 시절과 청춘시절은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한 시절 가장 열정적으로 나 자신을 위해 맹렬히 노력하며 살아갔던 그 시간들은 소중한 기억이 되어 삶을 살아갈 때 어떤 어려움 앞에서 견뎌낼 수 있는 힘이 되어주는 것 같다.
금요일인 오늘은 고등학생인 아이가 집으로 오는 날이다. 아이가 원하는 학교로 진학하느라 평일은 나와 떨어져서 학교 기숙사에 머무른다. 내신 경쟁이 치열한 학교에서 부단히 내신을 챙기고 모의고사 공부를 하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는 아이가 나는 안쓰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