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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원 Oct 17. 2024

빨판 달린 것들이 정말 싫어

사랑의 위대함에 대하여

"여보 정말 사랑해. 나는 진짜 결혼 잘했어."


 내 몫의 낙지를 온전히 넘겨준 날 내가 남편에게 들은 말이다. 뭐 대단한 일이라고 이런 소리를 듣나 싶겠지만 조금 기다려보시라.


 술을 좋아하는 나와 먹는 것을 좋아하는 남편은 자연스럽게 밤마다 술을 마시게 되었다. 유난히 육아가 힘들었던 어느 날 아이들을 재우고 나와 눈이 마주친 우리는 배달 어플을 켰다. 광어와 도미회를 시켜 푸짐하게 먹고 마시자 육아로 힘들었던 스트레스가 싹 풀리는 것 같았다.


 회를 몇 번 먹고 난 다음에는 치킨 집에서 옛날 통닭을 시켜 먹었다. 그다음에는 무뼈 닭발에 닭 모래집 세트였고 나중에는 소곱창 구이에 푹 빠져 지냈다. 너무 행복했던 나날이었다. 나의 체중을 확인하기 전까지.


 저체중에 가까운 정상 범위를 유지하던 나의 체중이 급속도로 늘었다. 잠기지 않는 바지를 억지로 채우면 뱃살이 까꿍하고 튀어나왔다. 눈코입은 그저 달렸을 뿐이고 그나마 몸 날씬한 것으로 젊은 아줌마 흉내를 내며 내심 뿌듯해하던 나였으니 꽤나 충격을 받았다.


 술을 포기할 수는 없었기에 우리는 종목을 바꾸기로 했다. 최대한 건강하고 칼로리가 적은 안주. 최종 낙점된 것이 낙지 탕탕이였다. 따포장한 낙지 두 마리를 시켜 1인 1 낙지를 먹었다. 입에서 살살 녹는 것은 물론이고 몸에 힘도 넘치는 것 같았다. 쓰러져 누운 소도 일으켜 세운다는 자연강장제 아니었던가! 우리는 최선의 것을 찾았다는 기쁨에 취해 마음껏 씹었다.


  내 기준 정상 범주에 속하지 않는 남편은 그다음 날도 낙지를 시켰다. 아이를 재우고 씻고 나오면 낙지가 배달되어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낙지를 만났다. 남편은 낙지에게 꼬물이라는 애칭도 지어줬다. 주 3회 이상 한 달을 넘기자 나는 더 이상 낙지가 반갑지 않았다. 반절을 남겨 남편에게 건넸다. 남편은 나를 아주 사랑스럽다는 듯이 쳐다보며 고마워했다. 그다음 날은 삼분의 일을 먹고 넘겼고 그다음 주에는 다리 두세 점을 먹고 넘겼고 그다음 달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그럼에도 남편은 꼭 두 마리를 시켜 한 마리를 맛있게 먹고 두 번째 낙지는 기쁘게 먹었다. 안주 없이 먹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그때부터 나를 위해 같은 해물이라며 새우깡을 사 오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내가 낙지를 싫어하는 이유는 충분히 설명한 것 같다. 그럼 다음에는 오징어 이야기를 해볼까? 세 군데의 횟집에 돌려가며 주문을 넣어도 다 취소되는 날 남편은 마른오징어를 먹는다. 오징어를 씹는 게 스트레스 해소에 그만이라고 했다. 씹을수록 입안에 도는 감칠맛이 아주 끝내준다고. 오징어를 가끔 예쁘게 먹기만 했어도 내가 그 녀석까지 싫어할 일은 없었을 것이지만 우리 남편은 절대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다. 침대에 누워서 오징어를 씹지를 않나, 오징어 껍질을 쭈아악 벗긴답시고 침대에 흰 가루를 잔뜩 떨어뜨리지를 않나. (그냥 오징어랑 살지 그래?) 저녁에 먹을 오징어가 떨어졌다고 주말 피크 시간에 온 가족을 끌고 대형마트에 다녀온 적도 있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우리에게는 문어가 남았다. 오징어를 파는 그 대형마트에는 튼실한 문어도 판다. 자숙 문어는 아이들도 좋아해서 가끔 사다 먹는다. 워낙 큰 편이라 한 번에 다 먹지는 못하고 데쳐서 먹고 남은 것은 냉장고에 넣어둔다. 그러면 남편이 퇴근 후 야식으로 곧잘 먹는다. 한 번은 문어가 조금 작기도 했고 애들도 잘 먹어서 한 마리를 온전히 먹어치웠다. 다음 날 퇴근한 남편이 냉장고에서 헤매고 있길래 뭐 하냐 물었더니 문어가 없단다. 그래서 어제 다 먹었다고 했더니 그럴 리 없다며 나를 의심하는 것이 아닌가. 문어에 대한 애정이 지극해지면 현실을 부정하고 아내마저 의심하게 되는 것인가? 냉장고에서 남편 머리를 꺼내  내 얼굴에 가까이 붙인 다음 한 음절씩 똑똑히 말해주었다.


"나는 문어 싫어! 빨판 달린 것들 다 싫어. 진짜 싫어. 그중에 낙지가 제일 싫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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