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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원 Oct 16. 2024

엄마도 칭찬이 고프다

 9월 말에 PT를 시작했는데 10월에 연휴가 많았다. 10월 1일, 3일, 9일 징검다리 휴일이고 아이들 재량휴업까지 이어지니 PT를 제대로 받을 수가 없었다. 운동 초기에는 주 2~3회 정도는 받아야 틀이 잡힌다던데 어째 달력이 도와주지를 않는다. '안 되겠다 개인운동이라도 하러 가야겠다.' 죄책감을 덜기 위해 헬스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담당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나보다 한참 어린데 근육을 보면 인사가 저절로 공손해진다. 두 손을 모으고 다음 회차에 여행 때문에 못 온다고 말하니 선생님 표정이 굳는다.


"회원님 주 3회를 해도 부족한데 주 1회도 지금 못하고 계시잖아요. 여행 갔다가 언제 오세요? 도착하는 날 오후에 나오세요. 아니면 토요일 아침에라도 나오세요." 


나는 사고 친 강아지처럼 눈을 아래로 깔고


"선생님 다음 주부터 진짜 열심히 할게요." 하며 재빨리 운동기구 쪽으로 몸을 돌렸다. 포식자의 눈은 절대로 마주 보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아는 나이다.


 눈에 띄지 않게 그림자처럼 움직이며 운동기구에 몸을 넣었다 뺐다 했을 뿐인데 벌써 허벅지가 불타오른다. '그럼 오늘은 이만하고 유산소로 깔끔하게 마무리해 볼까?' 하고 기구를 내리는데, 철근같이 단단한 팔목이 기구를 잡아 올린다.


"쉽고 편한 기구는 그만하시고 이쪽으로 오시죠. 스미스 머신 스쾃 하실게요. 무게 없이 12개 3세트, 10kg 달고 3세트, 15kg 달고 두 세트 하세요."


  반항 한 번 못하고 스미스 머신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무게 없이 스쾃만 했는데도 온몸에 땀이 난다. 겨우 10kg 3세트를 마치고


"선생님 그런데 이것도 무리예요. 다리가 바들바들 떨려요. 무게 더는 못 올리겠어요."

"회원님 안 무너지셨잖아요. 하실 수 있다는 뜻이에요. 10kg에 60프로 정도 힘쓰셨으니까 15kg 충분히 하실 수 있어요." 한다.


  그러고는 옆에서 지켜보며 감시까지 하는 거다. 근 1~2년 동안 필라테스에 골프에 운동으로 많이 다져졌다고는 하나 태생이 마르고 가는 내 다리가 유난히 안쓰러워 보였다.  기구 양쪽에 15kg씩 무게가 실린다. 끄응 신음을 내며 겨우겨우 앉았으나 올라갈 일이 걱정이다. 역시나 일어날 때는 절로 비명이 터져 나온다. 5개가 넘어가자 도무지 일어날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오행산에 깔린 손오공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들어 올리느니 그냥 깔려 있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지구 중력의 위대함을 느끼며 나는 이대로 지하로 꺼지는 상상을 해보았다.  아득해지는 내 정신줄을 붙드는 선생님 목소리가 들린다.


 "힘내세요. 두 개 만 더. 한 개만 더." 온몸의 힘을 모아 들어 올리는 것은 내 젖 먹던 힘이었으리라. 온몸의 땀구멍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선생님 진짜 죽을 것 같아요."

"잘하셨어요. 자세 안 무너지셨어요. 진짜 잘하신 거예요."


 순간 입이 벌어지고 눈이 가로로 찢어졌다. 거울을 안 봐도 안다. 바보 같은 미소다. 잘했다는 한 마디가 이리도 달콤한 거였나? 나도 그저 칭찬에 목마른 한 마리의 짐승이었던 것이다.


 처음 PT를 등록하던 날 선생님은 하찮은 내 다리 근육을 보시며 한숨을 내쉬셨다.

"체지방은 보통이신데 근육량이 적으시네요. 운동 많이 하셔야 돼요. 쉽게 근육이 안 붙을 것 같아요. 가능하면 증량을 하시면서 근육 늘려가는 것으로 할게요."


 누가 봐도 빈약한 다리지만 그런 말을 듣자 자존심인지 오기인지 모를 것이 피어올랐다. 선생님이 시키는 운동을 이 악물고 했다. 40년 넘게 숨겨왔던 힘이 솟았다. 선생님이 깜짝 놀라시며


"근육량은 적은데 근력이 좋으세요!"하고 칭찬해 주셨다.

나는 기쁜 마음에


 "저 헬스 꿈나무인가요?" 하며 금방에라도 보디빌더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마도 이때부터 나의 운동강도는 예견된 것 같다. 열심회원은 누구라도 탐을 내게 마련이니까.


 허벅지가 끊어지는 통증을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조금 건강해지고 싶었던 것뿐인데 이렇게 아프다고? 내 표정을 읽으신 건지 선생님이 본인의 허벅지를 대주시며 만져보라고 하셨다. 피부 속에 쇠로 된 무언가를 숨겨놓은 것 같았다. 역시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없다는 세상 이치를 새삼 깨달았다. 인사를 마치고 흐느적거리는 다리를 양손으로 부여잡고 걸어 나오는 내 뒤통수에 들려오는 목소리.


"회원님 힘이 좋으셔서 금방 느실 거예요. 다음 시간에 만나요."


 나는 또 파블로프의 개처럼 침 흘리며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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