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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원 Oct 18. 2024

인싸도 키우고 아싸도 키운다

 애 셋을 낳았는데 죄다 아빠를 닮았다. 셋다 쌍꺼풀 없이 눈이 가로로 길다. 코는 낮고 짧아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다행히 얼굴은 작고 다리는 다들 긴 편이다. 딱히 예쁘지도 못나지도 않은 평범한 외모인데 나랑은 닮은 데가 거의 없어서 아빠 없이 다녀도 아빠 닮았다는 소리를 듣곤 했다. 

 

 성격은 제각각이다. 쌍둥이 둘 다 내향형이지만 첫 째가 좀 더 내향형에 경계심이 강하고 예민하다. 안전한 곳에서 안전한 사람과만 논다. 둘째는 먼저 다가가는 성격은 아니지만 다가오는 사람을 막지 않고 두루두루 잘 어울린다. 셋째는 언제나 하이톤의 목소리, 과장된 리액션의 소유자이면서 곤란에 처한 친구를 지나치지 못하는 정의로운 성격을 가졌다. 여기까지만 말해도 누가 인싸이고 아싸인지 구분이 될 거다. 


 막내는 어딜 가도 친구들의 사랑을 받고 초대를 받는다. 본인도 잘 베풀고 처음 보는 친구와도 곧잘 어울려 놀아서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친구가 흐른다. 둘째는 딱히 걱정이 없다. 우리 집에서 가장 정상적인, 거의 유니콘과 같은 존재이다 보니 에피소드도 적다. 


 문제는 첫째인데, 얘는 5학년인 현재도 만날 울면서 집에 온다. 그래도 좀 컸다고 눈물을 꾹꾹 눌러 참고 집에 와서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운다. 실내복 차림이거나 앞치마를 하고 있을 때는 눈물콧물로 지도를 그리거나 말거나 내버려 두는데, 오늘은 블라우스 차림이니 이제부터 타이밍이 중요하다. 등을 어루만져 잠깐 달래주며 양손으로 볼을 잡아 얼굴을 들어 올린다. 아이에게 눈 맞춤을 해준 다음 재빨리 코를 스캔하여 콧물의 질감과 양을 측정한다. 아이는 백 퍼센트 다시 얼굴을 내 품에 묻고 울 것이므로 콧물이 떨어지기 전에 머리를 품에서 떼어낸다. 이때 아이를 싱크대 쪽으로 안다시피 끌고 가서 방심할 틈 없이 손에 먹을 것을 쥐어준다. 십중팔구 먹을 것에 정신이 쏠린다. 이 방법은 우리 집 애어른 할 것 없이 통하는 방법이다. 


 첫째가 얼마나 낯가림이 심하고 부끄러움을 타는지 초등학교 3학년 때는 담임 선생님께 오해도 받았다. 학부모 상담주간에 전화를 하신 선생님께서 오래 뜸을 들이신 후 어렵게 말을 꺼내셨다. 몇 번이나 고민하며 전화를 먼저 드려야 하나 고민하셨다고 했다. 준비해 온 말이 있지만 먼저 내 말부터 듣고 싶으시다며 우리 첫째에 대해 자세히 말해달라고 하셨다. 조금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원래 준비했던 말을 차근차근했다. 워낙 부끄러움이 많아서 친구 사귀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정도의 내용이었다. 


선생님은 3주 넘게 지켜본 결과 아이의 행동이 우려스럽다며 몇 가지를 예로 드셨다. 


첫째, 쌍둥이 자매인 둘째 외에는 다른 친구들과 상호작용이 아예 없음.

둘째, 선생님과도 눈 맞춤이 안되고 있음.

셋째, 쉬는 시간에 개별활동을 하다 수업시간이 되면 전환이 되지 않음.

넷째, 초 3 수준에 맞지 않는 두꺼운 책만 하루 종일 읽고 있음.


 선생님 말씀을 듣는 순간 느낌이 왔다. 오해하셨고 오해하실 만하다고.


 내 대답은 이랬다. 


먼저 말 걸 용기는 없고 친구들이 말 안 걸어 준다고 집에 와서 매일 웁니다. 

선생님과 눈 마주치면 발표시킬까 봐 부끄러워서 눈을 못 맞춥니다.

집중력이 좋아서 뭔가에 빠지면 못 듣습니다. 

독서 수준이 높습니다. 


선생님은 안도하시며 말씀하셨다.


"제가 선입견이 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더 유심히 지켜보고 지도하겠습니다."


 말씀처럼 선생님은 우리 아이를 유심히 지켜보시고 성향에 맞는 활동을 권해주셨다. 독서동아리에 참여시켜 친구를 만들어주셨고, 그 친구들과 상호작용을 하며 학급 일에도 마음을 붙일 수 있게 유도해 주셨다. 둥이는 초 3에 독서동아리를 하며 책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깊은 정을 나눌 수 있었다. 정말로 감사한 일이었다. 


 그래서 해피엔딩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5학년이 된 지금 첫째는 학급 내에 단짝이 없어 혼자 지낸다. 쉬는 시간에도 자리에 앉아 혼자 책을 본다. 팀을 나누고 가위바위보로 이긴 사람이 팀원을 뽑아가는 체육활동에서는 한 번도 지목받지 못해 맨 마지막까지 남겨진다. 간식을 가지고 와서 친구들과 나눠먹기로 한 날에 깜박하고 안 가져간 적이 있었는데, 나눠주지 못하고 받아만 먹기는 미안하다고 아무것도 안 먹고 왔다. 이번 체험학습 때도 자유시간에 혼자 남겨져 심심하다고 전화가 왔다. 아무렇지 않은 척 길 잃어버리면 안 되니까 선생님 옆에 딱 붙어 있으라고 말해줬다. 그렇게 돌아온 날은 더 꼭 안아준다. 수고했다고, 괜찮다고, 너는 여전히 훌륭한 아이라고 언젠가 너를 알아주는 친구가 생길 거라고, 기왕이면 네가 먼저 다가가는 용기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마음이 쓰리고 아프지만 아이를 끌어안고 등을 토닥이며 괜찮다고 말해주다 보면 정말로 괜찮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친구는 필요하지만 혼자만의 시간이 더 중요한 첫 째는 아마 평생 외로울 거다. 그럴 때마다 내가 옆에 있어줄 수도 없다. 지금의 외로움과 서러움이 이 아이의 인생을 지탱해 주는 단단한 기둥이 되기를 바라본다.


 아이 셋을 키우며 늘 하는 생각이지만, 저절로 크는 아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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