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5시 36분 휴대폰 화면에 막내 수학학원 선생님 번호가 뜬다. 그제야 오늘 막내 학원 가는 날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벌써 수업이 시작된 후인데 아이가 도착하지 않아 전화를 하신 거였다. 전화통화였지만 내 몸은 자동으로 활같이 휘어졌고 선생님이 눈앞에 계신 양 죄송하다는 말이 연신 튀어나왔다. 원장님은 웃으시면서 이번 달부터 요일이 바뀌어 그러실 수 있다고 하시며 다음 주에 보강을 해주신다고 하셨다.
어이가 없어 한숨 한 번, 보강을 해주신다니 안도감에 또 한숨 한번 내쉬고 있는데 도어록 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막내 코에 어쩐지 방울 두 개가 매달려 있다. 뭐라 입을 열까 망설이고 있는데 이놈 갑자기 울어재낀다.
"엄마 수학 학원 가기 싫어요. 오늘 피아노도 하고 수영도 하고 왔더니 너무 힘들어요"
물론 힘든 일정이긴 하다만 당혹스러운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학원이 세 개나 겹치니 피아노를 다른 요일로 옮기자는 나의 제안에 친구랑 같이 가야 한다며 고집했던 건 막내였다. 한 번 안아주고 등을 토닥여준 다음 간식으로 요거트를 꺼내 주었다.막내는 울면서도 식탁에 자리를 잡고 초콜릿 시리얼을 토핑으로 골랐다.(울면 서도 먹는 게 우리 집 시스템이다. ) 언제 말해주나 고민하다
"오늘은 어차피 늦어서 못가. 편히 간식 먹어."하고 말이 떨어지는 순간 막내의 눈이 번뜩였다. 눈물이 멈추고 콧물이 제 집을 찾아 쏙 들어갔다.
"아. 엄마 제가 엘리베이터 안에서부터 눈물을 짜내려고 애를 썼는데 실패했지 뭐예요. 엄청 속상했는데 다행히 엄마를 보자마자 눈물이 나왔어요. 이렇게 엉엉 울면 엄마가 학원가지 말라고 할 줄 알고 애썼는데. 늦어서 못 가는 거였다고 하니 에이 괜히 고생했네요. 엄마! 학원 안 가서 너어무 좋아요. "
(우리 막내의 말에는 쉼표가 없어 옮겨 적기만 해도 숨이 찬다.)
잠깐 아이를 쳐다보던 나는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했다.
"그런데 어쩌지? 선생님이 다음 주 보강해 주신대. 다음 주는 수요일 하고 금요일 두 번 가게 생겼는데?"
해맑게 웃으며 요거트를 퍼먹던 막내는 숟가락을 떨어뜨렸고 그 작은 콧구멍에서는 다시 줄줄 슬픔이 흘러내렸다.
작은 녀석의 희로애락이 요란스럽기도 하여 웃음 참기가 어려워 혼났다. 아무리 노력해도 피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 때쯤이면 우리 막내는 얼마나 멋진 어른이 되어있으려나 기대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