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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원 Oct 21. 2024

매운맛 쌍둥이

쌍둥이의 숙명

 임신 테스트기에서 줄을 보고 아기집을 보러 갔던 날의 설렘을 기억한다. 임신, 출산, 육아가 꽃길 인 줄만 알았던 그때, 점 하나가 찍힌 초음파 사진을 보고 느꼈던 감정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이주 뒤 진료에서 아기집 하나를 더 발견해 모두 놀랐지만 나는 마음을 다잡으며 둘을 공평하게 사랑하겠노라 다짐했다. 태명도 골고루 불러주고 왼쪽과 오른쪽 혹은 위쪽과 아래쪽에 주의를 기울여 어루만졌다. 30주에 이르러 왼쪽 오른쪽에 자리 잡은 아이들의 태동을 느끼면서는 이름을 더 확실하게 불러주었다. 이놈들의 경쟁을 눈치챈 건 그때부터였다.


 왼쪽에서 발길질을 하면 오른쪽에서 성을 내었다. 처음에는 왼쪽 녀석이 차면 오른쪽 녀석이 성가셔서 피한다 정도의 움직임이었는데  32주가 넘어가자 내 배를 꽉 채운 녀석들은 방에서 난리가 났다. 한쪽이 차면 다른 쪽은 더 세게 찼다. '내 뱃속에 근육질 캥거루 두 마리가 들어있는 게 틀림없어!' 애들 싸움에 애꿎은 내 방광은 늘 비상이었다.  자다가도 벌떡 먹다가도 벌떡 일어나 앉아 배를 문지르며 제발 진정해 달라고 빌었다. 얼른 주수를 채우고 출산하기를 바라던 날들이었다.


 낳아보니 뱃속에서의 싸움은 싸움도 아니었다. 쌍둥이가 서로를 인식한 다음부터 먹는 것 입는 것 노는 것 하나하나 엄마아빠 일거수일투족까지 살피며 경쟁을 했다.


 둘째가 심한 장염에 걸려 입원했다 퇴원한 후였다. 첫 째가 바로 배턴을 이어받았다. 그렇지 않아도 둘째가 아파서 받는 특별대우가 고까웠던 첫째는 흡족했다. 콧소리를 흥흥대며 엄마 아빠에게 번갈아 안겼다. 설사와 구토를 이기는 기쁨이었나 보다. 그 모습을 보던 둘째 눈빛에는 노여움이 서렸다. 일촉즉발의 대치 상황이 이어진다 싶더니, 첫째 죽 그릇이 먼저 차려지는 것에 분개해 둘째가 숟가락을 집어던지고 상을 물렸다. 사랑이 조금이라도 한쪽으로 기운다 싶으면 온 집안이 뒤집어졌다.


  지금은 물론 어릴 때에 비해 고상해졌지만 싸움은 여전하다. 아니 오히려 치열해진 면도 있다. 우리 집 어린이들은 저녁 먹고 난 다음 영어책 30분 읽기 수학 문제집 30분 풀기를 밥벌이처럼 한다. 집에서 학습태도를 잡아주기 위해서다. 셋째는 아직 적응 중이고 첫째 둘째는 3년 가까이 씨름한 끝에 하루 루틴으로 자리를 잘 잡았다. 문제는 책이다. 틈만 나면 책을 읽는 둘째는 공부 시간이 되어도 한 번 책을 잡으면 덮지를 못했다. 책 읽는 모습이 예쁘지만 다른 아이들 때문에 공부를 빼줄 수도 없었다. 매일 울고 달래고 혼내는 일이 반복이었다. 고민 끝에 아침에 일어나서 영어 책을 읽는 게 어떠냐고 했더니 그러겠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더니 정말 일어나서 영어책을 읽고 있었다. 기특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래봤자 내 유전자가 아닌가? 예상과 달리 아이는 하루도 빠짐없이 일어나 영어책 읽기를 끝냈다. 저녁때는 마음껏 놀거나 책을 읽었다. 일이 주가 지나자 첫째도 가담했다. 저녁 먹고 둘째 노는데 혼자만 영어 책 읽는 게 약이 올랐으리라. 아침에 일어나 밥을 준비하러 나가면 소파에 상서로운 후광이 비쳤다. 애 둘이 소파에 앉아 영어 책을 읽는 광경이란? 실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어느 날 아침, 찢어지게 우는 소리에 놀라 거실로 뛰어나갔다. 둘째가 첫째를 노려보며 울고 있었다. 상황을 파악해 보니 첫째가 먼저 일어나 영어책을 읽고 있었나 보다. 둘째는 당연히 눈이 뒤집혔을 테고. 누구를 혼낼 수도 없는 상황이 당혹스러웠다. 


 다음 날 일어나서 나가보니 둘째가 소파에서 자고 있었다. 왜 여기서 자냐고 물었더니 첫째 일어나기 전에 일어나 영어책 읽기를 마치려고 그랬다고 했다. 몇 시에 일어났냐고 물으니 5시 30분에 일어났다고 했다. '얘가 지금 제정신인가?'  이렇게까지 할 필요 없다고 잠이 훨씬 중요하다고 해도 아이는 입을 꾹 다물었다. 둘째의 경쟁심은 아무도 막을 수 없겠다 싶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된 지금, 같은 수학학원에 다니고 있다. 처음 입학테스트를 볼 때 수준이 비슷하여 같은 반에 배정되었는데 역시나 우려했던 상황이 나타났다. 누가 숙제를 먼저 마쳤느냐 단원 평가를 더 잘 봤느냐에 따라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학원이 끝나고 아이들이 차에 타면 나는 눈치를 보느라 바쁘다. 아이들 중 하나라도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싶으면 내 등골이 서늘해진다.


 이래서 내가 살겠나? 이럴 거면 학원 옮기거나 그만두라고 해도 유지부동이다. 너희의 경쟁자들은 남의 집에 살고 있다고 누누이 일러도 아이들은 자기 눈에는 쟤만 보인다고 했다. 책 안 좋아하고 책상에 앉으면 큰일 나는 줄 아는 막내를 키워보니 쌍둥이의 욕심과 경쟁이 엄마 눈에 기특한 것도 사실이다. 알아서 잘하는 아이. 나도 기왕이면 그런 아이 키워보고 싶었다. 한데 마음이 편치 않다. 무한경쟁 사회에 살면서 너무 어린 나이에 경쟁에 노출이 된 것이 이 아이들에게 과연 좋기만 한 걸까? 혈육 경쟁자를 떨치기 위해서 새벽 6시에 일어나고 5시에 일어나면서 아이는 진짜로 자기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아갈 틈이 있을까? 이기는 삶이 아닌 원하는 삶을 살게 해주려면 나는 무엇을 해주어야 할까?


잘해도 못해도 엄마의 고민은 끝이 없다. 전국 일이 등도 아니고 전교 일이 등도 아니고 반 일이 등도 아닌데 이럴 일인가. 전국 등수 십만 일 등과 십만이 등의 싸움 맵다 매워. 이렇게 매운걸 보니 우리나라 교육의 미래가 썩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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