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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원 Oct 22. 2024

매일 도를 닦는 이유

 똘똘하고 야무진 줄 알았던 첫째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영 적응을 못했다. 옷을 제대로 입고 등교하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티셔츠나 바지를 거꾸로 입는 것은 예사였고, 내가 한 눈 파느라 못 본 사이에 내복대신 팬티 두 개를 껴입는다거나 팬티 대신 내복 두 개를 껴입고 간 적도 있다. 특히 물건 챙기는 것에 서툴렀다. 우산은 일회용이었다. 양말 한 짝은 대체 누굴 줬니? 교과서, 실내화를 잃어버리는 것은 기본이고, 심지어 실내화 가방이나 책가방도 어딘가에 흘리거나 놓고 왔다. 가격이 꽤 나가는 봄가을용 점퍼도 잃어버린 것이 대여섯 벌은 족히 된다.


 초3 때였나? 네 번째 점퍼를 잃어버리고 온 날은 너무 화가 났다. 세 번째 점퍼를 잃어버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거니와 새로 산 점퍼가 꽤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꼭 찾길 바랐다. '잃어버리고 온 곳이 뻔 한데 그걸 못 찾고 들어와? 어디 한 번 고생해서 찾아와라 이 녀석아!'


"점퍼 찾을 때까지 집에 들어올 생각도 하지 마. 알았지?" 하며 문밖으로 쫓아냈다. 애 둘이 흐느껴 울면서 집을 나갔다. (생각해 보니 한 명은 무슨 죄람)

 

 한 시간이 지나도 애들이 안 왔다. 걱정되어 창문 밖을 보니 조금씩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안 되겠다 싶어 애들을 찾으러 가려고 현관문을 열었는데 둘이 현관 앞에서 울고 있었다. 결국 못 찾은 모양이었다. 비가 와서 집에는 왔는데 엄마가 찾을 때까지 집에 들어오지도 말라했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눈물만 빼고 있었던 것이다. 최대한 화를 가라앉히고 마음속으로 '참을 인'자를 새겼다.


 점퍼를 잃어버리지 않을 현실적인 방법을 몇 가지 알려주는 게 낫겠다 싶었다. 놀이터에 가자마자 점퍼를 벗어 가방에 넣거나 가방끈에 묶어 둔다. 장소를 옮길 때는 가방 근처를 두 번 세 번 살핀다. 장소를 이동할 때는 친구들이 점퍼를 입었는지 보고 나는 입었는지 확인한다. 등등


 내 얘기를 가만히 듣던 아이는 다시 눈물을 찔끔 흘리며 감기 걸려도 괜찮으니 점퍼 안 입고 다니면 안 되냐고 물었다. 자기는 도저히 안 잃어버릴 자신이 없다는 거였다. '참을 인, 참을 인'


"엄마가 잃어버려도 괜찮을 만큼 저렴한 점퍼로 사줄게. 걱정하지 말고 그냥 입고 다녀. 알았지?"


 아이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아주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여서 그 뒤로 여름용 점퍼 하나와 봄가을용 후드 집업을 더 잃어버리고 왔다. 물론 화는 내지 않았다.


 잃어버리는 성격은 고쳐지는 것이 아닌지 아이는 휴대폰도 자주 잃어버렸다. 1학년 때 사준 미니폰은 진짜 여러 번 잃어버렸는데 운이 좋았는지 매번 찾았다. 아무 기능이 없는 폰이라 누가 주워가지도 않을뿐더러 아이들 동선이 학교 학원 집이다 보니 동선을 따라다니다 보면 그냥 찾을 수 있었다. 몇 번 잃어버리더니 나중에는 폰을 들고 다니지도 않았다. 5학년이 되니 미니폰은 싫다며 큰 휴대폰을 사달라고 했다. 친구들은 다 스마트폰 있는데 자기들만 없다며 몇 번을 진지하게 조르는 거다.


"미니폰도 제대로 못 챙기는데 무슨 스마트폰이야. 대신 공부폰 사줄게. 데이터는 안되지만 큰 거야."


 아이들은 스마트폰이랑 똑같이 생겼다며 아주 좋아했다. 한 일이 주는 매일 갖고 다니며 잘 챙기는 듯도 했다. 하지만 곧 흥미를 잃은 아이들은 휴대폰을 두고 다니기 시작했고 학원이나 학교 도서관에서 여러 번 찾아왔다. 그런데 이번에 잃어버렸을 때는 조금 달랐다. 어디에서 잃어버렸는지 도저히 생각이 안 난다고 했다. 가볼 만한 데는 다 가봤는데도 없다고 했다. 책가방, 실내화가방, 학원가방 다 찾아보라고 했다. 아이는 징징 울면서 가방을 뒤지러 가더니 잠시 후에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며 더 크게 울었다.


 며칠이 지나도 나오지 않자 내가 나섰다. 학교, 학원, 도서관, 아파트 관리사무소, 경비실 모두 샅샅이 찾아보았다. 2주가 지나도 폰은 돌아오지 않았다. 진짜로 주인 손을 떠나려는 모양이었다. '안녕 휴대폰아. 너는 갔지만 내게는 위약금이 남았어.' 이제 새 폰을 사줘야겠다며 남편과 중고 마켓에 알림을 걸어두었다. 하루이틀 기다려보고 마땅한 물건이 나오지 않으면 새로 개통해 줄 생각이었다.


 학교 끝나고 바로 아이들을 태워 학원에 데려다주고 오는데 첫째의 실내화 가방이 둘째 것에 비해 무거웠다. 우산을 챙겨 다니나 싶어 내려보니 열린 지퍼 사이로 뭐가 반짝였다. '설마?' 바로 그것이었다. 2주간 들들 볶이며 찾아 헤맨 그것. 잃어버린 적이 없으니 어디다 잃어버렸는지 알 턱이 없었던 거다.


출처: 픽사베이

 머리에 엄청난 열기와 압력이 느껴져 주문을 외웠다. '참을 인, 참을 인, 참을 인.'


 나는 오늘도 사람 하나를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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