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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리 황금 레시피

by 주원

노가리를 불에 구워 먹으면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주에 한두 번은 가는 단골 술집에서 남편이 처음 노가리를 시켰을 때는 입에 대고 싶지도 않았다. 흉하게 입을 크게 벌린 데다 빼빼 마른 녀석은 전혀 먹을 게 없어 보였다. 대체 어디를 먹어야 한다는 말인가! 내 엄지손가락 굵기만 한 노가리를 들어 요리조리 살피다 그냥 내려놓았다. 남편은 나를 보고 웃더니 노가리를 덥석 들어 머리부터 씹었다. 와그작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가 댕강 사라졌다. 남편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퍼졌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다시 노가리를 집어 들었다. 차마 머리를 먹고 싶지는 않아서 꼬리 쪽을 조금 깨물어 보았다. 이에 닿자마자 꼬리가 기분 좋게 바삭거리며 입안에서 부서졌다. 씹으면 씹을수록 감칠맛이 돌았다. 꼬리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내리 세 마리의 꼬리가 내 입속으로 사라졌다. 남편은 기분 좋게 웃으며 머리 쪽을 차지했다. 꼬리와 머리를 빼면 몸통이라고는 손톱만 해서 먹을 게 없다고 생각했는데 꼬리와 머리가 별미였다. 몸통도 물론 감칠맛이 있지만 머리와 꼬리의 바삭하고 고소한 맛은 따라올 수 없었다.


완벽하게 구워진 노가리. 꼬리는 내 입속으로 머리는 남편 입속으로 들어갔다.



그때부터 우리는 노가리를 첫 안주로 선택했다. 항상 시작은 생맥주 500 두 잔에 노가리, 그다음 500 두 잔에 아귀포, 그다음 500 두 잔에는 쥐포나 혹은 새끼 먹태다. 맥주가 술술 들어가는 데는 건어물 만한 것이 없었다. 애주가에게 제격이었다.


맥주와 노가리 주문을 넣고 남편과 나는 누가 노가리를 굽는가를 살핀다. 소고기 스테이크보다 더 어려운 게 노가리 굽기다. 노가리는 낮은 불에 골고루 구워야 전체가 바삭해진다. 센 불로 대충 구운 날에는 겉에만 타고 속은 익지 않아서 질기고 쓰다. 하나도 태우지 않고 알맞게 익은 노가리가 테이블 위에 오르면 우리는 눈으로 말한다. '아싸. 가오리.'

이렇게 구워진 노가리는 쓴 맛이 난다.




얼마 전에 남편과 오랜만에 길고 사나운 냉전을 치렀다. 잘 싸우지도 않거니와 싸워도 최대 이틀을 넘기지 않는 우리인데 이번에는 달랐다. 4박 5일간의 냉전은 매우 긴 편이었다. 아이들 앞에서 내색하지 않았지만 둘이 한 공간에 있으면 냉랭한 기류가 흘렀다. 사과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마음먹고 있는데 택배가 왔다.


'노가리 40 미 *2'


'이럴 수가!'


남편이 혼자서라도 노가리를 먹겠다고 시킨 모양이었다. 노가리 80 미라니! 같이 먹을 때는 좋다고 먹었는데 싸우고 나니 괜히 딴지를 걸고 싶어졌다. 어린 명태를 다 잡아 잡수시겠다? 지금 명태 씨가 말라서 대구 새끼를 노가리라고 판다는데 그걸 80마리나 사다니 아주 대구니 명태니 생선 씨를 말리겠다는 거지 뭐야. 내가 무슨 생각을 하든 말든 남편의 의지는 분명했다. 아이들을 재우자마자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오븐 돌아갔다. (우리 집은 가스레인지를 사용하지 않아서 직화구이를 하지 못한다.) 노가리를 오븐에 굽는 모양이었다. 5분쯤 지나자 온 집안에 비린내가 가득 차기 시작했다. 안방 문을 닫고 베란다 문을 모두 열었지만 비린내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온 집안에 비린내가 가득했다. 정녕 매일 먹을 모양이었다. 내가 잠깐 잊고 있었지만 우리 남편에게는 특이한 식성이 하나 있다. 한 가지 음식을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질리기는커녕 한번 꽂히면 죽도록 먹는다. 노가리 전에는 낙지였다. (정상가족 1부 5화 '빨판 달린 것들이 정말 싫어' 참조)


배신감에 치가 떨렸다. 사과를 열 번 해도 모자랄 판에 저렇게 혼자 판을 벌린다고? 몇 날 며칠 혼자서 노가리를 구워댄다고? 약이 바짝 오른 나는 더 독해졌다. 노가리 따위에게 지면 안된다. 노가리는 내 적수가 아니다. 나는 먹고 싶은 게 아니다. 그냥 비린내가 못 견디게 싫은 것뿐이라고 되뇌었다.


의미 없는 냉전이 4일을 넘어가던 시점. 눈이 마주친 우리는 웃음이 터져버렸다. 아마 유치한 기싸움을 몇 날 며칠이나 지속한 서로가 한심해서였지 않을까? 무기징역을 때려도 모자랄 거 같았던 이유는 생각조차 안 났다. 서로 미안하다는 말도 필요 없었다.


아이들을 재우고 남편이 맥주를 꺼냈다. 노가리를 기가 막히게 구워줄 테니 기다려보라고 했다. 그 며칠 동안 황금레시피를 알아냈다는 거였다. 삼일 내내 오븐에 들어가 있는 노가리를 노려보던 그는 찾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 레시피가 뭐냐고 내가 묻자 남편은 잠깐 뜸을 들이더니 눈을 가늘게 뜨며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230도에서 5분 뒤집어서 다시 5분."


다들 받아 적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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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