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동네 커피숍에서 우연히 막내 2학년 때 같은 반 친구 엄마를 만났다. 나랑은 그전부터 안면이 있던 언니고 바로 앞 동에 산다. 그 언니가 다짜고짜,
"자기는 애 다 키웠더라. 이제 고생 끝났겠어."
"네?"
종업식날 막내가 병원에 가느라 학교에 결석했다. 그때 담임선생님께서 그 언니 아들에게 우리 막내 몫의 유인물을 나눠주시며 다음에 만나거든 전해주라고 하셨단다. 손꼽히게 모범생인 그 아이는 언제고 우리 막내를 마주칠까 기다렸고 막내를 만나자마자 한달음에 달려가 얘기를 전했다고 했다. 그러자 막내는 팔을 힘차게 내두르며 자기는 '그것'이 필요 없으니 네가 알아서 버려달라고 했단다.
"아니 무슨 2학년 짜리가 받아보지도 않고 필요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 고 녀석 참 맹랑하대."
무슨 뜻으로 말하는지 단박에 이해가 되었다. 방학식이 아니고 종업식날 받은 것이니 막내는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 듯 했다. 우리 막내에게는 조금 남다른 면이 있다. 처음 무언가를 익힐 때는 아주 사소한 것까지 질문하며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인과과정이 이해가 되지 않거나 상황이 납득이 되지 않으면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아이는 아니었다. 어른들도 어려워하지않고 질문하고 따지기도 하는 아이를 보며 난감했던 적도 많았고 대드는 거냐며 혼내기도 했다. 그런 과정을 수 천 번쯤 겪었을 이 아이는 나름의 기준을 찾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기준에 부합된다 싶으면 엄마인 내게 묻지 않고 스스로 판단해서 결정하고 행동한다. 예를 들면 또 이런 일이 있었다.
막내 피아노 학원에 교육비를 결제하러 갔더니 선생님이 아이 교재를 보여주셨다.
"어머니 00 이에게 새 교재를 시작하자고 했더니 굳이 친구들이 쓰던 교재를 쓰겠다고 했어요."
어쩐지 교재가 낡고 여기저기 낙서가 되어 있었다. 교재 살 돈이 없다고 말한 적도 없거니와 이 학원은 교재비를 따로 받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막내는 자기는 굳이 새 책이 필요 없으니 헌 책을 쓰겠다고 한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아이. 아마도 이 아이는 나의 품을 빨리 떠나려는 모양이다. 가슴에서 뭉글한 기쁨과 아쉬움이 솟아났다.
고개를 돌려보니 6학년 짜리 둥이도 어느새 애티를 벗고 있었다. 이렇게 큰 아이들을 나 혼자 아기취급 한 것은 아닐까 생각도 들었다. 이제 육아는 다른 국면에 접어든 게 틀림없었다.
오후에 영어 공부를 하던 아이들이 문법이 어렵다며 질문을 했다. 오래전에 배운 내용이라 기억이 잘 안나서 간단히만 설명해주었다. 이제는 너희들도 다 컸으니 엄마가 예전처럼 답을 찾아주면서 공부를 시키고 싶지는 않다고 얘기했다. 앞으로는 문제를 풀어주기보다는 공부하는 방법을 가르쳐줄 것이다.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를 해야하는 시점이 왔다. 대신 이제부터는 너희들 삶이니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는 전혀 문제 삼지 않겠다고. 그저 너희의 삶을 응원한다고 말했다. 가슴 벅차게 선언하고는 뒤돌아섰는데, 품 안의 자식 떼어놓는 환희와 고통이 함께 느껴지며 눈가가 젖어들었다.
"엄마. 그런데 왜요?"
"너희들 이제 많이 컸잖아. 너희 스스로 삶을 개척해 나갈 준비를 하는 거야. 이제 엄마도 엄마 인생 찾아야지."
그러자 둥이가 당황스럽다는 듯 말했다.
"엄마. 그런데 엄마 인생 몇 년 만 더 기다렸다 찾으시면 안 돼요?"
"맞아요. 그리고 영문법이랑 엄마 인생이랑은 무슨 상관이에요?"
눈가에 맺혔던 눈물이 쏙 들어갔다. 아무래도 내가 의젓한 막내를 보고 오해를 단단히 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