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관 수업 하는 날
남편이 금요일과 월요일에 휴가를 냈다. 휴직 전에 선거로 인한 임시공휴일과 주말의 징검다리 휴일을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마침 금요일이 아이들 학교 참관수업날이라 좋았다. 남편은 늘 바빠서 아이들 태어나고 여태까지 기관에서 하는 모든 행사에 참여해 본 적이 없었다. 어린이집 발표회, 부모 참여수업, 입학식, 졸업식 모두 포함해서 말이다. 어린이집은 모두 같은 데를 다녀 뭐 어려울 것 없었지만 유치원 입학식과 졸업식은 혼자라 아쉬웠다. 아이들이 어느새 이만큼이나 자라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딛는 감동의 현장을 나눌 이 없이 혼자 앉아 눈물 콧물을 찍어냈다.
막내까지 초등에 입학하니 문제가 생겼다. 세 살 터울 아이들의 참관수업이 꼭 한 날이더라는 거다. 두 살 터울 형제자매가 많아서인지 2학년 4학년은 다른 날 했다던데 3학년 6학년 우리 아이들은 꼭 같은 날 했다. 아이들은 서로 자기를 보러 오라고 하지 내 몸은 하나지 난감했다. 수업시간이라고 해봐야 40분인데 10분씩이라도 보기 위해 발바닥에 땀나도록 아래위층을 뛰어다녀야 했다.
이번에는 남편이 함께라니 마음이 한결 놓였다. 2교시에 세 아이 담임 수업을 모두 듣고 3교시에 첫째, 둘째의 전담 수업을 들으면 되었다. 효율적으로 움직이기 위해 남편은 막내, 둘째, 첫째 순으로 나는 첫째, 막내, 둘째 순으로 교대로 움직이기로 했다. 남편은 3층 나는 5층이었다. 각자 맡은 교실로 헤어지면서 20분 후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첫째 교실에 들어가 아이와 눈 맞춤을 시도했다. 아이들은 엄마가 온 것을 확인할 때까지 미어캣처럼 보초를 선다. 아이가 고개를 들어 살피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눈이 반달 모양으로 바뀌었다. 마스크 속의 입은 헤벌쭉하고 있을 거다. 그 맑은 눈빛을 보니 나도 모르게 행복감이 밀려왔다. 아이가 다시 고개를 앞으로 하고 수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착하고 모범적인 우리 아이의 뒤통수가 반질반질 어여뻤다. 한참 아이와 선생님을 번갈아 보는데 교실 밖에 남편이 터덜터덜 걸어오는 게 보였다. 약속 시간이 아직 한참 남았는데 왜 벌써 왔지? 하고 나가보았다.
"여보. 왜 벌써 왔어?"
"00 이가 눈 마주치자마자 아빠 가고 엄마 데려오래."
"그래? 알았어. 그럼 당신이 여기 잠깐 있다가 둘째 교실에 가봐. 이따 다시 만나."
나는 급히 막내 교실로 뛰어갔다. 막내는 편지를 쓰고 있었다. 편지의 수신인이 엄마라서 꼭 엄마에게 읽어주어야 했던 거다. 들어가자마자 쫓겨난 아빠가 짠했지만 막내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다행히 제시간에 도착했는지 아이와 눈이 마주치고 얼마 후 편지를 읽는 차례가 되었다. 꾹꾹 눌러쓴 편지를 읽는 아이의 목소리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다음은 둘째 교과전담 참관이었다. 체육 수업이라 강당을 찾아가는데 첫째 과학 전담 수업 교실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 교실에 있어야 할 남편이 안보였다. 얼른 전화를 걸어 어디냐고 물었더니 아직 쉬는 시간이라 교실 앞에 앉아 쉬고 있다고 했다.
"무슨 소리야? 지금 과학 수업 시작했어. 다른 부모님 다 들어가서 듣고 있어."
"그래? 여기 애들 막 돌아다니길래 쉬는 시간인 줄 알았어. 얼른 갈게."
'아니. 어딜 가서 누구를 보고 있는 거야?' 저럴 때 보면 도대체 학위는 어떻게 받았는지 모르겠다. 얼른 남편을 찾아 제 위치에 세워두고 둘째 교실에 찾아갔다. 분명 남편이 있는데도 발바닥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남편을 찾는 동안 강당에서도 이미 수업이 시작한 후였다. 5학년이 강당 입구 쪽에서 수업을 하고 6학년 들은 뒤에서 수업을 하고 있었다. 5학년들 사이를 헤치고 지나가기 미안해서 선뜻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데 남편이 찾아왔다. 첫째와 눈이 마주쳐서 인사만 하고 왔다는 거다. '내가 참관 수업이 인사만 하고 헤어지는 거라고 말했나?' 어째서 이렇게 허술하냐는 말이다. 이래서 경험부족이 무섭다. 왜 안 들어가고 서있냐고 묻기에 방해될까 봐 못 들어갔다고 하자 남편이 같이 들어가자고 했다. 머뭇거리는 내 손을 잡아끌며 남편이 앞장섰다. '오. 박력 있어!'
배구 수업을 받는 둘째가 보였다.
배구 수업인데 서있기 수업인 줄 알았다. 체육 시간을 제일 싫어하는 우리 애를 어쩌면 좋을까! 맨 뒤에서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서있기만 했다. 못하는 것은 괜찮은데 팀운동이라 다른 친구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속이 탔다. 돌아가며 서브를 넣는데 둘째 차례였나 보다. 다행히 아이가 넣은 서브가 잘 들어갔다. 휴 한시름 놨다.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싶었던 찰나 우리 아이 쪽으로 공이 날아왔다.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순간 아이의 두 팔이 머리 위로 쑤욱 올라와 공을 잡았다. 손은 느렸지만 위로 넘어온 공은 더 느렸던 거다. 친구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기대도 안 했던 활약에 아이들이 놀란 듯했다. 1세트가 끝나고 조가 바뀌어 아이가 코트 밖으로 나왔다. 둘째에게 잘했다 수고했다 말해주고 엄마 아빠는 이제 가겠다고 했다. 아이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엄마 아빠 얼굴을 보고 활짝 웃는 아이들을 보며 가슴에 꽃이 폈다. 늦은 봄, 교문을 나서는 우리 부부의 머리 위로 햇빛이 쨍하고 내렸고 가슴에 핀 꽃은 질 줄을 몰랐다. 이보다 더 한 행복이 있을까 싶었던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