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한다
주부는 월요일 아침이 제일 바쁘다. 주말을 알차게 보낸 덕에 마지막 한 방울의 잠이 아쉬운 아이들은 쉽사리 일어나지 못한다. 가능하면 입맛에 맞는 아침을 준비하고 아이들을 깨운다. 녹은 치즈처럼 흐물거리는 아이들을 모두 식탁에 앉히고 나서 준비물을 챙긴다. 꼭 아침에 급하게 준비물을 찾아대니 일찍 확인하는 게 좋다. 요즘은 특히 날이 더워져서 물통을 챙겼는지 확인해야 한다.
한참 아이들과 씨름 중에 남편이 일어나 나왔다. 아침을 차려주고 씻으러 가니 남편이 어딜 가냐고 물었다. 오늘 모처럼 모임이 있어 나간다고 했더니 남편이 하는 말.
"그럼 나는 뭐 하라고?"
"......"
마흔 넘은 남자가 스스로 뭐를 해야 할지 모른다니 놀랍지 않은가! 심지어 나는 그게 뭔지 안다.
"아침 먹고 골프 연습장 다녀와." 내 말에 남편은 바로 '아!' 하며 수긍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허리가 아픈지 꽤 됐는데 이래저래 미루다 병원을 못 갔다. 월요일은 막내 학원 라이딩이 있고 둥이 수학학원 채점도 받아다 줘야 하고 오후에는 아이들 필라테스 수업도 있다. 병원 갈 짬을 내기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 남편 덕좀 보자."
"여보. 연습장 다녀와서 점심 먹고 1시 40분까지 막내 학교 주차장으로 가. 막내 수학학원 데려다준 다음 1시간 뒤에 다시 집으로 데려오면 되는데. 해줄 수 있지? 당신이 막내 라이딩 해주면 나 정형외과 다녀올 시간 될 거 같아."
"응? 데려다 주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고 1시간 뒤에 다시 데리고 와야 해? 너무 귀찮은데."
"너무 귀찮아? 나는 매일 하는 일이야. 모든 일정 다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병원 다녀오게만 해달라는데 이럴 거야?"
남편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 '옳지. 그래야지.'
아침을 마저 먹고 난 남편이 씻고 나와 물었다.
"여보. 내 운동복 티셔츠 어디 있어?"
"옷걸이에 있잖아."
"안 보여서 그래."
한숨이 나올 것 같았지만 참고 티셔츠를 찾아주었다. 바로 화장을 시작했는데 남편이 다시 물었다.
"여보. 내 바지는 어디 있지?"
"옷걸이에 있잖아."
"없어."
"바로 고 옆에 있어. 찾아봐."
"진짜로 안 보여."
한숨을 내쉰 후 티셔츠를 꺼낸 옆옆 자리에서 바지를 찾아다 주었다. 그래. 냉장고에서 헤매고 옷장에서 길을 잃는 남편이 하루이틀이더냐. 이 정도면 약과인 것을. 단장을 마치고 이따 만나자고 다정하게 포옹하고 헤어졌다. 남편을 두고 집을 나서는 발걸음이 그렇게 경쾌할 수 없었다.
이제 막 친분을 다지려는 모임이었다. 두 번째 만남이었는데 쌍둥이를 키우는 엄마도 있고, 아이들 학년이 비슷한 엄마도 있어 대화가 잘 통했다. 한참 대화에 집중하느라 휴대폰을 보지 못했는데 휴대폰 창이 활성화되며 남편에게 메시지가 연속으로 왔다.
'이따 몇 시에 가랬지?'
'1시 40분까지 학교 주차장.'
아까 분명히 당부했던 말이다. 꼭 두 번 세 번 확인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남편은 그새를 못 참고 확인전화를 걸었던 모양이었다. 내가 전화를 못 받자 못 참고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한 거다.
'간식은 뭐 싸가?'
'오렌지랑 과자 한 봉지.'
'오렌지는 까야 돼?'
'응.'
'과자 여러 개 있는데 이 중에 뭐 싸가?'
'여보. 나 금방 들어갈 테니까 이제 그만 연락해.'
단 두 시간의 모임이었다. 아이 픽업 시간은 1시 40분이었고 나는 집에 1시도 안 되어 도착했다. 굳이 길고 긴 메시지와 부재중 전화를 받을 필요도 없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궁금해 못 살 것 같으면 헤어지기 전에 메모라도 해뒀으면 얼마나 좋으냔 말이다.
슬슬 부아가 치미는 것을 참으며 현관문을 여니 남편이 해맑게 나를 반겼다. 약 올랐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정말 몰라서 물었던 거다. 나를 부러 귀찮게 하려는 게 전혀 아니었다.
결혼하고 10년 동안 내가 육아와 살림에 온 힘을 쏟아 경험치를 쌓는 동안 남편은 사회에 나가 싸웠다. 성과를 내고 치욕을 참았고 경쟁을 하고 돈을 벌었다. 각자의 영역에서 특화되는 동안 나는 전투력을 잃어갔고 남편은 생활지능을 잃었을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남편이 안쓰러워졌다. 잠깐 쉬러 들어온 사람을 손이 많이 간다고 구박할 수는 없었다. 눈꼬리를 살짝 올려 흘겨본 다음 한번 꼬옥 안아주었다. 영문도 모르는 남편은 나를 같이 안아주었다. 나는 물었다.
"그래서, 복직이 언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