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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의 권위는 어떻게 세우는가

애지중지와 오냐오냐의 사이

by 주원


남편은 아이들에게 친구 같은 아빠가 되어주고 싶다고 했다. 아이들 어렸을 때 남편이 워낙 바빠서 더 그랬다. 주말에만 겨우 시간을 보내는데 엄하게 훈육하거나 혼내는 마음이 불편하다고 했다. 애틋한 부녀사이를 지키고픈 마음이 이해가 갔다. 훈육은 자연스럽게 내가 맡았다. 규범적인 내 성격에도 맞았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이 아빠를 아주 잘 따랐다. 나한테 혼나면 아빠한테 쪼르르 달려가 세상 서럽게 울었다. 엄마 밉다고 하며 아빠 가슴에 폭 안겨 있는 모습을 보면 귀엽기도 얄밉기도 했다. 이런 딸바보가, 이런 아빠바보가 없다 싶게 잘 지내는가 싶었는데 관계는 생각보다 오래가지 않았다.


남편은 남자 중에서도 굉장히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이었고 딸들은 아주 예민한 성격이었다. 9살이 넘어가자 하루가 다르게 감정이 발달했다. 문제는 감정기복이 크고 복잡다단하게 생각하는 아이들의 수준을 아빠가 따라가지 못하는 거였다. 남편 눈에는 아이들이 여전히 아장아장 걷는 아기로 보였나 보다. 사소한 이유로 하루에도 열두 번씩 널을 뛰는 아이의 마음을 고작 사탕 하나로 어르고 달래는 아빠를 애들은 받아주지 않았다. 어느 순간 아빠가 마음을 몰라준다 싶으면,


"아빠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하며 소리를 빽 지르고 방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어디 아빠한테 버릇없이 구냐고 쫓아가려는 나를 남편이 막아섰다. 아직 어려서 그렇다며 저런 모습도 귀여워 죽겠다는 거였다. 나는 워낙 엄하게 자라 조금 아니다 싶었지만 남편의 방식을 존중해 주기로 했다.


대신 남편과 나는 아빠의 권위는 엄마가 세워주는 것이라 합의했다. 아빠의 빈자리를 엄마가 늘 상기시켜 주고 아빠가 얼마나 사랑해 주는지를 알려줄 의무가 있다고 말이다. 나는 그 합의를 잘 지켰다. 아이들에게 늘 아빠한테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했다. 되도록 맛있는 것이 있으면 하루 종일 고생한 아빠 몫을 남겨두었다. 우리가 이렇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은 모두 아빠가 고생한 덕이라고 말이다. 아이들은 수긍했고 저녁때가 되면 시계를 보며 아빠의 퇴근 시간을 기다렸다.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 뛰어가 아빠를 끌어안았다. 그렇게 잘 굴러가는 줄만 알았는데!


얼마 전 주말에 막내와 첫째가 대차게 싸웠다. 명백히 누군가 잘못한 일은 아니었다. 들어보니 둘 다 맞는 말이라 누구 편을 들어줄 수 없었다. 우선 마음이 격해진 첫째를 달래주기로 했다. 한참 얘기를 들어주다 보니 노곤노곤해진 나머지 잠깐 누워 안아주다가 그만 첫째를 안고 낮잠이 들어버렸다. 단잠에 빠져있는데 막내가 와서 나를 깨웠다. 잠잠한 줄 알았던 막내가 등판한 거였다. 언니를 먼저 달래주고 자기는 아무도 달래주지 않았다면서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한 번 시작된 울음은 한 시간 넘게 이어졌다. 분이 풀릴 때까지 악을 쓰고 발버둥을 쳐야 끝나는 일이다. 다년간의 경험으로 화산이 폭발하면 용암을 쏟아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안다.


한참 후 조금 진정이 된 막내를 달래주려 다가갔다. 막내는 내 쪽으로 몸을 돌려 입으로 따발총을 쏘았다.


"엄마. 아빠는 너무 이기적이에요. 아빠가 언니 달래줄 때 제가 옆에서 저도 속상하다고 했거든요. 그랬더니 아직 언니 차례라고 저를 무시했단 말이에요. 그러더니 저는 끝까지 안 달래줬어요. 저를 사랑하지 않는 게 틀림없어요. 어쩜 저한테 그러실 수 있죠? 엄마가 아빠를 너무 오냐오냐해서 그래요. (응? 갑자기?) 엄마가 아빠가 잘못하는 것도 다 받아주니까 아빠는 엄마한테 무슨 짓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그러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엄마도 잘못한 거예요."


'이게 무슨 궤변이냐?'


뭐라 할 말을 바로 찾지 못해 입을 벌리고 막내만 쳐다보는데, 막내가 다시 울면서 말했다.


"엄마. 그러니까 저 좀 안아서 달래주세요."


정말 안 키워봤으면 모른다. '속상해요. 안아주세요.'라는 말을 저렇게 하는 애도 있다는 걸 말이다. 아빠가 언니를 먼저 달래주고 자기를 성에 안 차게 달래줬으니 엄마는 언니를 달래주고 나서 저를 성에 차게 달래줬어야 맞다. 그런데 엄마가 그만 잠이 들어버린 거다. 열 살 어린이답게 참아보려 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화가 더 커졌을 거다. 엄마가 일부러 저를 안 달래준 게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일단 엄마를 깨워서 아빠 탓을 했는데, 말하다 보니 아빠가 저를 성에 차게 못 달래준 게 엄마 탓이라는 거다.


쉼표도 없이 폭우처럼 쏟아져 내리는 말속에 담긴 아이의 마음을 읽어내기란 쉽지 않다. 그 마음을 고르게 펼쳐 상처로 뭉쳐진 것이 없는지를 살피고 골라내는 것도 엄마의 일이다. 숙제를 받은 날이었다.


남편도 아이도 내 손에 닿는 우리 가족 모두를 애지중지 돌본다고 생각했는데 아이 눈에는 그게 아니었을까? 아무래도 아이는 제게는 하루 일과를 지키고 가정의 규칙을 준수하도록 하면서 아빠에게만 너무 예외를 준다고 생각했나 보다. 밖에서 애쓰는 아빠의 하루를 알 리 없는 철없는 소리겠지만 가장의 권위를 위해서는 한 번 교통정리가 필요할 것 같았다.


아이와도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것 같다. 오냐오냐 키우지 않겠다고 늘 다짐하는데 막내라 그런지 가끔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과하다 싶을 때가 있다.


애지중지와 오냐오냐의 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헤매고 있다. 귀한 아이들을 키우며 가장의 권위를 세우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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