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사가 되겠다는 열 살 막내의 꿈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정상가족 1부 15화 참조) 지나가는 꿈이려니 했는데 만 4년이 넘게 같은 꿈을 꾸고 있다. 간단한 쿠키 정도는 눈감고도 굽는다. 밀가루 체치고 버터를 녹여 섞고 베이킹파우더까지 개량하지 않고 감으로 넣는데 제법 맛이 좋다.
처음 남편은 여섯 살 아이의 꿈에 응원을 해주지 못했다. 어렵고 힘들다는 이유였다. 나는 남편의 팔을 꽉 누르며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
"초치지 말고 가만히 있어."
열두 번도 더 바뀌는 게 아이들의 꿈인데 뭘 그리 진지하게 반응하느냐 말이다. 그런데 금방 바뀔 줄 알았던 막내의 꿈이 만 4년 넘게 이어져오고 있다. 요리사가 되겠다고 처음 생각했던 이유는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기 위해서였다. 자기가 요리를 할 줄 알면 온 세상의 진미를 다 맛볼 수 있다고 행복해했었다. (실제로는 입이 매우 짧다. 쿠키를 굽고 요리를 해서 내게 다 먹으라고 하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어질러진 주방은 덤이고.)
뭐든 진득하게 하지 않는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틀렸다. 그 시간 동안 막내의 꿈은 더 구체화되기도 했다.
어느 날 온 가족이 유명 패밀리 레스토랑에 간 적이 있었다. 막내가 좋아하는 검은 식전빵에 파스타, 스테이크까지 테이블 가득 먹음직한 요리가 차려졌다. 배고팠던 우리는 참 맛있게도 먹었다. 한참 먹던 막내가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물었다.
"엄마. 지금 점심시간이잖아요. 그럼 지금 주방에서 요리사는 요리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지."
"그럼 요리사는 점심 언제 먹어요?"
"점심 장사가 끝나면 보통 2~3시쯤 먹지 않을까?"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겼던 막내가 잠시 후 말했다.
"요리사가 되는 것 다시 생각해 봐야겠어요. 점심시간에 점심을 못 먹는다는 건 비극이에요."
그 뒤로 한참 잠잠하던 막내는 어느 날 나를 붙들고 말했다.
"엄마. 제가 생각해 봤는데 식당 요리사는 안 되겠어요. 저는 간단한 브런치나 디저트를 파는 카페를 하고 싶어요."
'오호라!' 막내는 제법 머리를 쓴 모양이었다. 그리고 카페라니! 사실상 막내에게 정말 잘 어울리는 업종이었다.
막내는 바로 제 카페에서 팔 메뉴를 연구했다. 유튜브도 보고 집에 있는 레시피북도 보고 제법 진지하게 요리를 했다. 밀가루 반죽해서 생면 파스타를 만들기도 하고. 디저트를 만들겠다고 레이디핑거 쿠키를 구워 티라미수도 직접 만들었다. (물론 퀄리티는 기대하지 마시라.)
그러던 어느 날 막내가 내게 아주 선심 쓰듯 말했다.
"엄마. 나중에 제가 카페 차리면 엄마 와서 일하세요."
"정말? 엄마 월급 얼마 줄 건데?"
거기까지는 생각 못했는지 막내가 약간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곰곰 생각했다. 일분 뒤
"얼마나 받고 싶으신대요?"
"글쎄. 월급이면 한 달에 한 300만 원쯤?"
눈이 동그래진 막내가 말했다.
"아니. 엄마! 자식한테 꼭 그렇게 돈을 받으셔야겠어요?"
느닷없는 막내의 일갈에 남편과 나는 웃음이 터져버렸다. 남편이 물었다.
"그나저나 막내야 너 카페는 무슨 돈으로 차릴 거야? 카페 차리려면 돈 많이 드는데."
막내가 다시 고민에 빠졌다. 한참 고민하다 안 되겠는지 언니에게 도움을 청했다.
"언니야 무슨 일 하면 돈 많이 벌 수 있어?"
"돈? 야. 돈 벌려면 치과 의사 해야지. 우리 치과 가서 돈 엄청 내잖아. 치과 의사들 돈 진짜 많이 번대."
그러자 막내가 뭔가를 깨우쳤다는 듯 씩 웃더니 말했다.
"그럼 나는 치과의사가 될 거야. 의사 해서 돈 많이 번 다음에 카페 차려야지!"
"야. 그런 말도 안 되는...(읍... 읍... 입막음)"
쌍둥이의 입을 양손으로 막으며 나는 함박미소를 지었다.
막내의 거창하면서도 소박한 꿈에는 달콤한 냄새가 나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