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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마흔 셋

정감이 넘치는 목욕탕

by 주원

떡국에 나물에 과일에 한과까지 잔뜩 먹고서 오후에 무얼 할까 하다가 읍내에 문 연 목욕탕이 있다기에 가족들과 채비를 하고 나섰습니다.


천장이 낮은 작고 오래된 목욕탕이었습니다. 들어서자마자 따뜻한 훈기가 느껴졌습니다. 온탕에 들어앉으니 추위에 종종거렸던 몸이 사르르 녹는 듯했습니다.


더 뜨끈한 열탕에 들어가니 금세 땀이 났습니다. 옆에 식혜통에 아이스커피를 드시는 분들이 계시기에 어디에서 살 수 있는지 여쭈었습니다.


"오늘은 파는 사람이 연휴라 쉬고, 우리는 단골이라 이렇게 타마시고 다음에 계산하고 그래요." 그렇구나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커피를 마시던 분이 다가오셔서 "설탕 넣은 게 좋으세요? 안 넣은 게 좋으세요?" 물으셨습니다.


어리둥절해하는 저희에게 "얼마나 드시고 싶으면 물어보셨겠습니까. 제가 사드릴게요. 제가 타드리고 내일 계산하면 됩니다." 하셨습니다. 말씀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하다고 정말 괜찮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몇 분 뒤 그분께서 설탕을 넣은 아이스커피 한통, 설탕을 넣지 않은 커피 한통을 만들어서 가져다주셨습니다. "맛있게 드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얼마나 시원하고 고소하고 향긋하고 맛이 좋던지요. 갈증이 싹 달아나고, 머릿속까지 환해졌습니다.


새해 첫날 예기치 못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아이스커피 천사님께서 나눠주신 복된 순간을 잊지 않고 저도 누군가에게 작은 친절을 나누며 살아가야겠습니다. 복 많이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아이스커피 천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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