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 구상
돌잔치 사진에서도 커다란 복숭아를 두 손으로 들고 입에 물고 있을 정도로 저는 어려서부터 꾸준히 과일을 좋아했습니다. 초등학생이었을 때도 과일이 떨어지면 엄마한테 이야기를 해서 단골 과일가게에 가곤 했습니다. 독립해서 시장 가까이 살 때는 저렴하고 맛 좋은 제철과일을 이것저것 다양하게 쟁여두고 먹었습니다. 그때 저희 집에 놀러 온 친구들은 수박, 자두, 바나나 등등 다양한 종류의 과일을 사다 놓고 먹는 저를 신기해했습니다.
특히 혼자 살면서 겁 없이 수박 한 통을 사다 먹는다는 걸 가장 신기해했습니다. 저의 여름 즐거움 중 하나는 수박을 실컷 먹는 것이기에 그게 별나다고 하는 친구들이 저는 오히려 의아했습니다. 과일을 사는 것도 귀찮고, 손질하기도 어렵고,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게 번거로워서 과일을 안 먹는다는 친구들의 말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저는 과일을 사러 가서 계절별로 달라지는 제철과일을 구경하고 요리조리 살피며 고르는 걸 재밌어하고, 손질하는 것도 귀찮다고 느끼지 않고, 음식물 쓰레기는 당연히 나오는 거라 생각해서 저에게는 그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친구들의 말을 듣고서야 과일을 먹는 과정이 누군가에게는 수월하지 않은 일이라는 걸 자각하게 됐습니다.
'나는 뭘 좋아하나, 내가 잘하는 일은 뭘까?'를 고민할 때마다 도통 생각나는 게 없었는데, 문득 알게 됐습니다. 저는 과일을 좋아하고, 과일을 고르고 손질하는 일을 잘한다는 걸. 좋아하고 잘하는 걸 찾을 때 직업, 돈벌이와 직결되는 전문적인 어떤 것, 타인의 인정을 받았거나 받을 만큼 훌륭한 걸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어려웠는데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하는 것들 중에 타인에 비해 내가 수월하게 해내고, 자주 하는 것이 뭐가 있지?'라고 질문을 바꾸니 찾아졌습니다.
어제 잠들기 전에 문득,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데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생각의 꼬리물기를 하다가 과일이 떠올랐습니다. 캄캄한 방에 누워 과일을 아이템으로 사업구상을 하다가 '배달에 민족'에서 본 것 같은 기시감에 열정이 흐릿해지며 잠이 들었습니다. 오늘까지 이 생각이 떠나지 않는 걸 보면, 제가 끌리는 부분이 명확이 있는 것 같으니 과일을 가까이하는 일에 대한 구상을 놓지 말고 품고 있어 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