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 난 자존감
무청 시래기에 묵은 김치까지 넉넉히 넣고 비지찌개 한솥 끓여 두 그릇 가득 먹고, 참외도 하나 깎아먹고서도 허기가 가시지 않아 깊숙이 쟁여뒀던 초콜릿까지 꺼내 먹었는데도 허기가 채워지지 않습니다.
어딘가 구멍이 나서 먹은 게 줄줄 새나 봅니다. 자존감에 생긴 구멍이라 애초부터 먹는 걸로는 메우기엔 무리가 있었습니다. 자존의 뜻은 '긍지를 가지고 스스로를 존중하며 자기의 품위를 지킴'이라고 합니다. 긍지가 부족했던 탓인지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품위를 지키는 데 실패했습니다.
요즘 '기세', '지름', '나댐'이란 단어를 자주 들여다봅니다. 드래곤볼처럼 제 안에 장착해 두고 불합리하고, 부당한 일이 생길 때마다, 마음이 갈팡질팡 소심해질 때마다 시원하게 꺼내 쓰고 싶습니다. 추가로 자기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제 할 말을 똑부러지게 하는 담력도 필요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