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의 역사
저는 아침형 인간을 꿈꾸는 부엉이입니다. 기본적으로 잠이 많고, 아침에 일어나는 걸 너무나 힘들어합니다. 제 잠버릇을 알만한 가족, 친구들은 저더러 어떻게 그렇게 오래도록 잠을 자냐며 놀랄 정도입니다. 어머니께서는 일찍이 잠 깨우기를 포기하셨고, 그 영향으로 초등학생 때부터 지속적으로 지각을 하여 졸업식 때 개근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선생님께 혼나고, 교무실 앞에서 손들고 벌 받고, 교실 앞에 불려 나가 엎드려뻗쳐 벌 받는 굴욕을 당해도 꾸준히 지각을 했습니다.
선도부를 피해 담을 넘다가 교복 치마가 찢어어지는 일을 겪은 뒤 꼼수가 늘어서 애매하게 지각하는 대신 교문 앞 선도부와 선생님께서 철수한 뒤, 첫 교시 바로 직전에 교실로 잠입하는 수를 쓰기도 했습니다. 첫 교시 선생님께서 교실에 저보다 먼저 도착한 경우에는 화장실에 가방을 숨기고, 화장실에 다녀온 척 천연덕스럽게 교실로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가장 난감했던 순간은 살그머니 들어선 교실에 아무도 없을 때였습니다. 첫 교시 수업이 과학실 수업으로 당일 변경된 걸 알리 없었던 저는 하마터면 결석처리가 될 뻔했습니다. 선생님께서 늦게 도착한 저를 보고 왜 늦었냐, 아무도 말을 안 해줬냐, 교실에서 자다가 이제 왔냐 물으셨습니다. 애매한 웃음으로 답을 대신하며 후다닥 빈자리에 가서 앉았습니다. 다행히 거기서 그날의 소동은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러다 화학 선생님께 지각이 발각되어 엎드려뻗쳐 혼난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다시는 지각 안 할 자신이 있으면 들어가 자리에 안고, 자신이 없으면 계속 벌을 받고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잠에 대해서라면 제 자신을 잘 알았던 저는 지각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고, 같이 벌 받던 친구들이 자리에 돌아간 뒤에도 계속 벌을 받았습니다. 지각은 했지만 선생님께 거짓말까지 하면 안 되겠단 생각으로 자리를 지켰는데, 의도치 않게 반항으로 해석되어 다른 선생님들께까지 저의 지각 의지가 소문이 나버렸습니다. 그래도 무사히 졸업을 했습니다.
대학입학 후 첫 수강신청 때, 저는 저의 지각 본능을 망각하였고, 집에서부터 학교까지 이동시간이 2시간으로 늘어난 것을 감안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여 1교시 수업을 다수 배치했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지각의 영향은 선생님의 꾸중, 개근상을 받지 못하는 것 정도였지만 대학교는 달랐습니다. 출석은 평가의 영역이었고, 지각은 결석으로 결석은 시험미응시로 나날이 대범해져서 1학년 1학기 생애 가장 낮은 성적을 받았습니다. 값비싼 교훈을 얻은 뒤 다음 학기부터는 오후, 저녁수업을 중심으로 시간표를 구성했습니다. 졸업할 때는 성적이 많이 회복되어 있었습니다.
지금은 지각 잘 안 합니다. 소요시간을 넉넉하게 계산해서 일찍 출발합니다. 여유 있게 도착해야 마음이 편합니다. 늦을까 봐 긴장하고 조급해지고 서두르다 실수하고 뛰어서 숨차고, 도착하기도 전에 미안하다 사과부터 해야 하고, 촉박하게라도 정시에 도착하면 안도할 수는 있지만 안정을 찾는 데는 시간이 걸리고, 진짜 늦어버리면 도착해서 기다린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눈치가 보여서 내내 저자세가 되는 상황이 싫어서 되도록 일찍 가려고 노력합니다. 선생님의 꾸중, 학점 나락에도 고쳐지지 않던 버릇이 가차 없는 사회생활을 겪으며 변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