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앱에서 집에서 학원까지 가는 길을 검색하면 여러 경로를 알려줍니다. 경로를 선택하는 기준은 주로 최단시간 또는 도보이동 최소화입니다. 또 버스보다는 지하철이 불확실성이 덜하다는 생각에 보다 확실한 지하철 경로를 택하곤 합니다. 그래서 학원 개강 첫 주에는 고민 없이 지하철을 한번 환승하는 경로로 집과 학원을 오갔습니다.
그런데 이번주는 지하철을 타고 싶지 않더라고요. 가을풍경을 보며 지상으로 가고픈 마음 하나, 아침 지하철에 끼이고 싶지 않은 마음 둘, 환승구간에 나오는 계단을 피하고 싶은 마음 셋. 화요일 아침 즉흥적으로 버스를 탔습니다. 버스도 한번 갈아타야 하는 경로라서 다음에 타야 하는 버스 도착시간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초조한 마음으로 갔습니다.
버스 정거장마다 승객들이 타고 내리느라 멈춰 서고, 내가 탄 버스만 모든 신호등에 걸리는 듯 얼마가지 못하고 멈출 때마다 환승해야 하는 버스를 타지 못 할까 봐서, 수업에 늦을까 걱정을 했는데, 웬걸 갈아타야 할 버스도 바로 타게 되었고, 학원에 평소보다 10분 일찍 도착했어요. 버스와 지하철의 운행방식이 다른데 저는 버스도 지하철처럼 신호에 멈추지 않고, 정거장에 일정 시간만 잠시 머무르며 일정한 속도로 가길 바랐던 것 같아요. 버스 감각이 없었던 거죠.
그래도 계속해보기로 했어요. 운이 좋아 자리에 앉아갈 수 있었는데, 가을 아침 햇살 쬐며 창밖으로 낙엽 지는 풍경, 생소한 동네를 구경하며 가는 길이 좋더라고요. 잠도 깨고요. 회색빛 지하세계에서는 맛볼 수 없었던 환하고 따사로운 기분이었어요. 그래서 계속해보기로 했습니다.
화, 수, 목 모두 다른 경로를 선택했습니다. 같은 번호 버스를 타더라도 갈아타는 정류장을 달리해 보기도 하고요. 며칠 사이 버스가 느리게 가는 듯해도 늦지 않게 도착지에 데려다준다는 믿음이 생겼고, 이제는 환승 버스 오는 시간을 실시간으로 확인하지 않고 환승정류장 도착 두 세 정거장 전에 확인하는 느긋함을 가지게 됐어요. 안달복달한들 제가 바꿀 수 있는 건 없더라고요. 상황이 다가왔을 때 최선의 선택을 하고 나머지 시간을 풍요롭게 쓰는 게 저에게 유리하다는 걸 깨쳤죠.
그 사이 지도앱이 알려주지 않은 자체 노선도 하나 발견했습니다. 어느 지점에서든 내려서 원하는 버스를 타고 학원에만 도착하면 되는 거잖아요. 가보지 않은 길이 수없이 많을 거예요. 조금 돌아가는 길을 선택해서 낯선 동네를 가볼 수도 있겠고, 지하철과 버스를 섞어 여러 정류장을 가볼 수도 있고요. 날마다 풍경이 다르니 같은 길을 가도 새로울 거예요.
해보니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모험은 아침시간의 몽롱함을 용납하지 않더라고요. 오감은 물론 두뇌회전을 활발히 해서 아침부터 맑은 정신을 유지하게 합니다. 그리고 버스를 타니 지하철 환승구간, 출구 계단을 오르내리지 않아도 되어서 체력을 비축할 수 있습니다.
늦잠을 자서 여유를 부릴 수 없는 날이나 눈비가 많이 오는 날 또는 마음이 바뀌어서 지하철을 타는 날도 있을 겁니다. 그래도 모험을 하고 싶은 날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가 생겼고, 머뭇거림을 줄이고 실행을 가능케 하는 경험을 쌓았다는 게 좋습니다.
가고 싶은, 가야 할 곳이 있을 때 앱이 정해주는 답, 주변 사람들이 제안하는 길을 덥석 선택하기보다 한 번쯤 도착이라는 목표 외에 여정 속에 만날 수 있는 재미를 찾아 저만의 최적의 경로를 만들어 봐야겠습니다. 길은 천 가지 만 가지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