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지어낸 떡을 방앗간에서 아침부터 태생적으로 죄인인 나를 위해 달려온 정성인지 찰기가 느껴지는 그녀가 쫀득거린다. 적나라한 나의 감정표현과 다르게 조목조목 계획적인 그녀는 성실한 조력자다. 나의 고답적인 자유는 종종 정통(精通)적인 가치관 앞에서 승려의 똥처럼 고뇌스럽다. 갈등은 어제나 오늘이나 공기처럼 상존하지만 알아채지 못하니 지뢰밭에 들어선 것 같이 살피고 피하는 게 서로에게 유리하다. 사회적 격리가 완화되니 여기저기 북새통이다. 코로나 블루로 지친 우울감이 해방을 맞이한 것처럼 환호성이 대단하다. 잠시 묶여 있다 풀려 난 인간은 기쁨의 발산에 자제심을 잃기도 하니 염려가 기우가 되길 바랄 뿐이지만, 오집지교(烏集之交)라 제 말만 풍성하다. 화정동 시골밥상의 12첩 반찬이 저 번보다 신선도가 떨어졌지만, 변함없는 맛집이다. 주차장 쪽에 모셔 있는 묘소에 사연이 있을 텐데... 의료선교 '박누가'의사 다큐를 시청하다 생명과 달란트를 세상의 불우한 이웃과 나누고 베푼 천사 같은 사람과 한 푼이라도 악착같이 더 벌기 위해 태어난 시간을 변경하여 정년을 연장하는 비열한 인간이 공존하는 세상의 희비를 느끼게 하는 하루다. 박병출은 '박누가'의사의 본명이다. 그가 아파야 이웃이 아프지 않는다. 그가 고통을 겪어야 이웃이 고통을 겪지 않는다. 왜? 누구에게도 아픔을 주지 않았는데 아픈 시간만큼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게 만드셨을까? 고통 없는 천국에서 그는 행복할까? 한결같이 아픈 이들을 위해 헌신하게 만든 이 땅에 머무는 동안 그는 아프고 가난한 이들에게 예수 '박누가'가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이웃을 돕는다.' 가장 큰 사명이고 명예이고 유산인 것을 사람들이 기억하며 동화의 주인공으로 전해 주는 것이다. 참 좋은 사람, 간직하고 싶은 사람보다 예수의 증거가 된 사람 '박누가'! 필리핀 오지의 날다람쥐 의사 '박병출'이 오늘도 병마를 병출(屛黜)하러 숲길을 헤치며 나가는 것이 보인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