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작 끌어내려했던 먼지 앉은 궤짝 속에서 기대 이상의 황홀경이 존재하고 있었다. 심호흡으로 마음을 진정시키며 보려 했지만 손 안이 벌써 흥건하게 땀이 배어 나온다. 발흥되지 않는 과거는 미화되지 않지만 그 시절 나만의 다락방 공간은 세상의 망원경이었다. 옥수수 잎 사이로 건너편 별채에 사는 시집 안 간 여자의 일상이 내 기억 안에 있다. 그날은 나들이를 하는지 거울 앞에서 속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초콜릿색 팬티스타킹을 잡아당겨 추켜올리자 그녀의 하반신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여자의 힙업은 상징적인 도발 같기만 하다. 전지적 관찰자 시점이 이렇게 무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으니 神의 고약한 심뽀를 알게 된다. 사실 흔한 풍경은 아니고 바람결을 보려다 시야에 들어온 운 좋은 광경을 놓치지 않은 행운이랄까? 탄로 나지 않을 나만의 다락방에서 보낸 시간이 가끔 비집고 어른이 된 후에도 떠오르는 걸 보면 모든 상황의 긴장감은 타인이 모르는데서 기원되는 것 같다. 어제의 기억이 오늘을 기웃거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