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한 교착 상태로 빠져 들면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데도 나는 오히려 깊은 안도감을 느끼고 있다. 주저하며 망설이면서도 자신의 행동 제약은 시간 안에서 자아의 반응을 억제하고 있다. 듣고 나면 소멸하는 노랫소리가 어느새 나를 장악하고 분주한 움직임에 타인의 간섭이 흡수되면서 일방적으로 카메라가 돌면서 나를 체크한다. 생명의 근원 안에 시선이 몰려든다. "잊을 수 없는 여자가 있다고 해서 지금이 불행하다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만난다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건 분명 기억의 심술이다." 도시에서 추방된 사람들이 비천하게 살아간다고 당연하게 비루해져야 할까? 나이가 들어가면서 커져만 가는 염려가 터지지 않는 풍선이 되어간다. 고난을 바라보지 않고 우주의 질서와 무한을 깨달아도 인간은 답변의 존재가 아니다. 생기에 대한 말씀에 경각심이 살아났다. 살아서 할 수 있는 일에 소름 돋는 감동이 언제부터 있었을까? 여자는 사회로부터의 열외에 가치를 두지 않으니 소외된 열정보다 냉정에 방점을 둔다. 마음의 근육이 먼저이지만.... 시종이 명확하니 '각자도생'의 예외는 없다. 내 삶에 관여하는 타인으로 인해 아니 타인과의 비교로 인해 무참하게 망가지고 있다. 일의 형편이나 까닭이 진실에 다가선다고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없으니 최선의 다음으로 전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