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보내는 편지

도망치고 싶지만 도망칠 곳이 없다.

by 소녀


이제 9년 차 사별자. 싱글맘.

우울증과 더불어 마흔 앓이를 심하게 하기도 했다.

앞자리가 바뀜이 이렇게 힘든 일인 건가 싶기도 싶고.

아니지 마음이 문드러져서 곪아 터지려고 하는 거겠지.


털어놓을 곳도 없고,

막막한 현실을 살아가느라 바빠서 도망칠 생각도 못하다가

이제야 숨구멍이 틔인다고 생각하니 머릿속 구석구석 도망칠 생각뿐이다.


어디로 도망을 쳐야 하나.

어디로 가야 현실을 벗어날 수 있나.


너는 뭐 하느라 9년 동안 내 꿈에도 한 번 안 나타나는 건가.

야박해도 이렇게 야박할 수가.

미안해서 나타나지 않는 건가, 원망스러워서 안 나타나는 건가.


속이 곪다가 곪다가 이제는 임시방편으로 덮어놓을 수도 없을 것 같은데,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도대체 견뎌내는 사람들은 어떻게 견디는 걸까.


사춘기를 이긴다는 갱년기와 우울증이 더해지면 내 삶은 어떻게 되는 건가

눈감았다 뜨면 5년이 지나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한놈은 성인이 되었을 테니, 혼자 며칠 훌쩍 떠날 수도 있지 않을까.


차를 타고 있으면, 내가 박을 수는 없으니 누가 와서 박아줬으면 좋겠고..

대중교통을 타고 있으면 사고라도 났으면 좋겠고…

길을 걷고 있으면 누가 와서 박아줬으면 좋겠고..

죽을 용기로 살으라는 말을 정말 싫어하는데,

죽을 용기도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내 남자가 남기고 간 아이들이 눈에 밟혀서 쉽게 죽을 수도 없고,

얼른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가서 아이들이 성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훨훨 날아갈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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