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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지만 고향이 아닌 <대전>

나도 남들처럼 고향을 가지고 싶다

by 자유인
내 기억의 시작은 5세 정도부터이다.


고향은 대전이고 연도는 1971년 *월 **일이다.

정확하다.

주민등록번호와 실제 출생연도월일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주위에 알게 모르게 많다

우리 형도, 엄마도, 내 아내도

지금은 상상하기 쉽지 않은 일인데도 말이다.

왜 태어난 날 가까이 출생신고를 안 했을까?

그만큼 교통도 안 좋았고 행정상 미비점이 많았다고 추정된다.



대전 성모병원에서 엄마를 힘들게 하고 태어났다.

내 또래 중에 대학병원급 산부인과에서 태어난 경우가 거의 없던 시절이다.

그런데 뭘 힘들게 했냐고? 머리가 커서? 맞다.

지금까지 살면서 나보다 머리 큰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엄마는 출산 전 임신중독으로 힘들어 의사의 태아 포기 권유에도 굴하지 않고 날 낳았다.

모성애는 항상 위대하다.

그 후 엄마는 서럽게도 할머니한테 병원에서 애 났다고 혼나셨다.

물론 내 기억엔 없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16대손이다'

라는 진부한 이야기는 재미없다.

내 조상이니 고맙긴 하다.

조상이 너무 훌륭하면 후손이 별 수 없다는데 그 말이 일부분 맞다

집안 행사에 가봐도 다들 힘들게 사는 사람도 많고, 수준 떨어지는 소위 진상도 가끔 보인다.

그 훌륭한 분의 후손이 맞나 싶을 정도다.

그래도 나라를 구했으니 그 정도는 참아주자.

그분 덕분에 내가 태어났고, 대학 재학 중엔 장학금도 받았으니 정말 고마운 분이다.


내 기억의 시작은 5세부터이다.

그저 어렴풋이 엄마 등위에서 본능이 이성을 훨씬 앞서는 어린 시절을 보냈을 뿐

특별하지도 특이하지도 않은 나날이었다.

스크린샷 2025-08-02 164823.png (1984년 대전 출처:구글)


70년대 초반 지방 소도시의 삶이 뭐 그리 특별할까.

서울 같은 메가 시티도 아니고

자연과 벗 삼아 자랐어요 할 만한 곳도 아닌 그야말로 어중간한 수준이다.


대전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추억도 없고 기억의 기간이 너무 짧았기 때문이다.

1세부터 5세까지 대전에 살았으니 어릴 때는 너무 어려서 기억이 없고

그 후 주로 서울에서 살다가 잠시 초교 6학년 때 다시 대전으로 수동적으로 부모님을 따라 이주했다.

그리고 중학교 2개월 정도 다녔다.

그런 과정에서 서울의 삶과 대전의 삶이 너무 괴리가 있어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 도시와 시골의 차이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장소를 옮기고 대하는 사람들의 변경 같은 소소한 환경적 차이 -

스크린샷 2025-08-02 165420.png (대전 중학교. 출처: 구글)

대전 중학교 1학년 시절엔 공부란게 뭔지 알게 되었다.

처음으로 선생님들한테 칭찬받으며 학교 생활을 영위했다.

하루하루가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시험도 환상적으로 잘 보며 의욕에 충만했다.

그러나, 다시 서울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이로 인해 성격이 외향적에서 내향적으로 변하였고 심적으로 힘든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그 후 서울에서의 생활은 짧은 1년여 대전의 추억을 잊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대전에서는 좋은 기억이 없다


나한테 특별할 것도 없는 이곳..

고향이 맞긴 하는데 고향다운 추억이 전혀 없다시피 한 이곳..

-막상 대전에 오래 살아온 사람들은 비교적 생활 만족도가 높은 편인 도시다-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 고향 이야기가 나오면 난 참 난처함에 빠지곤 한다.

분명 대전이 고향이긴 한데 할 말이 별로 없다.

하다못해 대전 지리도 잘 모르고, 대전에서의 내 삶의 궤적도 너무 짧기 때문이리라.


그렇다. 고향은 엄마와 같다던데, 난 엄마는 분명히 있지만 '엄마 = 고향'은 성립되지 않는다.

난 고향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리움도 기다림도 없는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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