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_경기전에서 전통을 보다

음식 그 이상의 향기

by 자유인

조선 왕조 500년은 이 씨 가문의 나라였다.

역사가들은 조선을 선비의 나라였다고 하지만 어쨌든 이 씨 조선이라고들 말하니까. 많고 많은 이 씨 중에 전주이 씨이며 그 곳이 전라북도에 위치한 전주이다. 수도 한양이 아닌 곳에 조선 왕족의 흔적이 잡리잡은 이유이다.

경기전(慶基殿) 이름은 '경사스러운(慶) 기운이 시작된(基) 곳'이라는 의미로, 조선 왕조의 발상지인 전주에 태조 이성계의 어진(御眞, 초상화)을 봉안하기 위해 세워졌다. 즉, 조선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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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벼락을 따라 길을 걷다 보면 한쪽은 고풍스러움이 한쪽은 현대를 대표하는 카페가 자리 잡고 있어 이채롭다.

비에 젖은 길을 걷고 사람이 없으니 이참에 상념에 잡혀보려 했다. 거창한 역사적 흐름에 나를 맡기기엔 내 지식이 부족하여 그냥 무상념으로 태세를 전환했다. 그 자체로 고즈넉해졌다.

어진박물관에 이르러 화려한 의상이 눈에 들어온다. 각각 신분과 위치에 맞게 주인을 맞이했을 이 옷들의 화려함과 유려함에 많은 시간이 저절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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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을 나와 터덜터덜 걸었다. 흙길로 조성된 예스러운 분위기가 이곳과 어울린다.

우산을 쓸까하다가 그만 둔다. 내 겉 옷의 세포가 전주의 비맛을 느끼고 싶어서이다. 전주가 음식으로도 유명한 곳이지만 진짜 전주의 맛은 오랜 역사를 머금은 채 고고히 서있는 자태가 아닐까싶다. 전통의 미란 이런 것이다라고 항변한다.

고풍스러운 경기전을 지척에 두고 '전동성당'이 보인다. 경기전이 조선의 시작을 말해준다면 이 성당은 그 조선왕조의 모진 박해를 이겨낸 또 하나의 역사의 산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건물은 사이에 아무 장애 없이

서로를 마주 보고 있다. 특히 전동성당 자리는 조선 최초의 천주교 순교자인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 이래로 숱한 순교자들이 참수 및 군문효수형에 처해졌던 자리인데, 이들의 피가 흐른 성벽이 철거될 때 이곳의 석재 일부가 전동성당의 건설자재로 전용되기까지 했다. 그야말로 5백 년 조선의 처음과 끝이 한 자리에 살아 숨 쉬는 공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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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4798.JPG (이씨 조선의 시작의 표상 경기전이 끝나갈 무렵 조선의 마지막 무렵 정동 성당이 보인다)


IMG_4800.JPG (전주교구 전동성당 전경)
IMG_4803.JPG (성모 마리아상은 항상 온화하다)
IMG_4804.JPG (순교하신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



명색이 천주교신자이지만, 구력이 짧은 관계로 많은 성당을 가보지 않았다. 마침 본당 안을 가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경건한 맘을 잡고 들어간 본당의 모습은 화려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많은 역사가 말해주는 의자와 정면의 십자가 예수상을 바라보며 경건한 평화가 내 안에 들어왔다. 잠시 자리에 앉아 짧지만 강한 기도를 하고 나왔다.



본당 밖에 나와 빛을 보니 이 여행의 보람을 한가득 안고 나오는 나를 본다.

작지만 숭고한 큰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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