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힐링이 필요해
정말 치유받았으면 할 때가 있다.
바로 지금이다. 흔하디 흔한 직장 번아웃이 나에게도 왔고, 뭔가 리프레쉬가 필요했다.
그러다가 30년 지기들과 약속이 잡혔다
장소는 전남 장성
토요일~일요일로 해서 1박 2일 일정으로 가게 되었다.
별 기대는 안 했다
내가 사는 곳이 도시이면 모를까.. 나도 시골에 사니 다른 시골 가는 느낌 정도고
좋아하는 친구들 오랜 만에 본다는 거에 의미를 두었다.
일기예보대로 아침공기가 소소히 찼다
집가까이에 터미널이 있어 은행에서 현금을 급히 찾고
터미널로 향했다.
티켓은 모바일로 예매를 했는데, 요새 다들 그렇게들 많이 한다
매표구에 머리 대고 '어디 주세요'하던 정겨움은 이제 보기 힘들어졌다.
여기 서산에 온 지도 24년 정도 되었는데 터미널의 모습은 내부가 약간
정비가 되었을 뿐.. 예전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다.
광주행 버스가 있는지 이번에야 알았다
시골 터미널엔 서늘함이 존재한다.
뭔가 외지로 가는 기대감과 바쁨이 공존한다.
그리고 뭐 하나 하려면 대도시로 가야 하는 귀찮음도 있다
어쨌든 출발했다. 목적지는 광주 터미널
중간에 서천 휴게소에 정차했다
약간 장시간 운행이다 보니 중간에 휴게소에 정차를 한다.
이런 대중교통 장거리 운행후 중간 휴식의 느낌이 몇 년 만인가 모르겠다. 주로 버스는
서울에 단독으로 갈 때 이용했기에 2시간이 채 안 걸렸기 때문이다
광주 터미널에 도착하니 확실히 규모가 컸다
각종 시설도 많아서 시간 때우기가 수월할 듯하다.
대형 서점도 있고 극장도 있다
각종 먹거리도 많았고..
잠시 기다린 후에 먼저 도착한 친구들이 나를 픽업하러 왔다.
언제나 반가운 친구들. 나이 50줄이 넘었지만 만나자마자 우리가 처음 만났던 스무 살로
매번 돌아가게 만드는 마법에 휘말린다.
남자 셋이 타고 가긴 좀 작은 차를 타고 용궐산이라는 곳에 갔다
사전에 등산을 목적으로 한 것도 아니고 그냥 갔다
정상 도전에 대한 의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정말 의미 없이 갔다.
섬진강이 좋다고 하던데 겨울이라 을씨년스럽다
도시 사는 친구들은 차창너머 시골 풍광에 감탄사를 내뿜었지만
시골 사는 나는 새로움이 다가올 리가 없었다.
그냥 매일 보는 겨울의 쓸쓸한 시골 풍경일 뿐
기분 탓인가.. 정말 흔하디 흔한 모습
용궐산 입구에 도착했고 가벼운 산행이 시작됐다
탐방로는 보통스럽게 흔한 수준으로 정돈되어 있고
암벽에 글자를 음각해 놓은 것이 웃겼다.. 그것도 빨간색이 들어간다
북한에 있는 금강산도 아니고.. 자연 훼손이다.
흉해서 사진도 안 찍었다
계단이 많다. 경사가 좀 있는 돌 성분이라 좀 천천히 올라가게 만든다.
거대한 암반이 보이기 시작하면 소위 핫 플레이스라는 용궐산 하늘길이 가깝다는 뜻이다.
암벽등반 애호가라면 군침을 흘릴 정도로 암벽이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바위를 한번 만져 본다. 맨질 맨질하다.
남자 셋이 정신없이 수다떨며 계단을 오르면 시야가 넓게 열린다.
유장하게 흘러가는 섬진강의 모습에 아~하고 탄성이 터져 나온다.
어느덧 섬진강이 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한강을 기대했다면 실망했을 것이고, 고즉넉한 아담함을 예상했다면 그 말이 딱이다.
잠시전 실망했던 나의 마음을 괜스리 미안해질만큼 한방에 날려버렸다.
파란 하늘과 지극히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강물의 흐름 경치가 무심하게 의미를 못 찾던
나에게 여기 온 보람을 느끼게 한 것이다.
12월 겨울 하늘이 맑다. 산 정상 근처에서
공기가 더 맛이 있다.
산세의 난이도는 부담 없이 올라갈 정도 수준이다.
등산화 정도만 잘 챙겨 신으면
부담 없는 평이한 수준.
바바리코트를 입고 올라가는 아저씨도 있었다.
옛날 소싯적엔 막걸리 한말을 등에 이고 다녔다는
전설을 말하며 내 옆을 휙 지나간다
정상의 감흥을 논 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기에 미련 없이 내려왔다
하산하여 친구의 처갓집 세컨드 하우스에 자리를 잡고
고기도 굽고 회도 먹을 준비를 했다. 우리는 갑자기 활기를 찾는다.
등산은 그냥 집에 가기 뭐 하니 본게임에 껴놓은 오픈 게임일 뿐..
흔하디 흔하게 불멍도 하고
장작불의 따쓰함과 겨울밤의 날카로운 추위가 공존한다.
술 한잔 하는 중에 하늘에서 눈이 내 얼굴과 조우한다
소복소복 내리며 나무빛깔의 갈색 탁상을 백색으로 바꾼다
좋다 좋다..
달도 우리 보고 웃으니 더 좋다
그렇게 밤이 지나갔다
다음날 일어나니 어제 산행탓에 무릎이 아프다.
내가 산행 난이도가 쉽다고 무시해서 화가 났나보다.
마당에 나가니 고양이가 앉아있다
우리야 객이지.. 여기 터줏대감은 고양이들이다
우리가 그들의 평화를 깬 건 아닐까
보답으로 사진 남기고..
다시 일상으로 아쉬움을 남기고 현실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