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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Mar 08. 2022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리뷰

코로나 확진자 격리 기간에 읽은 고전 소설

 온가족이 코로나 확진자가 되어 꼼짝없이 7일 격리를 해야 했던 때,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서 책과 함께 지냈다. 그 중에서도 도스토옙스키『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이 가장 긴 시간 나와 함께했다. 8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라 쉽게 시작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책장에만 꽂혀 있던 책이다. 『죄와 벌』을 읽으며 느꼈던, 도스토옙스키 고전에 대한 감탄과 감동을 다시 소환할 수 있었다. 덕분에 격리 기간은  답답함 대신 즐거움이었고, 무력감을 느끼기보다는 재충전이 되는 기분마저 들었다.


아름다운날 출판사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격리 기간이 끝나고 출근해서 일상에 적응하느라 그동안 읽었던 책에 대한 정리가 차일피일 미뤄졌었다. 오늘에야 하나 둘 독서 기록장에 정리하기 시작했다. 인물 관계도를 간단히 그리고, 밑줄 쳐 두었던 문장들을 옮겨 적으며 간단히 감상을 덧붙여둔다. 시간이 지나 책 내용이 가물가물해질 때쯤 다시 펼쳐보면 '아, 내가 이런 생각을 했구나'하며 신기해 하겠지. 손으로 독서 기록장을 적는 일이 가끔 귀찮을 때도 있지만 나중에 나의 소중한 추억이 되어줄 것을 알기에 한자 한자 정성스레 적는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독서 기록장


 러시아어가 낯설어서 처음엔 인물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데에 애를 먹었다. 이렇게 간단히 중요 인물들의 관계도를 그려 놓으면 긴 이야기가 간략하게 요약된다.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도스토옙스키가 1878년 초에 집필하여 1880년에 완성한 작품이다. '당시 유럽 문화와 문명의 영향을 받아 급속히 서구화·합리화·물질화·속물화되어 가던 러시아 사회 속에서 고통 받고 신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고 이 책의 편역자 이길주는 해설을 덧붙였다.


 140년 전 러시아 사회의 사람들을 그리고 있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의 물질만능주의, 속물주의를 돌아보게 한다. 풍요해질수록 더욱 돈이 중요시되는 현대를 살면서 돈보다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않으려고 애쓰지만 쉽지 않다. 성숙한 어른답게 개인의 행복보다는 더 고매한 가치를 추구하며 살고 싶은데 매번 작은 이익에 큰소리로 웃고 작은 손해에도 몸을 떤다. 부끄러움을 느끼니 조금씩이라도 성장해가는 나를 기대하는 수밖에…


 자식을 키우고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학부모님들의 고민을 듣는 입장에서 카라마조프 가의 아버지와 그 자녀들을 통해 부모의 역할, 부모와 자식의 소통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부모로서 자식에게 반드시 가르치고 베풀어야 할 덕목은 결국 사랑이다. 자신에 대한 사랑, 타인에 대한 사랑, 함께 하는 삶에 대한 사랑 말이다. 부모가 남긴 돈은 없어지기도 하고 욕심과 갈등을 키울 수 있지만 부모가 보여준 사랑은 자식이 살아가는 내내 따뜻하고 든든한 힘이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나는 많은 돈을 자식에게 물려줄 수는 없더라도 넘치는 사랑을 전하기 위해 노력한다.


 불안과 혼란, 불행으로 삶이 고통스러울 때 나를 지켜줄 신념이 간절하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키고 싶은 무엇, 남은 인생을 걸고 꼭 이루고 싶은 무엇이 있다면 삶이 나를 흔들 때마다 의연하게 견뎌낼 수 있지 않을까.  코로나 확진자가 되어 격리 기간을 보내면서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은 나에게 중요한 질문들을 던졌다. 일상에서 잠시 멈춤은 가끔씩 이렇게 아주 소중한 기회가 되기도 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값진 희생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을까? 희생이라는 단어와 함께 떠오르는 건 자식이다. 분명 자식에 대한 사랑을 내 부모에게 배웠을 텐데 요양 병원에서 외로이 죽어가는 엄마가 아니라 내 곁에 있는 두 아들을 위해서라면 내 목숨 아깝지 않다고 생각해버린다. 이기적인 자식이고 대책없이 맹목적인 부모다. 나도 내 자식에게 똑같이 당하겠지. 당연한 이치라고 생각하니 서운하지는 않다. 다만 부모로서가 아닌 나, 이주용이라는 사람으로서 나는 무엇을 남기고 죽을 것인가 하는 생각에 아득해졌다. 두고두고 읽을 만한 책 한 권 남길 수 있으면 좋으련만 대작가들의 작품 앞에서 한없이 쪼그라들고 있다.


 절대 인생을 두려워하지 마라. 우리가 훌륭하고 참된 일을 시작하면 인생은 진정으로 아름다워질 거야.



 삶의 방향을 잃은 사람처럼 휘청거릴 때 고전을 찾게 된다. 시대를 뛰어넘는 삶의 지혜를 찾으려는 심산이다.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위로도 받는다. 인생을 살아가는 인간은 어디에 사는 어느 시대의 누구든 모두가 각자에게 주어진 삶과 힘겹게 싸우는 중이다. 크고 작은 패배와 승리를 반복하며 어떤 때는 좌절하기도 하겠지만 그때마다 다시 일어나 희망을 만들어낸다면 우리 모두의 삶은 대단한 업적이고 기록될 가치가 있는 역사가 될 것이다. 그 누군가의 이야기를 나도 소설로 쓸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다시 책장에 꽂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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