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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May 03. 2023

김지은 인터뷰집《언니들이 있다》

그래도 다시 일어나 손 잡아주는...


 인터뷰집을 한 권 읽었다. 김지은 인터뷰집 《언니들이 있다》'그래도 다시 일어나 손 잡아주는'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대한민국에서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는 쎈 언니들이 연상됐다. 문득 살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 다른 사람도 나처럼 힘들까 싶을 때, 누군가 내 손 좀 잡고 일으켜줬으면 좋겠다 싶을 때 이런 책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예전엔 나와 비슷한 사람들하고만 어울렸는데 요즘엔 나와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가 궁금하다. 나와 다른 환경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견디고 결국 이겨내며 살아가는 언니들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평온한 내 일상에 톡 쏘는 자극제가 되었다.


1 부당하다 생각되면 온몸으로 저항해

최인아, ‘여성 최초’ 역사를 써온 언니
“혁명을 할 게 아니라면, 현실을 돌파한 샘플이 되어보자!”
최아룡, 17년을 싸운 가장 쎈 언니
“놔두면 언젠가는 더 심각한 사건이 날 것이다. 여기서 멈추게 해야 한다!”
이나영, 페미니스트 전사가 된 언니
“더 강해질 수 있다. 그리고 너는 혼자가 아니다.”
김일란, 기록으로 질문하는 언니
“이 공간에서 배제되고 있는 사람은 누구지? 그 이유는 뭐지?”
이진순, 열릴 때까지 문 두드리는 언니
“그날 그 거리에 있던 사람들은 아직 남아 여기에 살고 있다.”

2 세상이 원하는 공식은 버려

장혜영, 혜정이의 생각 많은 둘째 언니
“‘장애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하도록 만드는 사회에 희망이 있을까?”
김인선, 남편과 이혼하고 여자와 사는 언니
“나는 후회하지 않아요. 지금 행복하니까!”
배은심, 거리의 어머니가 된 언니
“아들 눈에 보이든 않든 엄마가 아들 욕을 먹이면 안 되는 것이지.”
고민정, 첫 마음 그대로 꾸준히 지키는 언니
“나한테는 쪽팔리지 말자!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아니까.”

3 진정한 행복은 내 안에 있어

김미경, 우아한 가난을 선택한 언니
“꽃은 질 걸 뻔히 알면서도 정말 열심히 피거든요. 그것도 엄청 디테일하게.”
박세리, 이름을 전설로 만든 언니
“저 혼자 힘으로 이 자리에 온 게 아닌 걸 알아요.”
곽정은, 오늘이 아닌 내일을 사는 언니
“그 자리에 머무르려고 하지 말자! 성장하고 싶다면.”


 '그녀는 프로다, 프로는 아름답다'라는 카피로 유명해진 최인아는 제일기획 카피라이터에서 부사장의 자리까지 올랐다가 현재는 최인아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자리를 떠나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기까지 그녀는 스스로에게 '견딜 건가? 바꿀 건가? 나한테 뭐가 중요한가?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 그리고 ‘나한테 중요한 건 뭐지? 나라는 사람은 어떤 때 행복하지?’ 와 같은 질문을 했다고 한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통해 그녀는 자신이 만든 카피처럼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유, 아무것도 안 할 자유'를 누리고 있는 듯했다. 나에게도 필요한 질문이었다. 내가 원하는 삶이 어떤 건지 조금 분명해진 기분이다.


서강대 김 교수 성폭력 사건(2003년)의 피해자 최아룡, 미투가 없던 시절 그녀는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더 이상 나오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17년을 싸웠다. 그리고 지금 자신처럼 상처 받은 사람들을 치유하는 '세상 속으로 가는 요가원'을 운영하고 있다. 살면서 누구나 크고 작은 상처를 입는다. 예상하지 못한 상처는 크고 오래 남는다. 상처를 입힌 상대가 나보다 센 사람이라면 이기기 힘들다는 절망을 안고, 질 수도 있다는 불안을 견디며 싸워야 한다. 그 싸움을 견뎌낸 사람은 그전보다 훨씬 강해지고, 그전과는 다른 결의 사람이 되는 것 같다. 센 언니의 굴곡진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 주먹에도 힘이 잔뜩 들어갔다.


 급진적 페미니스트로 불리는데 전혀 거부감이 없는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이나영의 말이 마음에 남는다. 서로 지지하고 연대하기, 버티면서 살아내기, 어제보다 나은 오늘의 나로 성장하기, 인생의 어떤 어려움에도 잘 견녀나갈 힘 기르기, 다른 누군가를 돕는 사람이 되기. 이런 사람으로 살아야겠다 싶다.



우리가 서로 지지하고 연대하면서 이 길을 걸어 나가면 우리 세대가 아니라도, 다음 세대 혹은 그 다음 세대에는 더 나은 세상에서 우리의 후배들, 딸들이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부디 버티시기를 바라요. 그 버틴다는 게 죽을 만큼 버텨서 내가 사라지면 안 되는 거니까, 내가 살 수 있을 만큼 버텨야죠. 버티는 과정에서 나 자신도 성장해요. 인생의 또 다른 어려움이 닥쳤을 때 내가 견뎌 나갈 힘을 만들어줄 거예요. 또 언젠가는 다른 피해자를 돕는 사람이 될 수도 있을 테고요.
《언니들이 있다》 p.85


 ‘용산 참사’를 스트린에 소환한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문>(2012)과 <공동정범>(2018)을 만든 감독 김일란은 이렇게 말했다. '기록이 결국 증거하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기록하면 공유도 할 수 있죠. 게다가 시간이 갈수록 의미의 두께가 더 두터워져요. 미래에 말을 거는 일이기도 하죠. 반성과 성찰의 계기가 되니까. 그게 기록의 힘이에요.' (p.92) 그녀가 말하는 '기록의 힘'을 믿는다. 그래야 내가 글을 쓰는 이유가 더 분명해지고 지쳐도 계속 써야하는 구실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녀가 기록한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언니들이 있다》의 모든 언니들이 하나같이 대단하다 싶었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 인상 깊었던 인물은 2011년에 ‘이별 선언문’을 쓰고 연세대를 자퇴한 후 2018년 중증 발달 장애 동생과 함께 찍은 다큐멘터리 영화 <어른이 되면>으로 돌아와 유튜버 ‘생각 많은 둘째 언니’로 유명해진 장혜영이었다. 모든 아이들이 들어가고 싶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연세대를 어떻게 4학년 때 자퇴할 결심을 했냐는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대학을 다니면서 내린 결론이 이 세상을 사는 데 대학 졸업장은 필요 없겠다는 거였어요. 명문대 타이틀로 사람을 판단하는 게 우습다고도 생각했고요. 그런데도 나중에 나 역시 졸업장에 기대게 될까 봐 그럴 여지까지 깔끔하게 없애고 싶었죠." (p.139~140) 우리 아들 좋은 대학에 들어갔으면 하고 바라는 엄마지만 한편으로 대학밖에 길이 없나 의구심을 품고 있는 한 사람으로 그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우리 두 아들도 세상을 살면서 이런 깡다구가 있었으면 싶다. 게다가 그녀는 중증 발달 장애 동생을 품고 살겠다는 야무진 결심을 하고 행동으로 옮겼다. '나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나는 자신없다. 그래서 그녀가 더욱 대단하다.


 김지은 인터뷰집 《언니들이 있다》를 읽고 아는 언니들이 많아졌다. 든든하다. 세상풍파에 맞서 최선을 다해 싸우고 당당하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언니들이 있어서 나도 더 힘을 낼 수 있다. 아직은 한참 부족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나도 후배들에게 응원과 용기를 줄 수 있는 언니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쓰는 글이 좀더 정확하고 단단해져서 흔들리고 주저앉고 싶은 누군가를 붙잡아주고 일으켜주는 구실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책을 읽을수록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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