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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Apr 15. 2022

헤르만 헤세『싯다르타』리뷰

방황하는 중년에게 권하고 싶은 책!


 요즘 중년의 성장통을 겪고 있는 것처럼 속이 어수선하다. 몸도 여기저기 아프고 자주 기운이 빠졌다. 길을 잃은 사람처럼 허둥대고 흔들거렸다. 중1 아이들의 논술 수업을 위해 헤르만 헤세『데미안』을 다시 읽었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라는 구절에서 눈물이 배어나왔다. 10대를 위한 성장 소설을 읽으며 주책맞게 나이 오십의 논술 선생이 질질 짜고 있는 꼴이라니…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좀 더 진도를 나가야 했다. 방황을 끊어낼 만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싯다르타』를 주문해 읽었다.


나는 나 자신의 육신의 경험과 나 자신의 영혼의 경험을 통하여 이 세상을 혐오하는 일을 그만두는 법을 배우기 위하여. 이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하여, 이 세상을 이제 더 이상 내가 소망하는 그 어떤 세상, 내가 상상하고 있는 그 어떤 세상, 내가 머릿속으로 생각해 낸 일종의 완벽한 상태와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놔둔 채 그 세상 자체를 사랑하기 위하여 그리고 기꺼이 그 세상의 일원이 되기 위하여, 내가 죄악을 매우 필요로 하였다는 것을, 내가 관능적 쾌락, 재물에 대한 욕심, 허영심을 필요로 하였다는 것을 그리고 가장 수치스러운 절망 상태도 필요로 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 p.207


  20년 넘게 일하는 여자로 살다가 일을 그만두었다. 책 읽는 재미에, 글 쓰는 즐거움에 룰루랄라 신났다. 돈을  벌지 못해도 도서관 책장만 보면 부자가 된 듯 배가 두둑했다. 차림은 소박해도 매일 읽고 쓰는 사람이라 기죽지 않을 수 있었다. 작년에는 생애 첫 책까지 출간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속이 허해졌다. 아이들과 즐겁게 논술 수업을 하고 나서도, 책상에 책을 쌓아놓고 읽고 또 읽어도 내 안이 채워지지 않았다.


 욕심이다. 내가 상상하는 세상, 내가 소망하는 나를 그려놓고 그렇게 살고자 했다. 결심하고 의지를 다지면 내가 원하는 완벽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어리석게도.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고 화를 내고, 사람들이 내 진심을 몰라준다고 투정하고, 내 기준에 못 미치는 자신이 못마땅했다. 이 정도 나이를 먹었으면 좀 놔 줄 줄도 알았어야 했다. 힘을 좀 빼고 두리번거리며, 어슬렁어슬렁 천천히 걷는 여유가 필요했다. 나를 외치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자연과 좀 더 친하게 지낼 걸 그랬다.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것, 이 세상을 업신여기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를 미워하지 않는 것, 이 세상과 나와 모든 존재를 사랑과 경탄하는 마음과 외경심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는 것, 오직 이것만이 중요할 뿐이야.
p.211

 내 삶의 만족도는 글이 크게 좌우한다. 그런데 요즘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 정리 안 된 나를 기록하는 게 싫었다. 마음이 어지러우니 글을 시작해도 끝을 맺기가 어려웠다. 책을 많이 읽으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대단한 작가들을 만날수록 기가 죽고 나의 부족한 재능을 탓하기만 했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평생 고행을 자처한 싯다르타를 따라가면서 생각했다. 나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얼마큼의 노력을 하고 있나. 그랬다. 제대로 해 보지도 않고 실망했고, 결과에 연연해서 글쓰기 과정을 흠뻑 즐기지도 못했다. '힘들지만 즐거운 글쓰기'를 꾸준히 하고 싶다. 죽을 때까지 완벽한 글을 쓰지 못하더라도 지금 내가 쓰고 있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책과 글이 내게 주었던 환희의 순간을 기억하며 오늘 난 한없이 부족한 글이라도 쓰기 시작했다.


독서 기록장


『데미안』보다 내 나이에 잘 맞는 소설이다 싶다. 중년이 되어서도 계속 방황하는 자신을 위로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싶다면 헤르만 헤세『싯다르타』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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