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깊어지고 싶은 날

영화 <타인의 삶>과 <문라이트>

by 유쾌한 주용씨

책 못지않게 영화는 나를 다른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아주 좋은 매체입니다. 지금 여기, 이 시간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세계로 나를 이끌고 영화가 끝난 후엔 낯선 나를 마주하게 합니다. 책보다 생생합니다. 순식간에 빨려듭니다. ‘나라면 어땠을까? 나는 과연 주인공처럼 할 수 있었을까?’를 생각하다 ‘이제라도 잘하자, 지금부터라도 좋은 사람이 되자’ 결심하게 됩니다. 좋은 영화를 감상한 후의 나는 분명 그전의 나는 아니에요. 그렇게 저는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어갑니다.


- 나를 '변화'시키는 타자성의 체험, 영화 <타인의 삶>


타인의 삶.jpg 영화 <타인의 삶>


쉽게 읽히지 않는 책 『김영민의 공부론』을 읽다가 독일 영화 <타인의 삶>(2006)을 알게 되었습니다. 김영민은 이 영화에 대해 '어떤 틈 속으로 스며든 우연찮은 타자성의 체험이 어떻게 내 생각의 답을 허무는지 잘 보여 주는 수작'이라고 평했습니다. 궁금해졌습니다. 이 영화는 생소하고 긴 이름,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의 작품입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5년 전인 1984년, 동독이 배경입니다. 당시 동독 국민은 비밀경찰(슈타지)의 철저한 감시를 받으며 살았습니다. 예술인들조차 표현의 자유 따위는 없었죠.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자연스레 떠올랐습니다. 개인적인 능력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시대나 국가 때문에 자유는 물론 생존까지도 위협받으며 살았던 사람들. 그들을 생각하면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자유가 황송하고 송구스럽게 느껴집니다.


비밀경찰 비즐러는 동독 최고의 극작가 드라이만과 그의 애인이자 인기 여배우 크리스타를 감시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습니다. 나라와 자신의 신념을 위해 냉혈 인간처럼 살았던 비즐러. 그는 드라이만과 크리스타의 삶을 관찰하면서 조금씩 변해갑니다. 극작가 드라이만은 같은 뜻을 가진 예술인들과 함께 동독의 실태를 바깥 세상에 알리려 합니다. 당연히 비즐러는 드라이만을 고발하고 그 행위를 막아야 하죠. 그런데 비즐러는 드라이만의 행위를 묵인합니다. 그리고 감시하고 보고하는 과정에서 동독 관리들의 부정과 체제의 문제점을 목격하고 갈등하죠. 옳다고 믿었던 신념이 흔들리는 거예요.


드라이만과 크리스타의 사랑에도 비즐러는 동요됩니다. 인간적인 감정을 느끼거나 개인적인 삶을 누리지 못했던 비즐러는 타인의 사랑을 관찰하며 얼어붙었던 마음이 조금씩 녹아내리기 시작해요. 결국 비즐러는 드라이만과 크리스타를 옹호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직책을 내려놓고 우편 일을 하는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됩니다. 그 과정에서 크리스타는 죽고 드라이만은 비즐러의 도움을 모른 채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습니다.


영화나 소설에서 멋있는 주인공들은 항상 말을 아낍니다. 남을 위한 일을 해도 소문내지 않아요. 자신의 희생에 대한 보상을 기대하거나 재촉하지도 않죠. 멋있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에 비해 저는 조그만 수고에도 생색을 냅니다. 누군가를 위한 일을 할라치면 그 일을 하기도 전에 꽤 거만해지곤 하죠. 유치하고 치졸합니다. 그래서 나와 너무 다른, 비즐러 같은 영화 속 인물에 더 빠져드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드라이만은 자신과 크리스타를 도와준 비밀경찰이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됩니다. 우편 배달을 하는 비즐러를 찾았지만, 그의 앞에 나서지 않고 대신 자신의 책에 비즐러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출판합니다. 뭉클했습니다. 드라이만의 책을 사는 비즐러의 표정엔 자신이 선택한 길에 대한 만족감이 담겨 있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하고 지금까지 누려왔던 것들을 기꺼이 내려놓을 수 있었던 건 자신이 옳은 일을 했다는 믿음 때문이었어요. 신념은 정의로워야 합니다. 그래야 어디서든 무슨 일을 하든 용기를 내어 살아갈 수 있습니다.


'변덕'이냐 '변화'냐

영리한 인간은 그 근본에서 '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현명한 인간'이란 이미, 그리고 '돌이킬 수 없이' 공부의 결실을 맺고 있는 사람이다.

공부란 실로 돌이킬 수 없는 '변화'다. 이에 비하면 영리한 것은 '변화'가 아니거나 혹은 기껏 '변덕'이다.

『김영민의 공부론』 p.23~24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면 타인의 삶이 내게로 들어옵니다. 나와는 상관없다고 여겼던 그들의 고통이 자꾸만 내 머리를 복잡하게 해요. 모른 척할 수가 없습니다. 타인에 대해 특히 사회적 약자의 삶에 대해 알고 싶어집니다.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사회가 변하는 데 내 작은 힘이나마 보태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이나 영화를 통한 타자성의 체험이 나를 변화시킵니다. '변덕'이 아닌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좋아서 책을 읽고 영화를 봅니다.


- 깊어진 나를 발견하게 되는 영화 <문라이트>


문라이트.jpg 영화 <문라이트>


영화 <문라이트>는 2017년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 각색상, 남우조연상 3개 부문에서 수상한 작품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개봉했지만, 관객몰이를 하지는 못했어요. 상업적인 영화와 같은 재미를 기대한다면 이 영화를 추천할 수는 없을 거예요. 하지만 혼자 몰입해서 보기에 썩 괜찮은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보고 나서, 생각이 참 많아집니다.


<문라이트>는 리틀(어린 시절), 샤이론(청소년기 : 원래 이름), 블랙(청년 시기)이라는 이름으로 성장하는 한 흑인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에겐 아빠가 없어요. 엄마는 마약 중독자예요. 학교에서는 왕따고요. 리틀에게 잠시 아빠 역할을 해 주었던 후안이라는 어른이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일찍 세상을 떠났어요. 후안의 여자 친구 테레사가 가끔씩 따뜻한 밥과 잠자리를 제공해 줍니다. 그녀는 말이 없는 샤이론에게 대답을 강요하지 않아요. 청소년기 아이들에겐 그저 들어주는 사람, 지켜봐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걸 두 아들을 키우면서 저도 알게 되었습니다.


샤이론에게는 유일한 친구는 케빈이 있었어요. 자신이 게이라는 것도 케빈을 통해 알게 되었죠. 자신의 마음을 보여 주고 어깨에 기대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단 한 명의 친구였어요. 영화의 제목 '문라이트(Moonlight)'는 흑인들도 달빛 아래에선 파랗게 보인다는 후안의 대사에서 나온 말이다. 흑인들만 사는 동네, 흑인 아이들만 다니는 학교에서 소외된 사람들로 살아가는 아픔이 담긴 말입니다. 달빛 아래에서만 다른 사람들과 똑같아지는 사람들, 오랜 시간 그들을 지치게 했을 차별과 가난과 외로움이 이 말속에 담겨 있어요.


좋은 선택을 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습니다. 자신을 세상에 내보이고, 자신이 원하는 길을 찾아가기에 샤이론은 아직 어렸고 약했습니다. 두려웠을 테지만 도움을 청할 누구도 없었어요. 소년원에 다녀온 후 마약 거래상이 된 블랙. 겉모습은 강해 보이지만 사과하는 엄마 앞에서, 10년 만에 만난 케빈의 어깨에 기대어, 눈물을 흘리는 한없이 약한 청년입니다. 엄마의 참회가 그에게 다른 길로 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고 바랐습니다. 가난한 요리사가 되었지만 자유로워졌다는 친구 케빈과의 만남이 어쩌면 블랙에게 다른 세상을 보여 주는 기회가 되지 않았을까 기대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촬영 기법이 독특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카메라가 사람들의 뒤편에서 뒷모습을 따라가는 장면이 자주 나와요. 배경은 흐리고 사람이 클로즈업됩니다. 그래서인지 표정에 드러난 인물의 심리를 자세히 들여다보게 해요. 리틀의 두려움, 샤이런의 분노, 블랙의 외로움이 나에게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영화 <그린 북>에서 인상 깊게 봤던 배우 마허샬라 알리가 리틀에게 유일하게 친절했던 어른, 후안의 역할을 해요. 이 영화를 통해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탔다네요. <문라이트>에서 두각을 나타내 <그린 북> 주연으로 발탁이 됐나 봅니다. 이 배우의 연기 참 좋아요. 영화가 끝난 후 일기를 썼습니다. 내가 가고 싶은 길에 대해, 그리고 그 길을 향해 가는 나의 뒷모습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영화를 보고 나면 생각이 많아지는, 이런 영화가 참 좋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에 한 편의 영화로 내가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들어요. 조금 깊어지고 조금 어른스러워진 그런 느낌이요. 그래서 자꾸 좋은 영화를 찾아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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