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드라마 <나의 아저씨>와 <디어 마이 프렌즈>
어른의 드라마 두 편을 소개합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드라마 작가 박해영의 <나의 아저씨>와 노희경의 <디어 마이 프렌즈>입니다. <나의 아저씨>는 진정한 어른에 대해 생각해보게 합니다. <디어 마이 프렌즈>는 내가 어떤 모습으로 나이 들게 될지 상상하게 돼요. 아무도 내 맘을 알아주지 않은 것 같아 마음 서운한 날, 펑펑 울고 가슴 후련해지고 싶은 날 이런 드라마 한 편 정주행해보시죠. ‘아, 그래 나만 힘든 게 아니었어.’ 하며 위안을 받으실 거예요. 주변에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은 없는지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들 겁니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착한 어른으로 나이 들어가야겠다 싶으실 거예요.
- 중년의 인생 드라마 <나의 아저씨>
<나의 아저씨>는 40대 후반의 저와 남편에게 많은 웃음과 눈물을 주었던 드라마입니다. <또, 오해영>의 작가 박해영과 <미생>, <시그널>의 김원석이 연출한 tvN의 드라마예요. 드라마 작가 박해영은 최근에 <나의 해방일지>로 다시 한번 존재감을 드러내기도 했죠.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는 요즘과 같은 불안한 시대에 우리와 같은 불완전한 사람들이 살아갑니다. 초라한 모습으로 힘든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이들의 삶 속에 내가 있고 내 가족이 있어요. 드라마를 보는 내내 나와 내 가족, 그리고 세상 사람들의 아픔이 보여 많이 울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기대어 웃음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렇게 편안함에 이를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품게 되었네요.
#1. 동훈과 지안
가족을 위해 성실하게만 살아 온 45세 중년 직장인 동훈. 살인이라는 멍에를 쓰고 사채빚에 쪼들리며 병든 할머니를 부양하는 21살의 지안. 이 둘은 각자의 삶에 지쳐 '후~'하고 불면 날아가 버릴 듯한 먼지 같은 얼굴이었습니다.
“인생도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야. 내력이 쎄면 버티는 거야.”
“네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면 남들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 네가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남들도 심각하게 생각하고. 모든 일이 그래. 항상 네가 먼저야. 옛날일 아무것도 아니야. 네가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동훈의 위로와 격려로 지안은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게 됩니다.
"난 아저씨 만나서 처음으로 살아봤는데…"
지독히 외로웠던 동훈도 지안에게 좋은 어른이 되어가며 삶의 의미를 다시 찾게 돼요.
“다 죽어가는 나 살리려고 네가 이 동네에 왔나보다.”
#2. 형제애
22년 다닌 회사에서 잘리고, 장사 두 번 말아먹어 신용불량자가 되고, 이혼해 달라고 악악대는 아내가 있는 49세 맏형 박상훈. 한때는 영화계의 샛별이었지만 현재는 꿈을 포기하고 형 상훈과 청소방을 하고 있는 42세 막내 박기훈. 그래도 동훈에게는 이들이 있어 든든합니다. 동훈의 외로움과 상처를 가장 가슴 아파하며 함께 화내고 울어주는 형제가 있어 그는 오늘도 함께 하는 소주 한 잔에 마음을 다잡을 수 있어요.
#3. 지안의 성장
인간은 죽음을 통해 삶을 배우는가 봅니다. 지안이 할머니의 죽음 앞에서 오열하는 모습을 보며 무리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의 글귀가 떠올랐어요.
‘죽음은 삶의 대극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잠겨 있다.’
지안의 할머니 장례식을 끝까지 함께 하는 후계동 사람들. 지독히 외로웠던 지안은 유일한 가족 할머니를 잃었지만 따뜻한 이웃들 덕분에 살아갈 용기를 얻습니다.
#4. 따뜻한 이웃
후계동 아저씨들의 아지트 정희네. 매일 저녁이면 이곳에 모여 소주 한 잔에 울고 웃는 후계동 이웃들이 정말 훈훈합니다. 후계조기축구회 아저씨들과 정희의 노래 들으며 술 한 잔 기울이면 이 험한 세상, 별거 아닌 듯 살아갈 만할 것 같습니다. 이런 이웃, 이렇게 내 집 같은 단골 술집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요. 물론 술 마시는 횟수는 좀 늘겠지만요.
#5. 귀여운 사랑
배우 송새벽에게 딱 어울리는 역할이었어요. 기훈은 감독의 꿈은 접었지만 욱하는 성질과 자존심만큼은 매력으로 간직한 귀여운 사나이입니다. 천진난만한 얼굴로 망해버린 기훈을 사랑하게 된 여배우, 최유라는 또 왜 이리 사랑스러운지요. 둘은 결국 헤어지지만, 그 사랑의 과정이 너무 유쾌합니다. 남들이 뭐라 해도 사랑은 다 이뻐요. 두 사람의 귀여운 사랑에 참 많이 웃었습니다.
#6. 슬픈 사랑
정희는 떠난 남자를 20년 넘게 가슴에 묻고 사는 여자입니다. 겸덕은 자신이 자라온 동네와 함께 한 친구들, 그리고 사랑하던 여자를 두고 스님이 된 남자입니다. 이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너무 슬퍼요. 그들은 오랜 시간 끝에 마침내 서로의 마음을 인정합니다.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스스로 치유에 이르러요. 함께할 순 없지만 그들의 마지막은 아름다워요. 어른의 사랑은 이런 건지도 모르겠어요.
#7. 동훈과 겸덕
함께 하지 않아도 서로를 느낄 수 있는 친구. 단 몇 마디의 말로도 충분히 위로가 되는 관계. 중년이 된 두 친구의 뒷모습이 쓸쓸하지만 정답습니다. 나에게도 이런 친구 한 명쯤 있어야 하는데… 내 중년의 시간이 너무 외로울까 봐 걱정입니다.
#8. 동료애
동훈이 여러 가지 힘든 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었던 건 그를 믿고 지지하는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동훈은 이번 생애는 졌다고 했지만, 끝까지 함께하는 동료들이 곁에 있고, 결국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된 그의 마지막은 승리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착한 사람의 마지막은 해피엔딩이어야 맞죠.
#9. 애증
광일은 지안이 죽인, 악덕 사채업자의 아들이에요. 지안을 괴롭히면서도 지안을 돌보는 동훈을 질투하고 마지막엔 지안과 동훈을 도와주죠. 지안에 대한 애증이 광일이 죽지 않고 살게 하는 힘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과 사람의 인연이란 참 신기하고도 질긴 것 같습니다.
#10. 엄마… 우리의 엄마
고학력인데 청소방을 하는 두 아들의 도시락까지 싸 주는 70대 엄마. 말없이 가족을 책임지는, 둘째 동훈이가 항상 가슴 아픈 백발의 우리 엄마입니다. 기쁜 일이 있을 때조차 나이 든 엄마의 눈엔 항상 눈물이 고여 있어요. 중년이 되어서야 엄마의 뒷모습이 그렇게 아프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두 아들에게 나는 어떤 엄마일까요?
불완전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따뜻한 드라마 <나의 아저씨>
삶에 지친 우리를 위로해 줄 수 있는 건
결국 사람입니다.
역시 사랑입니다.
- 눈이 퉁퉁 붓도록 울려주는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
며칠 무척 우울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엔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새벽에 나가 혼자 산책을 했어요. 잠을 설친 어느 날 아침엔 멍한 얼굴로 학교에 가는 아들의 밥을 차렸고요. 또 어느 날엔 혼자 낮술을 하며 <매트릭스>를 봤습니다. 우연히 오래전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를 보게 되었는데 '그래, 이거다!' 싶더라고요. 제가 참 좋아하는 노희경 작가의 작품인데 2016년에는 학원을 운영하던 때라 드라마를 이어 볼 수가 없었거든요. 백수가 되니 드라마를 몰아볼 수도 있고 좋더라고요. 이 드라마에는 한 사람도 사랑스럽지 않은 인물이 없어요. 진정한 친구가 되려면 이들처럼 봐주고 기다려주고 참아줘야 하는 것 같아요.
작가 박완(37세, 고현정)은 자신만 바라보는 엄마가 부담스럽습니다. 여섯 살 때 자신에게 약을 먹이고 함께 죽으려 했던 엄마를 기억하지만 홀로 자신을 키운 엄마 곁에서 착한 딸로 30년을 살았습니다. 엄마와 숱하게 부딪치고 싸우면서도 아픈 엄마 옆을 끝까지 지키는, 의리 있는 딸이에요. 서연하(32세, 조인성)는 유럽에서 그림을 그리며 살아요. 박완의 연인이죠. 너무 사랑한 여자 완에게 청혼하러 가는 길에 사고로 두 다리를 못 쓰게 되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멋있습니다. 변함없이 완이를 사랑하고 쿨하게 그녀를 기다립니다. 연인이 정말 힘들 때는 용기를 내어 달려갈 줄 아는 사랑꾼이랍니다. 두 사람의 예쁜 사랑에 웃고, 아픈 사랑에 함께 울었네요.
자신의 침대에서 친구와 뒹구는 남편을 본 여자의 마음은 어떨까요? 완이 엄마 장난희(63세, 고두심)는 죽고 싶었지만, 딸과 살아남아 노부모와 장애를 가진 남동생을 보살피며 억척스럽게 살아왔습니다. 모두의 엄마 오쌍문 여사(86세, 김영옥)는 가족들 보살피느라 고생만 한 딸이 안쓰럽고 미안해 죽겠습니다. 그런데 그런 딸이 암까지 걸렸다네요. 그 딸한테 병든 남편과 몸 불편한 아들을 떠넘기고 갈 수 없어 90이 다 되도록 죽지도 못해요. 요양 병원에 있는 우리 엄마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 엄마도 아픈 아빠라도 곁에 있었다면 지금처럼 침대에만 누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있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여배우 이영원(63세, 박원숙)은 여전히 첫사랑을 마음에 품고 사는 로맨티스트예요. 병든 몸으로도 친구의 오해와 비난을 감수하고, 마음이 돌아선 친구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우정을 지켜내는 멋진 친구입니다. 삶을 진정으로 즐길 줄 아는 순수 처녀 오충남(65세, 윤여정)을 보면서 혼자 살아도 이 여자처럼 멋지고 예쁘게 늙을 수 있다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각자 다른 과거와 아픔을 지녀서일까요? 노년이 되어가는 이들의 주름살은 다 다르게 생겼는데 잘 견뎌내고 있어서인지 또 하나같이 아름다워요.
조희자(72세, 김혜자)는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곱고 사랑스럽습니다. 길가에 핀 꽃을 보고 발을 멈추는 소녀 감성을 지녔어요.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홀로서기를 당당히 외쳤지만 결국 치매에 걸렸습니다. 그래도 그녀 곁에는 멋진 남자 친구와 의리로 똘똘 뭉친 친구들이 있어 외롭지 않아요. 첫사랑 희자에 대한 진심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로맨티스트 이성재(72세, 주현)는 여느 젊은 남자보다 낭만적입니다. 내 남자도 이렇게 깔끔하고 자상하고, 나에게 지고지순한 남자로 늙길 바라는 건 욕심일까요? 두 사람을 보며 노후의 사랑도 예쁠 수 있다는 걸 느낍니다. 죽을 때까지 사랑은 포기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이 드라마에서 굳이 악역을 한 명 뽑으라면 바로 꼰대 남편 김석균(75세, 신구)입니다. 짠돌이에 50년 동안 아내에게 막말을 일삼으며 살았어요. 남자가 집안일 하면 큰일 나는 것으로 여기고 무엇보다 자신의 잘못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한심한 남자입니다. 결국 나중에 착한 아내의 소중함을 깨닫고 참회를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어요. 그의 아내 문정아(72세, 나문희)는 아내로, 며느리로, 엄마로만 힘들게 살아왔습니다. 노동이 몸에 배어서 쉴 줄도, 놀 줄도 몰라요. 50년 만에 남편과 헤어져 혼자 살기로 한 집에서 잠만 잡니다. 긴 세월의 피곤을 한 번에 풀려는 듯 잠에서 깨지 못하는 그녀가 어찌나 안쓰러운지… 집에서 지지리 고생만 하며 갇혀 있었던 그녀는 죽을 때는 길 위에서 죽고 싶다네요. 답답한 인생이지만 다른 사람의 삶이니 존중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사실 며칠 계속되는 내 우울의 원인을 나 자신도 정확히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 내 마음을 툭 터놓고 말할 사람도 없었어요. 그냥 펑펑 울기라도 하면 속이 좀 시원해질 것 같았습니다. 이유 없이 우는 건 좀 뻘쭘했는데 <디어 마이 프렌즈>를 구실 삼아 밤새 울었습니다. 눈이 퉁퉁 붓도록 엉엉 소리 내어 쏟아냈더니 후련해졌어요. 게다가 눈부시게 멋있는 남자 조인성을 보며 오랜만에 설렜습니다. 훌쩍 떠나고 싶고, 뜨겁게 사랑하고 싶고, 예뻐지고 싶었습니다. 더 많이 웃고 싶고, 내 마음에 솔직해지고 싶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당당하고 씩씩한 60대, 독립적이고 현명한 70대, 죽음 앞에서 벌벌 떨지 않는 80대를 소망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시한부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젊은 한때이다.
거울 속에 밤새 잠을 못 자서 빨갛게 충혈되고 너무 울어서 퉁퉁 부어버린 눈이 있습니다. 그래도 가슴이 좀 후련해져서 다행이에요. 앞으로 남은 나의 시한부 인생을 잘살아볼 용기가 날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남은 나의 삶 중에 가장 젊은 때라는 걸 잊지 말기로 합니다. 얼마 남지 않은 나의 노년을 위해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하루를 살기로 다짐합니다. 이대로 기운 빠져서 훌쩍이고 있기에는 아직 내가 너무 젊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