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쾌한 주용씨 Nov 15. 2023

수능이 네 번째!

우리 부부의 교육 방식이 나쁩니까?

첫째아들 두 번, 둘째아들 두 번. 내일 수능이 네 번째다. 공교롭게도 두 아들이 모두 재수를 하는 바람에 그렇게 됐다. 네 번이면 익숙할 만한데 그렇지 않다. 시어머님, 시아버님, 친정아빠 그리고 친정엄마까지 차례로 보내드려야 했을 때 그 슬픔이 덜해지지 않았다. 여러 번 연애를 해도 이별을 대할 때는 항상 세상이 무너졌다. 물론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는 그 모든 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둘째아들은 삼수까지 할 생각은 없다고 했으니 아마도 내일 수능 도시락을 싸는 게 나에게는 마지막이 될 것이다. 분명 세 번의 수능 도시락을 쌌는데 또 허둥댄다. 도시락에 과일도 좀 싸줘야 할지, 물은 따뜻한 걸로 줘야 할지 아니면 시원한 것도 함께 넣어줘야 할지, 물티슈가 나을까 그냥 마른 휴지를 넣을까 고민한다. 아들을 응원하는 카드라도 써서 도시락통에 넣을까 하다 그것도 부담이 될 것 같아 망설이고 있다. 아무튼 수능 전날엔 아침부터 몸과 마음이 둥 떠있다.


떠올리고 싶지 않았는데 문득 올해 3월 언니와의 전화 통화가 생각났다. 언니가 사는 집근처에서 글쓰기 수업이 있어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걸었는데 이야기 소재가 우리 아들 이야기로 옮겨갔다. 언니의 두 아들은 서울의 좋은 대학에 한 번에 합격했다. 비슷한 또래의 우리 아들들은 둘 다 대학에 떨어졌다. 우리 첫째는 재수하고도 대학 대신 전공을 바꿔 학점 은행제 교육기관에 들어갔고, 둘째도 결국 재수를 시작한 시점이었다. 아들 입시에 성공한 언니의 목소리는 기숙 학원 상담 실장처럼 친절하고 날카로웠다. “네가 평소 두 아들과 잘 지내는 건 아는데 아이들한테는 적당한 잔소리와 훈육도 필요해. 아직 완벽한 성인이라고 볼 수 없는 나이잖아. 그냥 좋은 엄마 소리 듣는 거에만 만족하지 말고 좀 강하게 이끌어야 할 때도 있어야지. 네가 그런 식이라 아이들이 자꾸 실패를 맛보게 되는 거야. 나중에 엄마 탓한다.” 결국 쩔쩔매는 목소리로 “그래, 언니 말이 맞아. 이번에 우리 둘째도 마음 단단히 먹고 재수한다고 하니까 지켜봐야지 뭐. 잘할 거야.”라고 대꾸하고 통화를 마무리했다. 다음 수업 올 때 얼굴 한번 보자 했지만 난 그러고 싶지 않았다. 집에 오는 동안 영화 <헤어질 결심>의 탕웨이처럼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를 되뇌었다. 내 자녀 교육 방식에 대해 생각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을 큰아들과 두 번이나 봤다. 아들이 예매해준 덕분에 난생처음 용산 CGV 아이맥스관에서 남편과 <탑건:매버릭>을 보며 흥분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드라이브 마이 카>를 원작으로 한, 3시간짜리 영화를 아들과 함께 보고 그 감동을 나눴다. 작년 11월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는 늠름한 군인 아저씨로 장례식장에 나타나 외할머니의 영정 사진을 들었다. 코로나와 함께 고등학교에 입학한 우리 둘째는 스포츠 관련 학과에 지원했지만, 입시 결과는 좋지 않았다. 아들은 입대와 재수를 고민하다가 한 번은 더 해봐야 할 것 같다고, 재수를 결심했다. 운동하면서 20kg 감량하고 눈빛이 깊어진 아들을 나는 1년 더 지켜보기로 했다. 큰아들이 군대에 들어가기 전, 그리고 작은아들이 입시를 끝내고 나서, 나는 아들과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다 큰 아들이 엄마와 단둘이 3박 4일 여행을 간다는 것에 주변 사람들은 신기하다고 했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공부 잘하는 자식은 아니지만, 엄마와 함께 여행하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술 한 잔도 함께할 줄 아는, 감수성 충만한 아들들이다. 다른 이들은 우리 아들의 앞날을 걱정하지만 나는 아들의 미래가 기대된다.     


언니와 통화를 한 날, 남편에게 하소연과 함께 언니의 뒷담화를 했다. 당분간 언니를 만나고 싶지 않다고 했더니 남편은 내편을 들어주며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자기도 보고 싶지 않다고 거들었다. 모든 부모에게 자식에 대한 이야기는 민감하다. 안 된 자식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원하는 대학에 한 번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그것을 '실패'라고 말하는 건 너무했다. 자식이 좋은 대학에 한 번에 붙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는 없다. 하지만 교육 방식은 집안의 분위기에 따라 부모의 인생관에 따라 아이들의 성향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우리 두 아들은 악착같이 공부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남편과 나도 공부, 공부하며 닥달하는 성격이 절대로 아니다. 그래서인지 우리 아들들의 10대 생활은 스트레스가 덜했고 엄마아빠와의 소통이 원활했다. 가끔 혼내고 속상한 마음을 푼 적은 있지만 대체로 아들들과 함께 웃는 날이 많았다. 큰아들은 군대 가기 전 나와 밥먹는 자리에서 항상 우리 집이 화목한 가정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해 내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내일 둘째아들의 수능을 앞두고 있어서 마음의 어수선함이 글로도 나오는가 보다. 이 얘기 저 얘기 정신이 없다. 아무튼 나는 우리 부부의 교육 방식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좀 느슨해 보이고 요즘과 같은 경쟁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성적이나 입시 결과보다 아이들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이 더 중요하다. 몸 건강하고, 건전한 마음과 단단한 태도를 갖추고 있다면 앞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고 행복한 삶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편은 한 번도 아들들에게 큰소리를 낸 적이 없다. 아들이 먹고 싶다면 밤에도 달려가 사다주는 자상한 아빠다. 나는 비교적 잔소리가 덜한 엄마다. 엄마를 호출하는 학교 전화에도 담담하고 쿨하게 대처해서 아이들이 눈치보게 하지 않았다. 우리 자식들은 분명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 자기만의 속도로 즐겁고 당당하게 살아갈 것을 믿는다. 스무 살이 넘은 두 아들에게 부모는 믿어주고 응원하고 지켜보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마지막으로 내일 수능을 보는 우리 아들에게 짧은 메시지 하나 남겨야겠다.


세상에서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우리 아들에게
 
우리 아들, 지금 긴장하고 있나? 시험 못보면 어떡하지 하면서 벌써 떨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러지마. 마음 편안히 갖고 평소 모의고사 보듯이 그렇게 하면 돼. 말이 쉽지 실제로는 쉽지 않다는 거 알아. 그런데 너만 그런 거 아니야. 모두가 떨고 있다고. 어려운 문제가 나와도 그렇게 생각하면 돼. '아, 나만 어려운 게 아니야. 다른 애들도 다 어려워서 쩔쩔매고 있을 거야.'라고 말이야. 하루 시험으로 그동안의 너의 고생과 노력을 평가한다는 게 야속하지만 내일 하루면 끝난다는 걸 오히려 개운하다고 생각했으면 좋겠어. 지금은 무엇보다 마음가짐을 단단히 갖는 것이 중요해. 미리 결과에 대해 걱정하지 말고 내일 시험보는 순간에 집중해서 모든 에너지 다 쏟고 가벼운 마음으로 왔으면 좋겠다. 든든한 엄마아빠가 네 곁에 있어. 쫄지 말고 당당하게 실력 발휘하고 와. 우리 저녁에 맛있는 거 먹자. 맥주도 한 잔 하고. 우리 아들, 그동안 고생했다. 사랑한다.



이전 01화 [프롤로그] 우리 부부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