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희 장편 소설 『경애의 마음』을 읽고
경애가 일영을 좋아하는 건 그렇게 빡빡한 생활에서 일영이 획득한 세상만사에 대한 태도 때문이었다. 거기에는 먹고사는 일에 대한 지긋지긋함 같은 것도 있었지만 어쨌든 '살겠다'라고 하는 일관된 당위가 있었기 때문에 그 태도는 무던함, 씩씩함과도 연관됐다. 경애는 언제나 어찌 되었건 살자고 말하는 목소리를 좋아했다. 그렇게 말해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마음이 잦아들기 때문이었다.
p.24
둘이 함께 영화를 본 동인천의 영화관들은 애관, 오성, 인형, 미림으로 어딘가 낭만적인 이름들이었다. 멀티플렉스가 아니었던 그 극장들은 대개 좁고 영화표도 수기로 작성하며 좌석 번호도 없이 사람들이 아무 데나 앉아 있곤 했는데, 그래서 영화관이라기보다는 영화감상실 같은 느낌이었다.
p.65
엄마, 엄마는 뭐가 어려워?
오늘이 어려워.
오늘이 왜 어려워?
오늘을 넘겨야하니까 어려워.
오늘을 넘긴다는 것은 뭐야?
오늘을 견딘다는 것이지.
오늘을 견딘다는 것은 뭐야?
그건 오늘은 사라지지 않겠다는 거야.
오늘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건 뭐야?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거지.
내일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건 뭐야?
내일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거야.
내일은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건 뭐야?
내일은 못 견딘다는 것이지.
내일을 못 견디면 어떻게 되는데?
내일을 넘길 수 없게 되지.
내일을 넘길 수 없으면 어떻게 해?
그러면…… 쉬워질 수도 있다는 거야.
p.167~168 상수가 죽은 엄마와 나눈 대화
자신을 부당하게 대하는 것들에 부당하다고 말하지 않는 한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구원은 그렇게 정적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동적인 적극성을 통해서 오는 것이라고.
p.307
누군가를 그렇게 불행하게 여길 자격은 없어.
p.314
고통을 공유하는 일은 이토록 조용하고 느리게 퍼져나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느꼈다. 밤이 깊어지듯이 그리고 동일하게 아침이 밝아오듯이.
p.319
힘을 쌓다보면 축적해온 모든 것들을 잃을 용기도 생겨나는 것일까.
p.324
구로. 아홉명의 오래도록 산 노인이 있는 마을, 그 이름은 공단이 있는 지금 이곳과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시간이 쌓인 것, 굽은 것, 견디는 것, 부러지지 않는 것, 제자리에 앉아 있는 것, 색이 바랜 것, 유연한 것, 아주 슬프지는 않은 것은 오후의 퇴근길에 나선 이들의 모습이기도 했다.
p.344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이란 자기 자신을 가지런히 하는 일이라는 것, 자신을 방기하지 않는 것이 누군가를 기다려야 하는 사람의 의무라고 다짐했다. 그렇게 해서 최선을 다해 초라해지지 않는 것이라고.
p.349
소설을 읽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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