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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Jan 18. 2024

박완서 읽기 11. 산문집 8『한 길 사람 속』①

인간사 모든 것이 글이 된다

박완서의 산문을 읽을 때마다 경이롭다.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완성된 글이 된다. 그것도 표현이 찰지고 맛깔스러워서 읽는 사람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손색이 없다. 읽다보면 나도 이런 생각 했었는데 하는 소재들이 참 많다. 그런데 나는 왜 박완서처럼 쓰지 못했나 싶어 좀 억울하고, 작가의 재능을 갖지 못했으니 어쩔 수 없지 하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산문집을 다 읽고나면 나도 좀 흉내를 낼 수 있으려나 기대하는 마음도 없지 않다. 박완서 산문집 8권『한 길 사람 속』에는 1931년생 작가의 눈에 비친 1990년대 모습이 과거와 비교되어 생생하게 묘사되었다. 그렇다면 나도 2000년대 내가 살고 있는 동네와 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50대의 눈과 감수성으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언감생심, 나도 박완서처럼 쓸 수 있다고 어깃장을 놓고 싶다. 


1부 한 길 사람 속


한 길 사람 속

쓰레기 더미를 바라보면서

귀하고 그리운 ∼다운 이

올 추석이 아름다웠던 까닭

요즘 노인들

녹색의 경이

흙다리를 생각하며

옛날 물, 요새 물

토요일 오후의 고행

부르라고 지어준 이름

신선놀음

50년대 서울 거리


자식이 부모의 요구 조건에 못 미칠 때 순종적인 자식일수록 자신을 꾸미게 된다. 가정이 이 세상에서 가장 마음 놓이는 곳이 되려면 우선 자신을 꾸밀 필요가 없어야 된다. 학교나 사회에서 개인에게 강요하는 요구 조건이 날로 가혹해질수록 그걸 해소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 가정은 그럴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다. 교훈, 사훈, 기타 수많은 구호에 시달리다가 들어온 집안에 가훈까지 걸려 있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 가정에서 있어야 할 것은 정수리를 내리누르는 구호가 아니라 소박하고 따뜻하고 검소한 분위기이다. 부모가 가정에서까지 사회적 지위로 당당하려 들게 아니라 이웃에 대한 베풂과 배려로 존경받을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한 길 사람 속」p.18


가정의 조건을 생각한다. 부모의 역할을 생각한다. 그렇잖아도 경쟁에 내몰려 있는 자식들이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이 가정이어야 한다. 본캐니 부캐니 하며 SNS에 자신의 모습을 그럴싸하게 꾸미는 요즘 젊은이들에게도 자신의 본모습을 부끄럼 없이 내보일 수 있는 곳이 자기 부모 앞이지 않을까. 아이들을 가르치는 직업이다보니 자식에 대한 학부모님들의 걱정, 부모에 대한 자식의 불평불만을 자주 접하게 된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부모는 자식에게 더 해주고 싶어 안달이고 그렇게 해줬는데도 왜 이것밖에 못 하냐고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에 실망한다. 자식들은 그런 부모 곁에서 부족함 없이 누리면서도 너무 큰 기대에 부담스럽다는 반응이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어디까지 해줘야 할지, 또 자식은 부모의 바람과 자신의 능력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지 답을 찾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두 아들은 둔 나도 마찬가지이다. 아무튼 우리 집에서만큼은 부모도 자식도 걱정 내려놓고 편히 쉴 수 있었으면 좋겠다. 


틈만 나면 쓰레기를 만들거나 눈앞에 보이는 쓰레기 더미에 신경을 쓰다보니 첩첩한 아파트 단지가 거대한 쓰레기 더미가 되어 육박해오는 듯한 무서움증이 느닷없이 엄습해올 적이 있다. 아파트는 인구가 열 겹 스무 겹으로 포개져서 밀집해 있으면서 자체 내에선 우거지 한 줄기도 생산은 못하고 왕성하게 먹고 쓰고 싸기만 하니 무진장한 쓰레기 생산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공포스러울 뿐 아니라 우리를 먹여 살릴 만한 살이 있는 땅이 아직도 남아 있기나 한 것일까, 하는 궁금증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건 단순한 궁금증만이 아니라 일종의 그리움이기도 하다.
「쓰레기 더미를 바라보면서」p.26~27


생산은 하지 못하고 소비만 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말은 들을 적이 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질수록 사람들은 더 많은 걸 욕심내고 사들인다. 그것을 다 쓰지도 못하고 버려서 쓰레기를 만들고 환경을 심각하게 오염시키는 현대인들을 질타하는 말일 것이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주말마다 분리 수거를 할 때면 너무 많은 플라스틱과 비닐을 버리며 매번 죄책감이 든다.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며 소비를 줄이기는 했지만 우리 네 가족이 소유하고 있는 것들이 아직도 너무 많다. 음식물 쓰레기는 또 얼마나 많은지... 지구 저 편에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정말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생활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하고 있다.  


자녀에 대한 부모로서의 존재 가치, 부부 상호간의 경제적인, 성적인 필요성이 사라진 후까지도 부부를 서로 필요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 그 내용이 공동의 취미나 관심사일 수도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서로 대등한 우정의 관계가 아닐까. 그러나 깊은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우정이야말로 미리미리 쌓아가야지 급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요즘 노인들」p.46


남편과 25년 넘게 부부로 살고 있다. 아직은 부모로서 우리가 함께 책임지고 해야 할 일이 있고, 경제적으로 서로 도와가며 가정을 이끌어야 한다. 잠자리를 따로 하는 게 편해지기는 했지만 마음이 추운 날이나 무서운 꿈을 꾼 밤에는 남편의 품을 찾아간다. 20대의 설렘이나 30대의 팔딱거리는 사랑의 감정은 희미해졌지만 이 사람이 내 곁에 없다는 생각을 하면 좀 겁이 난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함께하기를 원한다. 60대, 70대가 되어도 지금 마음 변치 않고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려면 그렇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우정을 쌓아가야 한다. 젊었을 때처럼 이 사람은 나에게 왜 이 정도밖에 못 해주나 불평을 품기보다는 이 사람에게 내가 무얼 더 해줘야 할까를 생각한다. 주름과 흰머리가 늘어가는 남편을 보며 연민과 의리를 느낀다. 이것의 중년의 사랑, 노년의 우정일까.  


2부 작고 예쁜 길


예습 없는 여행

몽마르트르 언덕과 몽파르나스 묘지

이런 저런 낯설음들

천재의 고향

아아, 그건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뼛속까지 시리던 뒤셀도르프의 추위

비에 젖은 유도화, 그리고 로렐라이

특별한 별자리 밑에서 태어난 거인

네카강 강변에 나부끼는 두루마기 자락

마침내 국경을 넘다

사람은 가도 사랑은 영원한가

이제 그만 헤어질 때

부드러운 여행


<2부 작고 예쁜 길>은 박완서 작가가 유럽으로 다녀온 문학 기행에 대한 기행문이다. 유럽의 유명한 작가들의 묘지나 기념관을 돌며 보고 듣고 느꼈던 것들을 적어 놓았다. 책을 읽으며 아직 가보지 못한 유럽의 문화와 분위기를 간접 체험할 수 있었다. 살면서 외국이라고 다녀온 곳은 25년 전 남편과 신혼여행으로 다녀온 방콕과 파타야가 전부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일본을 국내 여행처럼 자주 다녀오고 유럽 여행 한 번 안 가본 아이들이 없을 정도로 해외 여행이 흔하다. 그 아이들의 해외 여행기를 들을 때면 좁디좁은 내 생활 반경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우리 두 아들에게 넓은 식견을 선물하지 못한, 부모로서의 무능력에 자주 움츠러들었다. 


2월이면 전역하는 큰아들과 비슷한 시기에 대학 입시를 끝내게 될 재수생 둘째아들, 우리 두 아들은 우리 부부처럼 우물 안 개구리로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주어져야 가능한 일이기는 하지만 가끔씩은 일상 유지보다 의미 있는 일탈과 도전도 해가며 살았으면 싶다. 나는 책을 통해 간접 경험하는 걸로 만족하고 있지만 직접 보고 듣고 느끼는 거에 어찌 비할까. 4월에 적금 타면 우리 두 아들 가까운 일본이라도 다녀오라고 여행 경비 떡하니 내놓을 생각이다. 박완서의 여행기를 흥미롭게 읽고는 부러운 마음에서인지 나는 좀 우울해졌다. 남편과 유럽 여행 한 번 다녀오자고 했는데 그게 언제가 될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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