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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Jan 11. 2024

박완서 읽기 10. 단편 전집 7『그리움을 위하여』②

삶이 이야기가 되려면...

박완서 단편 소설 전집 7권 『그리움을 위하여』에 수록된 12편 중 나머지 6편의 단편을 읽었다. 지난 달에 천안에 가서 큰언니를 만났을 때 언니도 박완서 단편 전집을 사서 읽고 있는데 한 편씩 읽기 편하다고 했다. 암과 싸우느라 불편한 것 투성이인 언니에게 그런 말을 들으 반가웠다. 언니를 편하게 하는  병원도 의사도 약도 주사도 아니고 소설이라니 박완서 작가가 위대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소설이 언니의 병을 낫게 하거나 생명을 연장시켜 주는 것까지는 할 수 없다. 언니의 병세가 안 좋아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항암 치료를 중단할지도 모른단다. 이젠 책 읽는 것도 힘들다고 했다. 언니와 공감하며 이야기 나눴던 책을 눈물바람으로 읽었다.



『그리움을 위하여』에는 박완서 작가가 2000년 대에 발표한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1931년생 작가가 2011년 담낭암으로 돌아가시기 전, 70대에 쓰인 작품이라 그런지 노년,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같은 50대를 살고 있는 우리 자매에게도 늙음이 멀지 않고 부모를 다 잃어봤으니 죽음이라는 것도 그리 낯설지 않다. 큰언니의 몸이 좋지 않다고도 하고, 평소 여행이라는 걸 모르고 살아온 언니가 제안해서 우리 네 형제는 이번 주말 가까운 호텔에서 하루 묵기로 했다. 50대 세 자매와 50을 바라보는 막내 남동생, 넷이 처음으로 하룻밤을 함께할 예정이다. 돌아가신 아빠와 엄마를 함께 그리워하고 우리 네 형제의 과거 기억을 소환해서 우린 추억 여행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생각보다 너무 빨리 올지도 모르는 큰언니의 마지막을 담담하게 준비하는 시간이 될지도 모르겠다.


대범한 밥상


3년 전 남편이 먼저 떠났다. 여자에게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60보다는 70이 가깝지만 평균 수명에는 못 미치는 나이다. 그런데 여자는 남은 시간이 지루하다. 제일 큰 걱정은 남은 재산을 자식들에게 어떻게 분배하느냐이다. 남편은 삼남매에게 재산을 공평하게 남겨 주는 데 온힘을 쓰고 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의좋던 삼남매의 사이는 벌어졌다. 여자는 공평한 재산 분배에 영 자신이 없다. 고민하던 중에 갑자기 친구가 보고 싶어졌다. 그 친구는 비행기 사고로 딸과 사위를 잃고 남자 사돈과 함께 살며 어린 손자 손녀를 키웠다는 사실로 뒷말이 많았다. 지금은 손자 손녀 잘 키워 외국으로 유학 보내고, 남자 사돈이 죽고난 뒤에도 함께 살던 시골집에서 혼자 살고 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무척이나 편안해 보였다. 친구가 차려준 밥상을 앞에 두고 그동안 풍문으로만 들었던 친구의 사연과 속내를 듣는다. 지저분한 소문과는 달리 친구는 최선을 다해 살았고, 현재의 자신을 소박하게 즐기고 있으며, 노년과 죽음에 대해서도 무척 대범해진 모습이다.  


"쥐락펴락이 아니라 들었다 놨다 하던 인간도 죽으면 이 세상에 있는 것 털끝 하나도 움직일 수 없잖아. 그거 하나라도 확실하면 됐지 뭘 더 바라." p.222


나도 나이가 더 들면 죽음에 대해 이렇게 대범해질 수 있을까. 내 죽음은 아직 피부로 와닿지 않아 덤덤한데 큰언니의 죽음은 솔직히 두렵고 무섭다. 30년 넘게 간호사로 성실하게 일한 언니이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기는커녕 가족에게조차 작은 부담도 주지 않았던, 깔끔한 사람이다. 여유롭고 편한 노년을 즐길 자격이 충분하다. 우리 형제가 함께할 시간을 좀더 주었으면 좋겠다. 각자 사는 게 바빠서 서로에 대해 너무 무심했다. 우리 네 형제 다정하게 함께 늙어가면 좋으련만.


친절한 복희씨


가난한 시절 어린 복희씨는 나이 많은 주인집 남자에게 겁탈 당하고 아이를 갖게 되어 전실 아들이 있는 남자와 부부가 된다. 그 후로 자식 넷을 낳고 오남매를 시집장가 보내고 손주까지 봤다. 복희씨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영감은 중풍으로 불편한 몸이 되었다. 그런데도 그 남자 성욕은 여전하다. 동네 약국에서 정력제비아그라를 달라고 떼를 쓰며 마누라가 그걸 너무 좋아한다고 했단다. 여기까지 읽고 나는 복희씨가 지금까지의 친절을 벗어던지고 영감을 죽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나는 오랫동안 간직해온 죽음의 상자를 주머니에서 꺼내 검은 강을 향해 힘껏 던진다. 그 갑은 너무 작아서 허공에 어떤 선을 그었는지, 한강에 무슨 파문을 일으켰는지도 보이지 않는다. 그가 죽고 내가 죽는다 해도 이 세상엔 그만한 흔적도 남기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나는 허공에서 치마 두른 한 여자가 한 남자의 깍짓동안한 허리를 껴안고 일단 하늘 높이 비상해 찰나의 자유를 맛보고 나서 곧장 강물로 추락하는 환을. 인생 절정의 순간이 이러리라 싶게 터질 듯한 환희로 지켜본다. p.251


복희씨는 자신의 인생에 끝까지 친절했다. 부정하지 않고 남을 해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가혹한 인생에,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남자에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벌한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 가는 길이구나, 그래서 나에게 주어진 삶을 나만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친절하게 살아내야 하겠구나 싶다. 살아내는 모든 것들이 애틋하다.


그래도 해피엔드


겉으로 보기엔 남들이 부러워하는 노후다. 서울 근교에 전원 주택에 산다. 경제적 시간적 여유도 있다. 서울에서 약속이 있는 날, 한껏 멋을 부리고 버스를 탔다. 그런데 내리는 문으로 탔다는 타박과 함께 버스 안 젊은이들의 노인내 취급이 나이 든 여자를 위축시킨다. 토박이 서울내기이건만 지하철을 타는 것도 녹록하지 않다. 여유있게 나선 길이건만 택시를 타고서야 약속 시간에 맞출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에 택시를 타고 약속 장소로 가는 길, 그래도 정직한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택시 기사 덕분에 그녀의 외출은 해피엔드였다.


나는 다만 활짝 웃어주었다. 그가 나에게 축복이 되었듯이 나도 그에게 축복이 되길 바라면서. p.265


난 아직 50대인데 버스 타는 걸 꺼린다. 버스만 타면 속이 메쓱거리는 멀미 기운 때문이기도 하지만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제대로 중심잡기가 점점 겁이 나는 탓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까운 거리는 웬만하면 걷고 서울이라도 갈라치면 한 번에 가는 버스를 제쳐두고 몇 번을 갈아타더라도 지하철을 이용한다. 그런데 환승역이 복잡하면 몇 번씩 지하철 노선도를 보며 방향을 잡느라 긴장하곤 한다. 지금도 그런데 누가 봐도 할머니로 보이는 나이가 되면 외출이 정말 힘들겠다 싶다. 젊은이들이 노인에게 좀 친절했으면 좋겠다. 니들은 안 늙을 것 같지? 나도 너희들처럼 팔팔할 때가 있었다구. 나이 든 게 존경은 아니더라도 무시 받을 일은 아니잖니? 남녀노소 모두가 편안한 사회가 좋은 세상 아니겠니?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


갱년기 여자는 위로는 시어머니, 밑으로는 자식 사이에 끼어 있다. 교사로 정년 퇴직한 시어머니는 사리 분별 정확하고 자식들이 눈치 봐야할 정도로 경제적 여유가 있다. 시어머니에게 중형 아파트를 받는 대신 시도 때도 없이 불려가야 했다. 시어머니의 모임 대접은 당연히 며느리의 몫이 되었다. 아파트를 받고 자유를 넘겨준 꼴이다.


그들은 집에 들어올 때부터 떠들던 수다를 식탁에서 먹고 마시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주로 같이 늙어가는 동창들 얘기였다. 누구는 암, 누구는 치매, 누구는 뇌졸중에 걸리고, 누구는 과부가 됐다는 우울한 소식에도 그분들의 식욕은 주춤도 안 하고, 심란해지는 것 같지도 않았다. p.283


시어머니 아파트를 나와 여자는 전 며느리를 만나러 간다. 아들 부부는 한 달 전에 이혼을 하고 여자에게 통보했다. 결혼도 둘이 알아서 진행하고 살림을 합치더니 이혼도 부모에게 한 마디 상의 없이 둘이 해버렸다. 이혼의 이유를 물으니 성격차이란다. 여자가 듣기엔 너무 사소한 일이 젋은 부부에게는 당연한 이혼 사유가 되었다. 집에 있는 남편에게조차 이해받지 못한 여자는 피곤한 하루를 잠으로 마감한다.


낀 세대라는 말을 많이 한다. 우리 나잇대도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다 경험한 어중간한 세대라며 꼰대 같은 어른들 눈치 보랴, 개인주의에 익숙한 젊은이들 비위 맞추랴 힘들다고 투정한다. 예민해지고 숙면도 힘들고 매일 허리와 다리가 노곤노곤해지는, 나같은 50대 갱년기 여자라면 무척이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다. 단지 나는 너무 일찍 시부모님, 친정 부모님을 모두 여의어서인지 부모 공양하느라 힘들었던 일은 흐릿해지고 지금 함께하지 못하는 게 아쉽고 그분들이 자주 그립다. 우리 두 아들에게도 내가 아쉽고 그리운 어머니였으면 좋겠는데...


빨갱이 바이러스


우연히 만난 세 여자를 자신의 고택에서 하루 묵게 한다. 소아마비 여자는 몸이 불편해진 후에 의처증 남편에게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됐다며 외간남자와의 통정을 부끄럽지 않게 고백한다. 뜸 뜬 자국이 유독 많은 여자는 뇌성마비인 첫 아이를 버린 죄책감으로 보육원에서 그 아이를 찾아내 돌보고 있는데 남편은 그 죄책감을 여자의 몸을 담뱃불로 지지며 해소한단다. 암자에서 왔다는 보살님은 젊은 남자에 정신이 나가서 금쪽 같은 손자를 잃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나같이 그 사연이 기구하다. 고택의 주인은 입을 열지 않는다. 오랜 세월 절대로 발설하면 안됐던 빨갱이 삼촌에 관한 이야기다. 박완서 작가는 다른 사람에게 차마 말하지 못한 사연을 이렇게 소설로 풀어놓는 것 같다. 소설을 쓰면서 좀 후련해지지 않았을까 싶다. 자기 고백으로서의 글쓰기, 치유의 글쓰기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나의 입과 우리 마당은 동일하다. 둘 다 폭력을 삼켰다. 폭력을 삼킨 몸은 목석같이 단단한 것 같지만 자주 아프다. p.335


석양을 등에 지고 그림자를 밟다


박완서 작가의 생애가 한 편의 단편으로 압축된 듯하다. 할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유년 시절, 악착같은 엄마의 교육열로 고단했던 학창 시절, 시집 가서 아이들 낳고 살았던 결혼 생활, 전쟁의 경험을 소설로 써서 등단하고 작가로 살게된 이야기까지 모두 담겨있다. 그리고 88년 남편과 아들을 잃은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소중한 두 남자를 잃고 그녀는 정신없이 여행을 다녔단다. 그 마음이 무엇일지 남편과 자식을 둔 아내이자 엄마라서 조금은 짐작이 된다. 그들이 없는 곳에서 두 발 붙이고 살 수 없었을 것이다. 작가 박완서가 아니라 한 남자의 아내였고 아들의 엄마였던 그녀가 보였다. 


어쩌면 지난 이십 년 동안의 설렘도 목적도 없는 여행이 다 고래 뱃속 안에서의 헤맴이 아니었을까. 오랜만에 내 땅에 첫발을 디딘 착지감은 눈 감고도 느낄 수 있는 첫사랑과의 터치처럼 에로틱하기조차 했다. 죽어서도 당신에게 스미고 싶어. 그런 황홀경이었다. p.367 




『그리움을 위하여』곳곳에 박완서 작가가 살아있다. 에세이나 산문을 통해 알게된 그분의 삶이 이야기에 그대로 녹아있다. 소설인지 사실인지 잘 모를 정도로 작가의 경험이 녹아들어 있다. 한 사람의 생애가 이토록 많은 사연을 품고 있구나 싶어 놀라울 지경이다. 500년은 산 것 같다는 박완서의 말이 거짓이 아니다. 80년 인생을 500년처럼 살아낸 작가의 고단하고도 성실했던 삶에 경의를 표한다. 나는 내 인생의 얼마큼을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을까. 인생이 이야기가 되려면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똑똑히 기억하고 제대로 표현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박완서 읽기>를 하며 박완서의 책뿐만 아니라 모든 책을 더 꼼꼼히 보게 된다. 좋은 책 속에 녹아든 저자의 삶과 철학을 조심스레 읽고, 소중하게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에서이다. 책을 읽는 속도는 느려지고 반복해서 읽다보니 읽는 책의 권수는 줄었지만 전보다 더 많은 생각들로 나의 독서 시간은 속 깊어졌다. 나이 들수록 속도 내기가 힘든데 지금 이 속도가 나에게 잘 맞다 싶다. 나에게 더 많은 시간이 있어서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저자들을 만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요즘 자꾸만 나의 남은 시간을 예상하며 쓸쓸해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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