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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Jan 29. 2024

정혜윤의 《삶의 발명》을 읽고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과 기대

난 이 책의 제목이 당연히 '삶의 발견'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삶 속에 분명히 있었는데 바삐 사느라 발견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일 거라고 지레 짐작했다. 그런데 '삶의 발명'이라니... 이미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보다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발명이니 훨씬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앎의 발명, 사랑의 발명, 목소리의 발명, 관계의 발명, 경이로움의 발명, 이야기의 발명, 제목이 흥미를 끈다. 앎, 사랑, 목소리, 관계, 경이로움, 이야기,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귀한 단어들이다. 이것들은 발명할 수 있다면, 기존에 내가 알고 있는 것들 말고 다른 것들을 다시 태어나게 할 수 있다면... 삶이 달라질 것 같기는 하다. 호기심에 가득 차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앎의 발명


뭔가를 그냥 아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면서 알게 되는 것은 한 인간이 삶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이자 힘이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우리 삶은 방향을 바꾸게 된다. 가만히 있는 것보단 사랑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가만히 있는 것보단 사랑할 것을 찾아 길을 떠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길을 떠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길을 만들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p.23


두려움 없이 살기 위해서라도 세계에 대한 앏이 바뀌어야 한다. 세상을 이전과는 다르게 알아야 한다. 알았던 것을 잊어버려야 한다. 다행히 어떤 앎은 지도다. 새로운 앎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새로운 삶을 살게 한다.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을 알게 되어야 가능성이 태어난다.
p.56


처음부터 심쿵이다. 단어들, 문장들이 하나하나 가슴에 박힌다. 한 단어가 아니라, 한 문장이 아니라 연결된 단어와 문장이 모두 나를 건드리고 뾰족하게 찌른다. 가만히 있지 말고 사랑을 찾아 떠나라는 말에 몸이 움찔움찔 반응한다. 그동안의 소극적인 사랑의 태도를 반성한다. 더 뜨겁게, 더욱 최선을 다해 사랑해야지 싶다. 이 곳에서의 사랑이 다하면 내 사랑이 닿을 수 있는 어디든, 그곳을 향해 떠나야지 결심한다. 5년 후 남편과 떠나는 것이 막연한 꿈이었는데 이젠 나와의 약속이고 다짐이 되었다. 우리가 닿는 그곳에 새로운 사랑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다. 알았던 것을 잊어버리고 새로운 앎으로 새로운 삶을 살라는 말에 앞으로의 삶에 대한 희망과 의지가 생기는 기분이다. 그동안 내가 알던 것이 아닌, 새로운 앎이 나에게 보여줄 새로운 삶이 무척이나 기대가 된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쓸 것을 다짐한다. 


사랑의 발명


1999년 6월 30일, 씨랜드 화재 참사로 301호에 묵었던 소망 유치원생 열아홉 명을 포함해 스물세 명 사망.

2011년 춘천 자원봉사 간 인하대 학생들이 묵던 숙소 산사태로 매몰, 10명 학생 사망.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로 192명 사망, 151명 부상.

2018년 발전소 사고로 비정규직 청년 김용균 사망.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로 304명 사망, 실종.


과연 무얼 걸고 맹세해야 우리의 다짐이 변하지 않을까? 
우선 우리 유가족들이 변하지 않고 영원히 함께하길 바란다
그래야만 우리 아이들이 편할 것이고
우리의 사랑 또한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외롭고 슬플 땐 오늘을 다시 되돌아봤으면 한다
우리가 함께했던 세월을
아이들을 맨 처음 잃었을 때부터
그리고 그 긴 여정을 함께했던 세월을!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좋을지 모른다
어떻게 해야 바로 사는 건지, 무엇이 옳은 건지
그러나 이거 하나만은 알고 있다
우리가 영원해야만 그리고 우리가 언제까지나
깨끗해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을
우린 바라고 싶다
모든 사람들이 편하게 살 수 있고 모든 생명이
존중받고 사랑받기를

그러기 위해선 우리가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단 우리 아이들을 잃은 것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미래를 위해서
자라나는 새싹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씨랜드 참사 백서』중에 유족들이 남겼다는「우리의 다짐 글」


나는 유족들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배웠다. 유족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은 구해야 할 것이 있는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삶도 죽음도 무의미하지 않기를 바라는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삶도 죽음도 무의미하다는 그 무의미와 싸우며, 자신의 아픈 가슴속 생각 중 가장 좋은 것을 내주면서 변화의 일부분이 되려고 하는 것이 유족들의 사랑이다. (...) 유족들은 슬픈 마음의 일부분을 해방시키고 그것을 우리에게 나눠주었다. 이렇게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고매한 행위로서의 사랑을 발명했다. (...) 나는 사랑은 창조 행위라는 말을 그들을 보면서 이해한다.
p.91~92


가족을 잃은 사람들, 특히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생각하는 것만으로 힘이 든다. 가족을 먼저 보내고 남은 이들이 다른 사람들은 더 이상 자신과 같은 일을 겪지 않길 바라는 그 마음은 분명 고귀한 사랑이다. 내 가족, 내 자식만 생각하느라 다른 곳에 눈돌릴 틈 없는 보통의 사람들에게 그들은 세상을 보는, 새로운 방법을 가르쳐준다. 그들은 사람은 잃었지만 사랑을 잃어버리진 않았다. 그동안 내가 품었던 사랑은 너무 작았다. 내 사랑이 어디까지 커질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매일 사랑을 키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목소리의 발명


나는 무엇에 '대해서' 말하는 동시에 무엇을 '위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 가진 가장 좋고 아름다운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p.116~117
'OO를 사랑하게 된 그 시간에 감사드린다.' 이 문장에 내 인생 전체가 담겼으면 좋겠다. 사랑할 줄 안다는 것은 시간과 삶이 준 가장 큰 선물이고 삶의 의미는 자신으로부터 나오지 않고 자신이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나오므로. 그리고 삶은 결국은 내가 무엇을 사랑하는지 말할 줄 알게 되는 하나의 과정이므로.
p.118
나는 생명, 자연,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볼 마음이 있는 사람들, 변화의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강하고 고귀한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다. 그 사람들을 존경하면서 그 사람들의 가치를 존중하면서 그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받고 살고 싶다.
p.122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나를 비롯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와 그들을 '위해서'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기에 더 열심히 책을 읽고 글을 쓴다. 그러므로 나는 내 삶의 끝자락에서 읽고 쓰는 사람으로 살아온 시간에 감사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도 좋은 책과 꾸준한 글로 맞이하게 될, 변화의 순간들이 기대되고 기다려진다. 


관계의 발명


삶의 의미는 삶을 가치 있게 사는 데 있고, 우리는 이것을 자아실현이라고 부른다. 나는 이렇게 자아를 실현하면서 삶을 살아내는 것을 삶의 발명이라고 부른다. 바닷가에서 돌고래를 기다리는 것이 나에게는 나다운 것이고 행복이고 자아실현이다. 도저히 있을 법하지 않은 기쁜 일을 기다리는 것이 나다운 것이고 나의 자아실현이다. 도저히 있을 법하지 않은 기쁜 일이 일어나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 이 또한 나의 자아실현이다. p.149~150
우리는 시간과 우연의 자식들에 불과하지만, 그러나 시간과 우연을 초월해서 살아남는 경이로운 것들, 우리 인류가 존재하는 한 불멸일 것들, 우리를 끝까지 기쁘게 인간이게 하는 것들이 있다. 그것들도 별처럼 나를 끌어당긴다.
p.170~171


'도저히 있을 법하지 않은 기쁜 일이 일어나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 너무 아름답고 설레는 말이다. 지금의 내 자리에서, 내 일상 속에서, 그저 무탈하게 하루를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예상할 수조차 없는 기쁜 일을 행운처럼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그 일이 일어나도록 최선을 다한다니... 우주의 너무 작은 존재에 불과한 내가 사는 동안 할 수 있는 일이 꽤 많을 것 같다. 그래서 벅찬다. 하루에 한 가지씩 기쁜 일을 만든다, 이런 목표로 살면 오늘이 그저 평범한 하루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 


경이로움의 발명


나는 하늘의 별을 볼 때처럼, 심금을 울리는 희생과 헌신과 책임감의 이야기들에 매료된다. 나의 욕망 중 가장 큰 욕망은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에 대한 욕망이고 나는 이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인간적인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본다. 나는 이 경이로운 마음들과 함께 멀리 가보고 싶다. 더 많은 하지 않음, 포기를 발명하면서. p.190


경이로움을 발명하기에는 내 활동 영역이 너무 좁다. 아니, 그보다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심,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한 호기심, 그동안 보지 못한 것들을 직시할 용기가 부족하다. 단순히 해외 여행을 다니지 못한 내 경제적 빈곤을 탓할 일이 아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혜윤이 그리스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는 분명히 샘이 났다) 내 가족의 안위만 중요했고 내 노력은 나와 내 가족의 무탈함이라는 작은 목표에도 힘에 부쳤다. 이제 아이들 다 컸으니 우리도 해외 여행도 다니고 좀 그렇게 살아보자는 남편의 말이 반갑다. 통장의 잔고 걱정하지 말고 일상의 틀 안에 너무 안주하지 말고 이제는 정말 훌훌 떠나보고 싶기도 하다. 남들 다 하는 해외 여행이 아니라 더 가치 있는 삶을 위해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경이로움을 발명하러.


이야기의 발명


모닥불가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진화한 영장류 동물로서, 우리는 이야기를 듣는 자에서 이야기를 돌려주는 자로 변해간다. 어떤 이야기를 돌려주려고 하느냐 그 문제가 남을 뿐이고, 이야기를 하는 동물로서 좋은 이야기를 (이 세계에) 돌려줄 수 있다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p.217
지금 따라 하고 있는 이야기 중 뭔가를 잊어버려야 한다. 각자를 지배하는 메인서사 - 어느새 그렇게 살아야한다고 믿게 만들어버린 - 의 환상을 깨야 한다. 우리가 행복이라고 믿었던 것, 그래서 그 길을 향해 달려가게 만들었던 이야기들을 의심해봐야 한다. 그래야 삶과 미래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고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하고 다른 곳에 에너지를 쓰면서 다른 미래에 살고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다.
p.220


글을 쓴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런데 가끔 내 이야기를 누가 듣고 싶어하기는 할까 의문이 들 때도 있다. 때로는 그리 특별할 것 없는 내 이야기가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고 쓸데없는 생산품 하나씩 늘려가는 건 아닌지 자기 반성이 들기도 한다. 그럴 땐 새로운 이야기를 발명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겠구나 싶다.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을 의심해보고 지켜오던 순서를 뒤집어보기도 하면서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보고 다른 시점으로 바꿔보기도 하면 새로운 나만의 이야기를 쓸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오로지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재미있는,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다. 




정혜윤의 《삶의 발명》을 읽으며 그동안의 앎, 사랑, 목소리, 관계, 경이로움, 이야기에 관한 개념과 범위가 달라진 기분이다.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달리 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삶의 발견이 아니라 그동안 살아보지 못한 삶의 발명,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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