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없는 아내의 부부 모임
내가 좋아하는 모임과 사람들!
자주 만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이 나이에 편하게 수다떨 친구 하나도 없다. 15살에 떠나온 시골 중학교 동창회 밴드 알람이 울리기는 하지만 토요일에 하는 정기 모임에 못 나간 지 3년이 넘었다. 아니, 그보다 더 된 것 같다. 재취업해서 1년 국어 강사로, 지금은 논술 강사로 3년째 토요일에 수업이 가장 많으니 토요일 낮시간 동창 모임에는 시간을 낼 수가 없다. 그래도 마음이 간절하면 한 번쯤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참여하겠지만 그만큼은 아닌 듯하다. 나를 포함해 5명 여고 동창생 모임이 있지만 최근에는 장례식에서 얼굴 보는 정도로 만남의 횟수가 많지 않다. 정기적인 모임도 없다. 설 연휴 끝나고 만나기로 했는데 전에 언제 만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랜만인 것 같다.
작년엔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친구가 되면 좋겠다 싶어 은유 작가의 글쓰기 모임 메타포라에 3개월 학인으로 참여했지만 그 뒷모임에 나는 빠진 상태다. 서울이라는 거리감에 나와 다른 결의 사람들과의 간극이 모임에 대한 적극성을 방해했다. 너무 오랫동안, 사람들과의 지속적인 만남을 하지 않은 탓에 인간 관계를 위한 최소한의 노력도 번거로운 일이 돼버린 것 같다. 이러다 나의 노후가 너무 외로워지는 건 아닌지 살짝 걱정이 될 때도 있다. 그나마 형제가 넷이라 큰언니를 만나러 간다거나 술 좋아하는 형부 덕분에 작은언니네와 가끔 술자리를 갖기도 하고 멀리 구미에 사는 남동생와 시간을 맞춰 네 형제가 함께 모인다. 하지만 이것도 일 년에 서너 번 정도인 것 같다. 엄마아빠가 돌아가신 후로는 그 횟수마저 줄었다.
<지란지교를 꿈꾸며>에 나오는 친구는 고사하고 심심할 때 부담없이 연락처를 누를 친구 하나가 없다. 남편의 중학교 동창이자 내가 스무 살 때 미팅으로 알게 된 남자친구와 그 와이프(연상이라 내가 언니라고 부른다)를 가끔 만나 술잔을 기울이고 신나게 떠들고 올 때가 있다. 얼마 전에도 그 친구 부부가 송도 신도시 새아파트에 입주해서 집들이에 다녀왔다. 만나면 하하호호 즐겁지만 내 친구라고 하기엔 좀 거리가 있다. 자식 없이 둘만의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는 그 부부와 우리는 라이프 스타일이 다르니 공감대가 크지 않다. 그래서 자주 만나게 되지는 않는다. 솔직히 시간과 돈에 여유가 넘치는 언니에게 심한 질투를 느끼게 될까봐 나 자신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만남의 횟수를 자연스레 조절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내 소박한 일상과 일하는 여자로서의 자존감은 소중하니까.
가끔 남편에게 나는 친구 하나도 없다고, 당신은 회식이라는 게 있지만 나는 학원에서 혼자 논술쌤으로 일하니 직장 동료도 없이 좀 외롭다고 투덜댄다. 내 인간 관계가 좁디좁은 것은 결코 남편 탓이 아닌데도 말이다. 오히려 남편 덕분에 알게 된 사람들이 많다. 남편은 초등학교 동창 몇 명과도 지금까지 40년이 훌쩍 넘는 우정을 유지해오고 있다. 그래서 그 친구들과 함께 아주 가끔 식사 자리를 하기도 한다. 남편은 20년 가까이 사회인 야구팀에 소속되어 있는데 같은 직장 선배이자 야구부 감독님과는 오랜 세월 큰형님과 막내동생처럼 훈훈한 사이이다. 그 덕에 나도 감독님과의 술자리에 스스럼없이 낄 수 있을 만큼 친해졌고 그 사모님과는 언니 동생 하는 사이가 되었다. 남편과 감독님이 야구부에서 만난, 우리 동네 참치집 사장 내외와도 인연을 맺게되어 지금은 세 커플이 가끔 참치집에서 만나 안부를 묻고 정담을 나누는 관계가 되었다.
나잇대가 감독님네, 우리 부부, 참치집 커플 순이다. 우리 세 커플의 공통점은 모두 자식으로 아들 둘을 두었다는 것이다. 감독님 큰아들은 얼마 전에 결혼했고 우리 큰아들은 내일 전역을 앞두고 있고 참치짐 큰아들은 해군 입대해서 지금 상병이다. 둘째들은 아직 부모의 보호 아래 잘 크고 있다. 우리는 거의 비슷한 과정을 겪으며 자라는 아들들 이야기로 만나기만 하면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게다가 모두 일을 하고 있는 맞벌이 부부라서 시간, 경제적인 여유에 어느 정도 목말라 하고 있다는 점도 서로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좋다. 비슷한 상황과 형편 때문인지 서로에 대한 안쓰러움과 격려, 응원의 마음이 적절히 섞여 있어 우리 비정기적인 모임의 분위기는 항상 훈훈하다. 며칠 전에는 정말 오랜만에 만나 별 이유없이 우리가 한 턱 쐈다. 그저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 자리에 대한 기분 좋은 소비였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내가 어떤 사람들, 어떤 분위기를 좋아하는지 알게 된다. 아니, 젊었을 때와는 사뭇 달라진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에너지가 샘솟고 열정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좋았다. 정적인 것보다는 땀냄새가 나는 치열한 분위기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나도 강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사람으로 주변 사람들을 압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고 이기는 것이고 결국 성공하는 것이라 믿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은 편안한 관계, 부드럽고 따뜻한 분위기가 좋다. 비교적 밝은 에너지와 적극적인 태도를 가진 내가 양념 역할을 할 수 있을 정도면 된다. 무엇보다 삶의 철학이 단단하고 성실한 생활 자세를 가진, 착한 사람들이 좋다. 생각해보니 내 주변엔 좋은 사람들이 충분하다. 그들에 대한 나의 진심과 친절, 적당한 거리와 온도만 유지된다면 나의 인간 관계는 그런 대로 괜찮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