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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Aug 17. 2024

날것의 느낌! 델리아 오언스의 『가재가 노래하는 곳』

내 안의 야성이 깨어난 듯...

와우, 미쳤다! 내 취향에 딱 맞는 이런 소설을 만나면 나는 성형을 한 것보다 - 안타깝게도 성형을 해본 적은 없지만 - 내가 완전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밥을 걸러도 배고픔을 못 느끼고(물론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백 미터 달리기를 한 것처럼 맥박이 빠르게 뛴다. 내 안의 야성이 깨어난 듯 몸이 으르렁대고 정신이 출렁거린다. 설레는 흥분이다.


셸리 리드의 소설 『흐르는 강물처럼』을 다 읽어갈 때쯤 그 전에 출간된 소설, 델리아 오언스의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도서관에서 빌려다 놓았다. 자연 속에서 자란, 야성을 품은 여성의 이야기를 원했다. 적중했다. 자연스럽게 책장에 꽂혀 있던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을 소설책과 나란히 놓고 번갈아 읽기 시작했다. 도시를 떠나 자연과 가까운 곳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에 불이 붙은 듯 가슴이 뜨거워졌다.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벗어나 내가 가보지 못한, 대한민국의 구석구석을 밟고 싶다. 해외 여행에 대한 욕구도 생겼다. 한번도 가보지 못한 다른 나라의 풍경과 문화를 경험했을 때 내가 무엇을 느끼게 될 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작가 델리아 오언스는 동물학을 전공하고 동물행동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그후 아프리카에서 야생 동물을 관찰하고 논픽션 3편을 썼고 그 책들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단다. 그녀의 나이 70이 되어서 첫 소설을 썼는데 그것이 바로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수학과 과학 성적이 뛰어난 이과생이 글도 잘 쓰고 문학적 감성까지 갖추고 있는 셈이다. 문창과나 국문과 출신의 우리나라 젊은 작가들보다 그녀의 이력이 신선했다. 그녀가 만든 카야의 이야기는 날것의 느낌이다. 


『가재가 노래하는 곳』 독서 노트1.
『가재가 노래하는 곳』 독서 노트2.


내가 정리한 줄거리

노스캐롤라이나 해안의 습지,  여섯 살 난 카야는 엄마와 언니 둘, 두 명의 오빠까지 떠나버린 판잣집에서 아버지와 단 둘이 산다. 카야의 아버지는 폭력적이고 술주정뱅이에 가정과 아이를 돌보는 일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아빠마저도 집을 나간 채 소식이 끊기고 카야는 성인이 될 때까지 습지 주변 생물들과 외롭게 자란다. 그러다가 테이트라는 따뜻한 남자를 만나 보호받으며 사랑에 빠지지만 청년 테이트는 자신의 미래와 갈등하다 잠시 카야의 곁을 떠난다. 상처 입은 카야는 체이스라는 남자를 만나 평범한 여자로서의 미래를 꿈꾸기도 했지만 체이스는 카야를 성적 대상으로만 여길 뿐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 어느 날 체이스가 시체로 발견되고 범인으로 몰린 카야는 긴 법정 공방 끝에 무죄로 풀려난다. 카야는 한결같이 카야 곁을 지켜준 테이트와 함께 판잣집에서 생물을 연구하고 보살피면서 살다가 예순 여섯에 조용히 숨을 거둔다.


카야는 살면서 단 하루도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 왜가리를 관찰하고 조가비를 모으는 생활만으로 배움은 충분했다. "나는 벌써 비둘기처럼 우는 법을 아는 걸." 카야는 혼잣말을 했다. "그리고 그 애들보다 훨씬 잘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아무리 좋은 구두를 신고 다니면 뭐한담." (p.48)

테이트의 아버지는 진짜 남자란 부끄러움 없이 울고 심장으로 시를 읽고 영혼으로 오페라를 느끼며, 여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법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p.68)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자연의 경이와 실제 삶의 지식, 누구나 알아야 하는데, 버젓이 주위에 노출되어 있는데 씨앗처럼 은밀하게 숨어 있는 진실들. (p.144)

뭐든 읽을 수 있게 되면 모든 걸 배울 수 있어. "우리 두되는 아무리 써도 도저히 꽉 채울 수 없거든. 우리 인간은 마치 기다란 목이 있으면서도 그걸 안 써서 높은 곳에 있는 잎사귀를 따먹지 못하는 기린 같은 존재야." (p.166)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 그리고 대학 4년, 대학원까지 가면 2, 3년 더. 한 사람의 인생에서 학교를 다니는 기간은 무척 길다. 그곳에서 우린 무엇을 배웠나.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우리 삶의 질을 높이고 인간으로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 얼마큼이나 기여했을까. 지나고보니 그 시간이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간에 차라리 많은 곳을 다녀보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경험을 쌓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나'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더라면 좀더 일찍 나다운 삶을 찾아 자유롭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대학 진학을 하지 못한 우리 두 아들, 아들들이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자존감이 낮아지거나 사회의 학벌 장벽에 부딪혀 좌절하게 될까봐 부모로서 걱정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보다는 자기가 원하는 길을 찾도록 곁에서 지원하고 지켜봐 준다면 분명 자기다운 삶을 개척해 나가리라는 믿음이 더 크다. 카야처럼 자유로운 삶을 살아내는 데에는 대학이 필요하지 않다. 좋은 직장, 높은 연봉보다 우리 두 아들이 테이트처럼 낭만적이고 사랑을 지킬 줄 아는, 진짜 남자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4년 후 나는 남편과 함께 자연 가까운 곳에서 지금보다 훨씬 자유롭게 살 날들을 꿈꾼다. 아침에 일어나 자연이 전해주는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산책하고, 한적한 도서관에서 좋아하는 책을 읽다가 남편과 간단하게 장을 봐서 소박한 저녁을 먹고 내 생애 가장 자유롭고 느린 삶을 글로 남기는 일상. 뭐든 읽을 수 있으니 뭐든 쓸 수 있고 무엇이든 꿈꿀 수도 있다. 


"갈 수 있는 한 멀리까지 가봐. 저 멀리 가재가 노래하는 곳까지."
"그냥 저 숲속 깊은 곳, 야생동물이 야생동물답게 살고 있는 곳을 말하는 거야." (p.142)

색채, 빛, 종, 생명이 지식과 아름다움을 씨실과 날실 삼아 걸작을 짜내어 판잣집 방마다 가득 채웠다. 카야의 세계. 카야는 수집품을 벗 삼아 홀러 자라나며 넝쿨 줄기처럼 모든 기적을 하나로 엮었다. (p.186)

예측 가능한 올챙이들의 순환고리와 반딧불이의 춤 속으로 돌아온 카야는 언어가 없는 야생의 세계로 더 깊이 파고들었다. 한창 냇물을 건너는데 발밑에서 허망하게 쑥 빠져 버리는 징검돌처럼 누구도 못 믿을 세상에서 자연만큼은 한결같았다. (p.269)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자랐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부끄러울 것도, 부족할 것도 없이 마음껏 뛰어놀았다. 돈에 떠밀려 도시로 온 이후부터는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사람으로 평균을 쫓아가기에도 버거웠다. 그래서인가,  오래토록 내가 원하는 삶보다는 남들과 비슷한 인생을 살기 위해 애쓴 것 같다. 괜찮은 척, 센 척, 쿨한 척 하다가 진짜 내 모습을 잃고 어느새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 지조차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이 돼버렸다. 40이 훌쩍 넘어서 일을 그만두고 잠시 멈춤의 시간을 갖고 나서야 '나'와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잊고 있었던 내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50이 넘은 지금, 난 '나'와 아주 많이 친해졌다.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점점 더 선명하게 그리는 중이다.  


늦은 때란 없다. 난 더 멀리 가서, 더 많은 걸 보고 경험하고, 배우고 느끼고 싶다. 그 끝이 어디일지 모를, 나의 세계가 나도 궁금하다. 카야가 사람들에게 상처 받고 결국 자신의 보금자리 습지로 돌아와 야생의 세계에서 안식을 얻는 것처럼 나에게도 분명 가장 나답게 살 수 있는 그런 세계가 어딘가에 존재하리라 믿는다. 지금 살고 있는 도시보다 거칠고 외로운 곳이라도 사람들과 좀 거리를 두고 내 안으로 좀더 깊이 들어가보고 싶다. 


테이트, 보트를 타고 폭풍우가 오기 전에 집으로 가는 길을 인도해준 황금빛 머리칼의 소년. 닳아빠진 등걸에 깃털 선물을 놓아두고 글을 가르쳐준 소년. 여자가 되는 첫 고비를 순조롭게 지나칠 수 있게 도와주고 처음으로 암컷의 욕정을 일깨워준 상냥한 마음씨의 십 대. 책을 펴낼 용기를 준 젋은 과학자. (p.310)

살아오면서 가장 무너지기 쉬운 자리에 서서 카야는 그녀가 아는 유일한 안전망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녀 자신 말이다. (p.355)


사랑은 인정이고 존중이다. 어떤 순간에도 상대가 자신의 본성과 본질을 잃지 않도록 지켜주고, 흔들리다가도 자기 자리로 무사히 돌아오도록 응원하고 기다려주는 것이 진짜 사랑이다. 서툴고 모자랐던 나의 사랑, 성숙하지 못했던 나의 과거를 참회하듯 되돌아본다. 후회없는 사랑을 위해서, 미처 다하지 못한 사랑을 위해서, 나는 힘을 내서 살아야겠다. 가장 무너지기 쉬운 자리에서 나 자신이 든든한 안정망에 되도록 더 강해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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