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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Aug 06. 2021

꿈의 온도

일을 그만두고 나서야 제대로 뜨거워졌다!

"독한 년! 지 애미애비 닮아서 저렇게 독한 거야."

 15살 중학교 2학년 여자아이는 이런 말을 들었다. 빚에 시달리다 고향에서 야반도주를 감행한 부모님의 셋째 딸이었다. 외할머니댁에 홀로 남아 정든 고향과 친구들을 떠나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만 오래 버티기에는 너무 어렸다. 낯선 인천에서 오랫동안 가난했다. 10대의 나는 자존심이 밥 먹여 주는 줄 알았다.

 뜨겁게 사랑했고, 취하도록 술을 마셨다. 돈벌이와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방황했다. 학원 국어 강사로 돈을 벌면서 다른 직업인을 꿈꿨다. 20대엔 아직 젊으니 원하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다. 노력하면 안 되는 일이 있겠냐고 큰소리쳤다.

 한번도 직업을 바꿔보지 못한 채 젊은 학원 원장이 되었다.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성공해서 떵떵거리며 살고 싶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존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족, 친구보다 일이 더 중요했고 기꺼이 외로울 수 있었다. 30대의 난 워커홀릭이라는 말을 자랑으로 삼았다.

 상상하지 못한 나이 40이 되었다. 불혹에 나는 가장 많이 흔들렸고 여기저기 아팠다. 나이 먹었으니 이 정도는 견딜 줄 알아야 한다는 듯이 크고 작은 일들이 끊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나에게 열정 가득한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40대의 나는 점점 식어가고 있었다.

 살아보니 자존심으로는 배가 부르지 않았다.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더 많았다. 20년 넘게 일하는 여자로 살아왔건만 성공은커녕 만족할 만큼 돈도 벌지 못했다. 그만두고 싶은 일에 오랫동안 질질 끌려 살았다. 그러던 중 아빠의 말기 암 진단에 충격받고, 아직 젊은 나이에 자궁 없는 여자가 되었다.

 마흔여섯에 나는 일을 그만두었다. 난생처음 전업주부라 모든 게 어색하고 서툴렀지만, 직장이 아닌 곳에서 나에게 설레는 꿈이 생겼다. 돈을 벌지 않는 24시간은 한순간도 허투루 보낼 수 없을 만큼 소중했다. 일보다 가족이 우선이 되었고, 돈보다 꿈이 간절했다. 일을 그만두고 나서야 제대로 뜨거워졌다.

 읽고 쓰는 삶을 살겠다는 꿈은 나를 서서히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엄마, 아내, 딸의 역할을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내 꿈을 이뤄가기 위해 새벽부터 밤까지 시간을 아껴가며 살았다. 나이가 들어 생긴 꿈이니 무엇보다 체력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요가와 등산을 했다. 덕분에 요가 전문가 과정을 마쳤고, 함께 산을 다닌 남편을 든든한 내편으로 만들 수 있었다.

 새로운 꿈은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꿔 버렸다. 부자보다 작가라는 이름에 욕심이 났다. 더 많이 읽고 더 잘 쓰는 사람이 될 수만 있다면 내가 가진 다른 것을 포기해도 좋을 만큼 책에 빠져들었다. 내가 읽은 책은 내 가슴을 뜨겁게 달궜고, 나도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는 책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매일 글을 쓰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2018년 가을부터 3년 가까이 하루도 빠짐없이 블로그에 글을 썼다. 일생을 통틀어 가장 많은 이웃이 생겼다. 꿈에 대한 열정은 나의 자존감을 높여 주었다. 덕분에 마흔아홉의 나이에 당당히 재취업에 성공했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글쓰기에 대한 욕심은 덜해지지 않았다. 브런치 작가가 되어 나를 ‘이작가’라고 부르는 남편과 축하 파티를 했다. 그리고 곧바로 출간 계약서까지 쓰게 되었다. 책 원고를 쓰면서 대학생들 앞에서 꿈에 대해 인터뷰하는 경험까지 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내 첫 책 『일을 그만두니 설레는 꿈이 생겼다』를 출간했다.

 내 첫 책 속에는 ‘유쾌한 주용씨’로 꿈을 갖고 글을 썼던 3년 동안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 이 이야기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 인생에서 ‘가장 뜨거웠던 순간’은 바로 그때였다. 내 이름의 책을 출간하는 꿈은 이뤄졌지만, 아직도 나는 꿈에 대한 열정으로 하루하루를 산다. 읽고 쓰는 삶을 이어가기 위해 나는 일년 만에 직장을 다시 그만뒀다. 경제적인 걱정은 꿈에 대한 열정으로 녹여 버렸다.

 나는 지금까지 매일 블로그에 글을 쓴다. 가끔이지만 브런치에도 글을 발행한다. 두 번째 책에 대한 계획도 세울 것이다. 그리고 지금 ‘아미가클럽’ 2기가 되어 <2W 매거진>의 필진으로 글을 쓰고 있다. 여전히 글쓰기는 어렵지만 나는 매일 글과 함께 산다. 읽고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은 꿈 때문에 나는 오늘 가장 뜨겁다.



 2W 매거진 14호 『내 생의 뜨거운 순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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