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연 술과 이별할 수 있을까?
나는 알코올 의존증이다. 어떤 선언처럼 들리지만 처절한 고백이며 벗어나고 싶다는 절규이기도 하다. 다니엘 슈라이버의 책 『어느 애주가의 고백』을 읽었던 때가 2018년 봄, 당시 말기암과 싸우고 있던 아빠와 병원에 다녀와서 지친 몸과 마음을 혼술로 달래고 잠을 청한 다음 날이었다. '술 취하지 않는 행복에 대하여'라는 부제가 눈에 번쩍 뜨였다. 술을 마시는 횟수만큼이나 술을 끊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던 때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술을 끊겠다는 옹골찬 결심을 언제 할지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알코올 의존증’이라는 병명을 내것으로 받아들였지만 그 후로 3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그 병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사이 아빠는 돌아가셨고, 엄마는 걷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요양병원에 갇혔다. 나는 언제나처럼 기쁨과 슬픔을 술과 함께하며 살아왔다. 지금까지 살아온 50년 생애에 술과 함께 한 시간이 30년이다. 스무 살에 함께 술을 마시며 시작된 베프와의 관계도 30대 중반에 끝나버렸고, 20대 초반에 술자리에서 만나 결혼을 하고 20년 넘게 함께 산 남편과도 잠시 헤어져 있던 때가 있었는데 내 기억으로는 한 달 이상 술을 마시지 않은 채 살아본 적이 없으니 나와 술의 관계는 어떤 친구보다도 가까이, 오래 지속된 셈이다.
술이 있어야 좀 더 크게 웃고, 술이 들어가야 좀 더 시원하게 울 수 있었다. 술을 마셔야 다른 사람 시선에 상관없이 마이크를 잡고 목에 핏발이 서도록 노래할 수 있었다. 술기운이 아니었다면 일 년 동안 짝사랑했던 대학 선배에게 고백하는 용기를 낼 수 없었을 것이다. 남편과 싸우고 난 뒤에도 술로 풀었다. 혼술을 하다 잠이 들거나, 남편과 함께 정신없이 마셔서 무엇 때문에 싸웠는지를 잊어 버렸다. 골치 아픈 일은 술 마시고 '에잇, 될 대로 되라'며 체념하거나 포기해버리고 스스로 '잘 한 거야'라며 합리화했다. 하지만 술이 깨고 나면 숙취의 괴로움과 함께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 그대로 놓여 있었고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다.
술로 인한 실수는 말할 것도 없다. 성급한 고백과 경솔하게 시작된 관계로 나의 시간과 마음을 소비했다. 무르익기도 전에 따 먹은 열매는 시고 떫었고 그 뒷맛은 꽤 오래갔다. 술 마시고 벌여놓은 일들은 나중에 술이 깨고 난 뒤 수습하기에 바빴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쏟아낸 말들, 빈약한 이유나 근거로 저질러버린 행동들, 주워 담기엔 너무 오래되고 너무 늦어버린 나의 흑역사가 술과 함께였다.
스무 살에 자연스럽게 시작된 음주는 30년 동안 나와 동고동락했다. 2,30대와는 다르게 40대 이후의 술은 습관이 되어버린 것 같다. 배가 고플 때, 혼자 있을 때, 일이 없을 때, 마음이 복잡할 때, 잠이 오지 않을 때 그리고 비 오는 날에 술 한 잔을 기울인다. 상대가 없어도, 술집이 아니어도, 술안주가 없어도 냉장고를 열어 소주병을 딴다. 집에 술이 없으면 귀찮아서라도 그만둘 법도 한데 굳이 집앞 슈퍼나 편의점에 가서 술을 사 오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 정도면 애착을 넘어 집착이다. 술이 없는 내 일상을 상상할 수 없다.
50이라는 나이 때문인지, 30년의 긴 세월이 좀 지겨워졌는지 올해는 유독 술과의 이별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함께 30년을 동고동락하면서도 헤어질 기회를 수시로 노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술 입장에서 생각하면 무척이나 서운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와 같은 친구가 널리고 널렸을 테니 나 한 명 절교 선언한다고 해서 술이 그리 서운해 할 것 같지도 않다. 그런 면에서 술과 나의 관계는 평등하지 않다. 주도권이 술 쪽으로 한참이나 기운 관계였다. 한 마디로 내가 술에 휘둘리며 30년 관계를 지속해 온 셈이다.
이 정도 마셨으면 그만 마셔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술과 30년 살았으니 나머지 30년은 술 없이 살아보고 싶기도 하다. 술이 없는 나의 생활이 어떻게 달라질지 무척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과연 나는 30년지기 술과 이별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