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 이수로 교생실습을 다녀오고 교사라는 역할에 대한 매력을 느끼던 저에게 많이 하던 우려의 목소리가 있었어요.
'너는 화도 제대로 못 내는데 교사를 어떻게 하려고 하니?'
'화를 내도 화내는 것 같지도 않고 무서워하지도 않겠다.'
화를 못 내면 교사를 못한다고?!
화를 낼 줄 알아야 하는 게 교사의 자격 요소라니...!!
실업계고가 없어지고 특성화고와 마이스터고 등의 형태들이 하나둘씩 생겨나던 그때 전공 특성상 특성화고에서 근무를 해야 하는 저에게 모두가 염려했어요.
교사는 왜 화를 내야 하는가.
그리고 왜 화를 내지 못하면 안 되는가.
부정할 수는 없었어요. '라떼는~'을 소환하면 우리 기억에서 선생님이란 화를 내면 무섭고 엄격하고 폭력도 감행하던 존재 었기 때문이었죠. 누구나 한 번쯤 학창 시절에 선생님한테 자의적으로든 타의적으로든 무슨 이유로든 한 번 이상은 화를 무섭게 내는 선생님한테 맞아봤을 거예요. 지금의 교육 환경에선 체벌이 금지되었지만, 라떼는 체벌을 넘어선 폭력도 당연히 넘겨야 했던 시대였어요. 공동체 생활을 중요시하여 한 아이의 행동에 반 전체가 같이 벌을 받거나 맞기도 했어요. 선생님의 말을 안 들어도 맞았고, 선생님의 마음에 안 들어도 맞았죠. 물론 그렇지 않았던 선생님들도 계셨어요. 하지만 우리의 기억에서 상대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교사들의 모습은 화를 내어 학생들을 제압하고, 권위적이게 체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했어요.
특히 공부를 하겠다고 모인 인문계, 공부를 못해서 간다는 실업계의 편견이 강했고, 실업계는 특히 '문제아' 학생들이 많이 분포한다는 인식이 강했어요. 그런데 제가 실업계의 성향을 띤 특성화고에 교사가 된다고 하니 라떼 시절 많은 사람들의 염려가 많았어요. 저는 화를 내도 화내는 것 같지 않은 사람이라 특성화고 교사가 되면 오히려 학생들에게 무시당할 거라는 걱정이었어요.
하지만 제가 경험한 학생들은 문제행동 이전에 학생들만의 순수한 내적 갈등이 역동적으로 존재했어요. 진지한 자신과의 싸움에서의 갈등을 기질 특성상, 환경여건상 말과 행동으로 표출했는데, 주변인들이 자신의 경험에 빚대어 판단하고 편견을 갖고, 자극을 받아 반감을 사는 것이었어요. 주변인들에게 그 행동들은 문제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었어요. 학생들은 자신의 내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해 도와달라는 목소리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나타내는 것이었고, 피해를 주려는 목적이 우선인 학생은 없었어요. 모든 행동에는 그 나름 정당한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어요.
우리가 누군가에게 화를 내는 이유는 화가 나는 자신의 감정을 호소하고 공감받기 위함이에요. 학생의 행동에 화가 나고, 그 감정을 호소하고 공감받고 싶더라도 무작정 화를 내기보다는 화가 나는 이유에 대해서 먼저 설명해줘야 해요. 화나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죠.
'그 행동이 나를 화나게 하고 있어.'
'그 행동이 나의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어서 화가 나.'
우리가 누군가에게 화가 나는 이유는 자신과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그 상황과 그 행동이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죠. 하지만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해도 상대의행동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요. 그 이유를 알고 나서 화를 내도 늦지 않고, 그 이유를 알고도 화를 낼지 판단해야 해요.
'그 행동의 이유가 뭘까?'
'그 행동의 이유를 얘기해줄 수 있을까?'
'그 행동의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줄래?'
어렵죠. 어려울 것에요. 화가 치밀어 오르거나 정말 이해가 안 되는데 이유를 물어보고 화를 내라는 것은 어려운 일이죠. 하지만 이유를 물어보지고 않고 화를 내고, 감정적 공격을 가한 뒤에 이유를 알면 거의 높은 확률로 자신의 표현이 과했음을 후회하게 돼요.그 후회를 반복하고 싶고, 그 표현으로 상대와 멀어지고 싶다면 화가 날 때마다 화를 내면 돼요.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화가 나는 이유를 말해줘야 하고, 그 행동의 이유를 물어봐야 해요.
화가 나지 않은 척을 할 필요는 없어요. 저도 제 감정을 알려주긴 해야 하니까 말이죠. 단지 잠깐 휴전을 할 뿐이에요. 해명할 시간이랄까요. 잠깐 경계를 풀고, 혹시나 틀렸을 수 있는, 오해였을 수 있는 자신의 판단을 생각해보는 것이에요. 그리고 무엇보다 '얘도 얘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지'를 전제로 심호흡하고 이유를 물어보면 돼요. 그 시작에 '선생님이 지금 화가 날 것 같은데, 선생님이 오해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네 얘기를 먼저 듣고 싶어.'라고 솔직하게 얘기해보세요. 그 뒤에 오해를 풀거나 문제 상황에 해결방안을 마련해도 늦지 않으니까요. 오히려 들어주고, 도와주고, 안아줘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지도 몰라요.
저도 부족해요. 그래서 매 번 연습해요. 화가 치밀어 오르면, '후, 얘도 이유가 있을 거야. 이유나 듣고 화내자.'하고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다스리고 학생을 마주하려고 노력하죠. 이유를 듣고도 제 입장에서 화를 내기도 해요. 하지만 이유를 듣고 화내는 것과 제 판단만으로 화를 내는 것의 무게가 달라요. 단순히 일방적 감정싸움이 되느냐, 솔직한 양방향 감정 소통이 되느냐가 달라지는 거죠. 자신의 감정을 앞세우기 전에 상대를 배려하고 이유를 물어보는 것 자체로 함께 성장할 수 있어요. 저도 감정표현의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지만 사랑하는 학생을 위한 작은 노력을 반복하며 성장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