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 성격의 피검사
나의 난임 연대기 _스물두 번째 이야기
피검사하는 날
오만가지 감정을 복합적으로 꽁꽁 뭉쳐 마음에 담고
아침 일찍 새벽부터 병원으로 갔다.
9시 10분 예약이었지만
하혈도 했겠다, 출퇴근 시간 겹칠까 이런저런 걱정에 서둘렀다.
헌혈을 자주 했던 게 다행이다 싶게
임신 준비하면서 피검사를 참 많이 하는 거 같다.
심지어 배 주사도 많이 놓았었지.
피검사를 하고, 진료를 받는 줄 알았더니
검사 결과는 3시간 뒤에 나오니 전화 주겠다고 한다.
진료를 받고 싶다 말했더니
아직 초음파를 받는다 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하혈 이야기를 하고 배출된 어떤 덩어리 모습을 보여드렸다.
진료 기록에 받아 적으시더니
역시나 하혈의 이유도 피검사 결과를 보고,
임신이냐 아니냐에 따라 알 수 있다고
덩어리는 아마 질정 껍데기 거나 별개 아닐 거다.
이 또한 지금은 뭐라 판단할 수 없다.
이런 말만 듣고, 진료비를 지불했다.
솔직히 너무 답답해서
마음속으로 말이야 방귀야!!! 외쳤다.
그렇게 긍정적인 마음으로 다니던 병원인데
오늘은 구시렁구시렁 씨부렁씨부렁 대며 귀가했다.
오늘 임신이 되든, 아니든
기념비적인 날이 될 것이고,
감정의 정화가 좀 필요할 것 같아서
남편과 항상 구경만 하던 분위기 좋은 주점을 예약해뒀다.
그동안 데이트 다운 데이트를 안 한 것 같고
괜히 오붓하게 와인 한 잔 하면서 분위기를 내고 싶었고,
임신이 된다면 기쁜 마음에 금주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시간을 버리기 위해
미친 듯이 젤다의 전설을 하고 있었다.
요 근래 남편이랑 너무 많은 시간 동안 젤다의 전설을 했다.
그렇게 3시간이 되었을 때쯤 병원에서 전화가 왔고
게임을 멈추고, 마음을 추스르고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받았다.
어, 병원이에요~
아, 뭔가 목소리만 듣고도 근거 없는 여자의 직감이 발동하였다.
임신이 안되었군.
음~ 피검사 수치가 나왔는데, 임신이 안되셨어요.
음... 마음이 ~~
남편은 큰 실망을 한 것처럼 보였고,
나는 이미 내 마음을 비워뒀었다는 걸 알았다.
덤덤하게 대화를 해나갔고,
간호사한테 수정은 된 건지, 착상은 했을지 여부를 물어봤지만
그건 알 수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나의 근거 없는 직감으로는
수정은 성공했으나, 착상을 실패한 거 같다 말했다.
돌아오는 말은
수정에서 문제였든, 착상에서 문제였든
건강하지 못했던 게 탈락한 거였을 테니
임신이 된 거보다 나은 거라 생각하라 하셨다.
그러다 갑자기 또 임신 시도를 한다 해도
내 몸안에서 착상이 안 되는 거면 어쩌나 싶으면서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간호사가 토닥토닥해주면서
긍정적인 말들을 많이 해주었고
시험관 준비 희망 여부를 물어봤다.
의사와 아직 시험관 준비에 대해 얘기해둔 건 없지만
데이터들을 봤을 때,
인공수정을 한 번 더 하기보다는
시험관을 하는 게 더 나아 보인다는 소견이었다.
임신이 왜 안되는지 정확히 알고 싶어서
남편이란 상의하고 시험관을 하기로 결정했다.
한 달 정도 휴식기를 가지고
다음 생리기간에 병원을 방문하면
또 난임 연대기가 시작이 되겠지?
난임이 휴직할 용기를 줬는데
시험관이 또 다른 변화를 줄 예정이다.
인생을 살면서
지금 이 순간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지
그 어느 때보다 더 절실히 알게 되는 경험이었다.
이성적인 의식의 판단으로 합리화하기 이전에
무방비 상태에서 호르몬의 노예가 되어
본능에 충실한 무의식을 느끼다 보면
내가 누구이고
내가 소중히 하는 게 무엇이고
내가 지키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 같다.
부부가 무엇이고, 가족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는 것 같다.
그렇게 오늘도 어른이 되는 중에 있나 보다.
우리의 또 새로운 출발을 응원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