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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Aug 16. 2023

[책리뷰] 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불편하지만 들어오세요, 불편을 덜어 드립니다

불편한 편의점은 불편하다

불편한 편의점은 예전에 사 두고 오랫동안 읽지 않았었다. 첫 장면 서울역 노숙자가 도둑을 잡아 그 대가로 폐기된 편의점 도시락을 얻어먹는 장면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시에 조금 개인적으로 지친 상태였던 나는 그저 맑고 밝으며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가벼운 힐링소설을 원했었다. 표지에 귀여운 벚꽃이 그려져 있어서 기대했는데…

기대와 다른 첫인상이 솔직히, 불편했다.


최근에 다시 집어 들어 완독 했는데 내가 느낀 감정과 편의점에 들른 손님들이 느끼는 감정이 같다는 점에서 놀라기도 했고 반갑기도 했다.

노숙자 ‘독고’ 씨가 일하는 편의점에 처음 방문한 손님들, 그리고 함께 일하는 점원들 모두 그를 불편해했다. 안 그래도 물건도 별로 없고 별다른 마케팅도 없어 불편한데, 야간에 말을 더듬는 덩치 큰 덥수룩한 아저씨가 일하고 있어서 더더욱 불편한 것이다. 편하게 의지해야 하는 '편의점'이 '불편'하다니!


나보다 더 불편한 사람을 만났기 때문일까. 단골손님들도, 거쳐 갔던 점원들도 그곳에서 저마다의 불편함을 (본의 아니게) 털어놓게 된다.

그 불편한 편의점에서, 더 불편한 독고 씨에게서, 마치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듯 삶을 다시 살아갈 희망과 에너지를 얻고 간다.

불편하게 시작했지만 끝끝내 힐링을 주게 되는 소설, 명실공히 ‘불편한 편의점’이 아닐 수 없다.


편의점 일은 힘듭니다. 일이니까요. 무엇보다 손님이 편하려면 직원은 불편해야 하고요. 불편하고 힘들어야 서비스받는 사람은 편하지요. 저는 그런 불편한 여러분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 드리겠습니다.



줄거리

편의점을 운영하는 염 여사는 사촌 언니의 장례식을 위해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가다가 소중한 파우치를 잃어버린 사실을 깨닫는다. 파우치를 찾아준 자는 서울역 노숙자 ‘독고’ 씨였는데, 그는 다른 노숙자들이 덤벼들어 상처를 입은 와중에도 염 여사의 파우치를 지킨다.

감사의 표시를 하려는 염 여사에게, 독고 씨는 폐기된 (유통기한이 막 지나서 판매가 어려운) 도시락이면 된다며 고집을 피운다. 노숙자임에도 경우를 지키는 독고 씨의 모습을 좋게 본 염 여사는 그를 자신이 운영하는 편의점에 취직시킨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고 말도 더듬는 독고 씨. 처음에는 서툴지만 차츰차츰 편의점 일에 적응해 나간다.

처음에는 손님들뿐 아니라 같이 일하는 직원들도 그를 불편해한다. 하지만 둔해 보이지만 묵묵히 사람들을 챙기는 독고 씨에게, 점원들과 손님들, 또 점장 염 여사까지 고민을 털어놓게 되고 도움을 얻게 된다. 그렇게 다들 각자 인생의 불편함은 덜고 좋은 기억을 안고 떠난다.


염 여사와 아들 민식 씨, 알바 시현 씨, 점원 오선숙 여사, 손님 경만과 인경, 독고 씨의 뒤를 이어 야간 타임을 맡게 된 흥신소 곽 씨까지...

각각의 사연과 독고 씨에게 받은 도움이 한 챕터씩에 걸쳐 소개된다.


그리고 그동안 손님들에게 준 도움만큼이나 소통이 주는 소중함을 배우게 된 독고 씨는 점점 자신의 과거 직업과 노숙을 하게 된 이유를 기억해 낸다.

(직업과 이유는 스포일러가 될까 봐 아래에…)

결국 그는 과거의 잘못에서 도망치지 않고 다시 돌아가 속죄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려고 한다. 어느새 몸도 마음도 회복한 그를 기특해하며, 염 여사는 아쉽지만 그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보내준다.


© minkus, 출처 Unsplash


삶은 관계이고 관계는 소통, 소통은 행복

한자로 사람 인 人 자는 두 사람이 서로 기대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이렇듯 사람은 누구나 서로에게 의지하고 의지 받으면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소설의 처음에는 인정 많은 염 여사가 오갈 데 없는 노숙자를 위해 (아무리 물건을 찾아주었다고는 해도) 큰 선의를 베풀어 주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이후 염 여사를 비롯한 점원들과 손님들은 노숙자 독고 씨에게서 더 큰 힐링을 얻고 간다.

소설 속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가 관계에서 오는 문제들, 특히 가족 간에 소통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안게 된 고민들이다. 부끄러워 어디다 가도 말하기 힘든 불편한 가족 간의 문제를, 다들 불편한 편의점에 앉아서 소주 한 잔 하면서 털어놓고 간다.


누구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는 게 아닌, 관계에서 서로 주고받는 소통.

물론 사람들 간의 도움과 수혜가 그렇게 무 자르듯이 같은 양으로 동시에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 점장 염 여사가 위험을 무릅쓰고 독고 씨에게 마음을 열어주지 않았다면 이후 많은 사람들이 받은 힐링도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독고 씨도 영영 과거를 극복하지 못하고 도망다녔을 것이다.

마치 사람 인 人 자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각각의 불편함을 위로받는다.


결국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음을 이제 깨달았다. 지난 가을과 겨울을 보낸 편의점에서, 아니 그 전 몇 해를 보내야 했던 서울역의 날들에서, 나는 서서히 배우고 조금씩 익혔다. 가족을 배웅하는 가족들, 연인을 기다리는 연인들, 부모와 동행하던 자녀들, 친구와 어울려 떠나던 친구들... 나는 그곳에서 꼼짝없이 주저앉은 채 그들을 보며 혼잣말 하며 서성였고 괴로워했으며, 간신히 무언가를 깨우친 것이다.


각박한 현실에서는 찾기 힘든 공감

2021년 발행된 이 소설은 출간 직후 큰 인기를 얻어 11개국에 번역되었고, 이후 라디오드라마와 연극으로도 제작되었다고 한다.

아마 요즘 점점 더 각박해지는 현실 속에서, 따뜻한 공감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세상이 점점 더 흉흉해진다. 미국 총기난사 사건에 대한 뉴스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바라본 지가 엊그제 같은데, 우리나라에서도 칼부림 사건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난다. 인터넷에서는 너나 할 것 없이 편을 갈라 싸우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많은 일에 불편해하고 있다.


불편한 편의점 같은 일이 현실에 일어나면 어떨까. 소설 속 점원인 오영숙 여사는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처음부터 독고 씨를 적대하는데, 솔직히 나 같아도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점점 여유가 없어지는 요즘, 불편한 편의점의 공감과 소통에 대한 이야기가 단지 소설 속의 이야기로 그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독고 씨의 과거

(아래 내용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독고씨는 사실 강남의 성형외과 의사였고 본명은 독고가 아니다. 어렸을 때 가난하고 불행한 가정에서 자란 그는 의대 입학과 동시에 독립해서 가족과 연을 끊었다. 이후 과외를 해서 학비를 대고 좋은 집에서 자란 여자와 결혼했으며 자신이 자라온 환경과 다르게 성공한 삶을 살고 싶어 했다.

그가 일하는 성형외과에서는 치과 의사를 불법으로 고용해 대리 수술을 맡겼는데, 대리 의사 (고스트 닥터) 성형수술을 하는 동안 진짜 의사인 그는 수술 감독을 하지 않고 다른 내담자를 상담하며 한 명이라도 더 끌어오려고 했다. 그 와중에 고스트 닥터에게 수술을 받던 손님이 사망하고 만다.

성형외과 원장은 자신의 인맥을 이용하여 사건을 덮었지만, 유가족들이 병원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는 바람에 뉴스에 나게 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아내와 딸은 그가 가족들에게 자초지종을 솔직하게 말하기를 기다렸지만, 그는 가족들을 위한 돈을 벌다가 이렇게 된 거 아니냐며 화를 내다 딸에게 소리를 지르고 아내를 때리고 만다.

뒤늦게 후회한 그는 원장에게 하소연하지만 원장은 이참에 그냥 영영 쉬라며 빈정거린다. 이에 화가 난 그는 병원의 비리와 모든 사실들을 고발하고자 관련 자료들을 컴퓨터 클라우드에 저장해 놓고, 대구로 떠난 아내와 딸에게 돌아가서 용서를 빌기 위해 서울역에 가서 기차표를 산다. 그러나 기차를 타려는 순간, 가족들에게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결국 티켓을 찢어버리고 떨다가 쓰러지고 만다. 정신을 차려보니 짐은 모두 노숙자들에게 뺏겨 남은 것은 걸치고 있는 옷뿐이고, 자신의 과거도 이름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 그에게 한 늙은 노숙자 노인이 무료 의료 센터와 노숙자 쉼터를 알려준다. 술을 많이 마시던 노인은 밤새 죽게 되고, 죽기 전 자신의 이름이 ‘독고’라고 말한다. 성인지 이름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죽은 노인의 이름을 따 ‘독고’라고 불리며 고독하게 살아간다. 어느 날 독고는 자신의 술을 뺏어간 노숙자들을 쫓아가 혼쭐을 내주다가 염 여사의 파우치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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