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봄 Aug 21. 2023

[책리뷰]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아가사 크리스티

추리계 오마주의 대상이 된 고전 역작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 보았을 작가, 아가사 크리스티.

그녀의 대표작 중 하나인,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And then there were none’는 무려 1939년 작품이다.

이 작품이 이렇게 오래된 것인지 모르고 읽는다면, 읽고 나서 ‘이게 왜 그렇게 유명해? 흔한 내용 같은데’라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 이 작품은 ‘밀실에 초대받아서 하나하나 죽어나가는’ 모든 추리 소설의 오마주의 대상이 된 작품이다.


어떤 부분에서 상징적인 것인지 좀 더 알아보자.


열 꼬마 인디언


작품의 제목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는 나중에 붙여진 이름이고

영국 원제는 열 꼬마 인디언 Ten Little Niggers라고 한다.


소설은 열 꼬마 인디언이라는 시를 소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며,

이후 사건은 그 시와 똑같이 전개된다.


열 명의 서로 모르는 사람들은, 어떤 알 수 없는 인물에게 섬으로 초대한다는 카드를 받는다.

섬에 있는 큰 대저택에 도착해보니 초대한 인물은 없고 일하는 사람들만 있다.

그리고 초대된 자들은 한 명씩, 아래에 소개된 '열 꼬마 인디언'이라는 시와 똑같은 방식으로 죽게 된다.


사실 이 책은 영어 원서로 읽었는데, 시에 라임이 있어서 우리말로는 어떻게 번역을 했나 찾아보았다.


열 꼬마 병정이 식사하러 나갔네. 하나가 사레들었네. 그리고 아홉이 남았네.
아홉 꼬마 병정이 밤이 늦도록 안 잤네. 하나가 늦잠을 잤네. 그리고 여덟이 남았네.
여덟 꼬마 병정이 데번에 여행 갔네. 하나가 거기 남았네. 그리고 일곱이 남았네.
일곱 꼬마 병정이 도끼로 장작을 팼네. 하나가 두 동강 났네. 그리고 여섯이 남았네.
여섯 꼬마 병정이 벌통을 가지고 놀았네. 하나가 벌에 쏘였네. 그리고 다섯이 남았네.
다섯 꼬마 병정이 법률 공부를 했네. 하나가 법원에 갔네. 그리고 네 명이 남았네.
네 꼬마 병정이 바다 항해 나갔네. 훈제 청어가 잡아먹었네. 그리고 세 명이 남았네.
세 꼬마 병정이 동물원 산책 했네. 큰 곰이 잡아갔네. 그리고 두 명이 남았네.
두 꼬마 병정이 볕을 쬐고 있었네. 하나가 홀랑 탔네. 그리고 하나가 남았네.
한 꼬마 병정이 외롭게 남았다네.
그가 가서 목을 맸네. 그리고 아무도 없었네.

-출처 위키피디아


내용은 같지만 아무래도 번역판에서는 좀 생뚱맞게 들릴 수가 있겠다.

왜 갑자기 '식사하러' 갔다가 ‘아홉’이 남았는지, 왜 하필 다른 것도 아니고 '벌통' 을 가지고 놀다가 ‘다섯’이 남았는지...

원본 시를 보면, 이런 부분이 시의 마지막 음절을 맞추기 위해서였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Ten little soldier boys went out to dine (다인; 식사하다);

One choked his little self and then there were Nine (나인; 아홉).


Nine little soldier boys sat up very late (레잇; 아주 늦게);

One overslept himself and then there were Eight (에잇; 여덟).


Eight little soldier boys travelling in Devon (데븐. 영국 지역명);

One said he’d stay there and then there were Seven (세븐; 일곱).


Seven little soldier boys chopping up sticks (스틱, 막대기);

One chopped himself in halves and then there were Six (식스, 여섯).


Six little soldier boys playing with a hive (하이브, 벌집);

A bumble bee stung one and then there were Five (파이브, 다섯).


Five little soldier boys going in for law (포 러, 법);

One got in Chancery and then there were Four (포, 넷).


Four little soldier boys going out to sea (씨, 바다);

A red herring swallowed one and then there were Three (쓰리, 셋).


Three little soldier boys walking in the Zoo (주, 동물원);

A big bear hugged one and then there were Two (투, 둘).


Two little soldier boys sitting in the sun (썬, 태양);

One got frizzled up and then there was One (원, 하나).


One little soldier boy left all alone (얼론, 혼자);

He went and hanged himself

And then there were None (논, 아무도 없음).


시의 마지막 행이 책의 제목인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And then there were none’ 이다.


섬에 초대된 사람들은 한 명씩 이 시에 나온 대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영화 나이브즈 아웃 2에서도 나오는 밀실 살인 사건. 배경이 된 실제 그리스의 섬. 출처 travelandleisureasia.com


밀실 살인 사건


앞서 소개했다시피, 소설을 읽으면 너무 뻔한 클리셰 아닌가 싶을 텐데

그 클리셰의 원본이 되는 게 바로 이 소설이다.


먼저 섬에서 일어난 밀실 살인 사건이라는 점.


모르는 사람들이 미스터리한 인물에게 편지를 받고 고립된 장소에 모이면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자연재해 등으로 장소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상황에서

한 사람, 한 사람씩 죽어 나가게 되며 사람들은 범인이 우리 중에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에 떠는 전개.

그리고 독자들은 누굴까 궁금해하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따라가게 된다.

이는 명탐정 코난이나 소년 탐정 김전일 같은 추리 만화나, 최근에 개봉한 추리 영화 나이브스 아웃 Knives out 2 : 글라스 어니언 등 정말 많이 볼 수 있는 장치이다.


그리고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가 권선징악이라는 것.

모인 사람들이 다들 과거에 어떠한 잘못을 저지른 사실을 숨기고 살고 있었는데,

초대 카드에는 누군가가 그들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듯한 뉘앙스를 풍겨서

그가 누구인지 궁금한 마음 반, 잘못을 들킬까 봐 불안한 마음 반이 섞인 채로 초대에 응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마지막에 살아남은 살인자와 그 동기가 드러나게 되는데,

주로 과거에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에게 벌을 주기 위해 이런 일을 벌였다는 권선징악적인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명탐정 코난에서 이런 스토리가 많은 것 같다.)


이러한 장치와 스토리 라인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히트에서 시작되어,

후에 수많은 작품들이 오마주를 했다고 한다.


김전일과 코난. 범인은 이 안에 있다고 한다.


추리의 고전


사실 이 소설이 오마주가 되었다고 자꾸 강조하는 이유는,

내가 처음에 이 사실을 모르고 읽었다가, 내용이 너무 코난 같고 어디서 들은 이야기 같고 해서

왜 아가사 크리스티가 대단한지 모르겠어라는 무지한 생각을 한동안 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찾아봤다가 이분의 작품이 추리소설계의 고전이자 원본?이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되고 정말 놀라고 소름이 돋았다.


평소에 추리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잘 몰랐다가 이걸 계기로 아가사 크리스티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이후 영화로 나온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 나일강의 죽음, 비뚤어진 집까지 정말 재밌게 본 기억이 있다.


작품들이 전체적으로 살인 사건과 그 트릭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드라마가 있고 스토리가 좋아서 더 찾게 되는 것 같다.




범인은 바로! (결말 스포)


소설이 워낙 옛날에 쓰인 데다가, 영화, 드라마, 연극으로도 이미 많이 나왔기 때문에

누가 범인인지 말한다고 해서 스포라고 하기도 좀 그렇다.


범인은 판사인데, 사람들이 과거에 저지른 과오를 징벌하기 위해 섬으로 초대하여 이런 일을 꾸미게 된다.

앞서 말했듯 권선징악을 구현하기 위한 스토리로 판사 캐릭터가 딱 적합해 보인다.

매거진의 이전글 [책리뷰] 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